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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달콤해~베토벤·하이든이 푹 빠진 토카이 와인

기자
조인호 사진 조인호
[더, 오래] 조인호의 알면 약 모르면 술 (12)
로마 제국의 집정관으로 선출된 마리우스는 마침 갈리아(오늘날의 프랑스) 총독을 마치고 귀국한 친구로부터 갈리아 지역의 와인을 선물 받는다. 와인을 좋아하는 그였기에 도자기 병에 담긴 와인의 마개를 바로 따 마셔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오~ 역시 갈리아 산 고급 와인이야. 단맛이 깊고 풍부해. 따로 꿀을 넣지 않고 마셔도 충분히 맛있구먼!”
 
슬로바키아 대사관저. 달콤한 맛이 매력인 슬로바키아산 디저트 와인 토카이. [중앙포토]

슬로바키아 대사관저. 달콤한 맛이 매력인 슬로바키아산 디저트 와인 토카이. [중앙포토]

 
순전히 내 상상력에 근거한 가상의 대화이지만 그만큼 옛날엔 단맛이 곧 귀한 맛있었기에 그렇게 터무니없는 추측만은 아닐 것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 있듯 단맛은 우리 몸이 본능적으로 선호하는 맛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자 할 때 제일 먼저 선택되는 영양소가 탄수화물이며, 이 탄수화물이 내는 맛이 결국 단맛이다. 오랜 기간 진화를 거친 우리 몸의 DNA에 기억된 생명의 맛인 것이다.
 
생명의 맛에서 천덕꾸러기 된 단맛  
하지만 근래 들어 단 것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지 오래다. 탄수화물이 당뇨, 심장병, 비만의 주범으로 전락하면서다. 다른 식음료와 마찬가지로 와인에서의 단맛도 인기가 시들하다. 디저트와 함께 마시는 달콤한 스위트 와인도 어지간히 격식이 있는 자리가 아니면 쉽게 보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과연 단맛은 기피해야 할 존재일까? 앞서 얘기했듯 단맛, 즉 탄수화물은 우리 몸에 매우 중요한 영양소다. 가장 쉽게 효율적으로 쓰이는 에너지원인 데다 총 섭취량의 75%가 뇌에서 소모가 된다.
 
따라서 우리 몸에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집중력이 결여되고 불안하고 우울해지기 쉽다. 게다가 최소한의 탄수화물 양이 확보되지 않으면 인체는 단백질을 대신 사용하게 되는데 이는 신장 기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 한다.
 
탄수화물과 산소를 폭식하는 우리의 뇌. 뇌의 무게는 인체의 2%에 불과하지만 인체에 필요한 산소의 20%를 소비하며 75%의 글루코스(탄수화물)를 사용한다. [사진 quora.com]

탄수화물과 산소를 폭식하는 우리의 뇌. 뇌의 무게는 인체의 2%에 불과하지만 인체에 필요한 산소의 20%를 소비하며 75%의 글루코스(탄수화물)를 사용한다. [사진 quora.com]

 
현대 의학이 태동하기 전인 중세 유럽에서 기침과 열이 있는 환자에게 달콤한 물을 마시게 하거나, 흑사병이 만연하던 시기 여러 처방에 빠짐없이 설탕이 등장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단맛이 주는 치유 효과’ 때문이다.
 
한국의 민간요법에도 장염으로 설사할 때 설탕물에 메밀가루를 타서 먹는다든지 기침에 달콤한 배숙을 만들어 먹는 경우가 있었다. 탄수화물이 짧은 시간 내에 인체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뇌와 신경계를 안정화할 수 있어서다.
 
중세 독일에서 의사 칭호 붙은 스위트 와인
중세 유럽의 약제사들은 허브와 향신료에 설탕등을 넣고 여러 치료제를 만들었다. [사진 theatlantic.com]

중세 유럽의 약제사들은 허브와 향신료에 설탕등을 넣고 여러 치료제를 만들었다. [사진 theatlantic.com]

 
단 음식이나 설탕이 약처럼 쓰였듯 달콤한 맛의 스위트 와인도 반 의사 노릇을 한 적이 있다. 리슬링 품종으로 만드는 독일 와인 중 모젤의 베른카스텔이란 마을에서 만드는 와인인 ‘닥터 베른카스텔’ 이야기다. 유래는 이렇다.
 
1360년 트리어의 대주교였던 뵈문트 2세가 열병에 걸려 여러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전혀 없었다. 의사는 물론이고 약재상과 주술사 등을 불러도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소문을 듣고 기사 한 명이 방문했다.
 
기사는 자신의 가방에서 달콤한 물약 한 병을 꺼내 마시게 하자 대주교는 씻은 듯이 열이 내려 병이 낫게 된다. 자신이 마신 달콤한 물약이 그 기사의 포도밭에서 나온 와인이란 걸 알게 된 주교는 베른카스텔 동네에서 나는 이 스위트 와인에 ‘닥터’라는 타이틀을 공식적으로 부여했다는 얘기다.
 
Wegeler Bernkasteler Doctor Riesling Eiswein 2004. [사진 조인호]

Wegeler Bernkasteler Doctor Riesling Eiswein 2004. [사진 조인호]

 
약국에서 약용 시럽의 형태로 판매돼 스푼으로 먹던 와인도 있다. 헝가리의 토카이 (Tokai) 와인 중 에센시아라는 최고 당도의 와인이다. 특별한 곰팡이에 감염된 포도로 만든 와인을 귀부(貴腐, Noble Rot) 와인이라 하는데 프랑스의 소 테를 와인, 독일의 TBA 등과 함께 최고로 유명한 것이 헝가리의 토카이 와인이다.
 
18세기 유럽 왕실의 황제와 귀족들, 예술가들이 애용하던 와인이다.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토카이 와인의 애호가로 유명한데, 하이든의 일화는 살펴볼 만하다. 당시 하이든은 자신의 후원자에게 급료의 일부를 와인으로 받고 있었다.
 
“친애하는 백작님… 중략…가능하면 앞으로 와인은 토카이 와인으로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이가 많은 저의 건강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라고 편지를 보낸 기록이 남아있다. 토카이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당시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Chateau Pajzos Tokaji Esszencia 1993 (좌), 하이든과 그의 후원자 에스터하지 백작, 백작은 당시 토카이에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달콤한 맛이 두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위대한 작곡가들의 창작품에 토카이 와인도 어느 정도 지분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우) [사진 조인호, historyandotherthoughts.blogspot.com]

Chateau Pajzos Tokaji Esszencia 1993 (좌), 하이든과 그의 후원자 에스터하지 백작, 백작은 당시 토카이에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달콤한 맛이 두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위대한 작곡가들의 창작품에 토카이 와인도 어느 정도 지분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우) [사진 조인호, historyandotherthoughts.blogspot.com]

 
그렇다면 토카이 와인 및 스위트 와인은 단맛에도 불구하고 실제 건강에 유익할까? 일단 레드 와인이 갖는 심질환, 고지혈증의 개선 효과 즉 항산화 효과는 마찬가지로 기대할 수 있다.
 
2006년 독일의 헬무트 디트리히 박사 등이 식품 화학 저널 (Food Chemistry)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헝가리의 토카이 와인은 건강에 좋은 핵심 요소인 레스베라트롤의 함량이 붉은 포도주에 비해 낮지 않고 전체 플라보노이드의 함량은 오히려 더 높다. 그리고 항산화 효과를 나타내는 여러 지표도 더 높았다.
 
토카이 와인을 만들 때 포도 껍질을 오랜 시간 우려내서 만들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레드 와인을 마실 때 기대하는 산화 억제 효과는 물론이고 단맛이 주는 진정 작용과 활기까지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앉아만 있어도 열량과 기력의 소모가 심한 무더운 여름밤에는 달콤한 와인 한잔의 효과를 누리기에 딱 맞다.
 
스위트 와인은 작은 잔으로 마셔야 
다만 단맛이 많다는 것은 열량이 높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 절대 지나치면 좋지 않겠다. 이 경우에는 발효를 덜 해서 단맛은 남기되 알코올 도수가 낮은 모스카토 다스티와 같은 와인이 적당하다. 탄수화물 자체는 너무나 소중한 에너지원이지만 뇌의 보상 중추를 자극하기에 중독성이 심한 영양소이기도 하다.
 
약과 설탕과 술은 절대 지나치면 안 된다는 옛말도 있다. 달콤한 스위트 와인은 약도 되며 설탕도 되며 술도 되기에 절제가 더욱 중요하다. 달콤한 와인을 마실 때 일반적인 와인 글라스보다 작은 글라스를 사용하는 이유다.
 
조인호 약사·와인 파워블로거 inho34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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