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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말도 닫아버린 아들 변화시킨 포옹의 힘

기자
더오래 사진 더오래
[더,오래] 인생환승샷(28) 직장암 3기 판정 후 달라진 삶, 오학신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지만, 살아가는 방향을 틀어 버릴 정도의 큰일을 겪으면 전에 없던 또 다른 나와 마주하게 된다.
 
“너무 큰데요. 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셔야….”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암이라도 걸렸다는 건가? 그것도 혹이 아주 큰 암에.’
 
3년 전 그렇게 생소하고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암과 함께 하는 나날이 시작됐다. 내시경, MRI, CT 정밀 검사를 하고 직장암 3기 확정판정 결과를 기다리는 2주 동안 살이 78㎏에서 68㎏으로 무려 10㎏이 빠졌다. 정말 암일까, 어느 정도 크기일까, 수술은 가능할까, 몇 개 있을까 하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두려움이 커졌다. 그래서 공포보다는 ‘~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인간은 보다 강한 무서움을 느낀다고 하였던가.
 
그 당시 나에게는 간절한 소망 하나가 있었다. 병이 나아서 아들과 야구장을 같이 가는 것이다. 내 아들은 3살 무렵 발달 장애진단을 받았다, 그 무렵(5살) 서울대병원과 센터에서 여러 치료를 받고 있었다. 28개월 때 “아빠, 나무에 꽃이 예뻐”라고 말하던 아들이 어느 날부터 말도 마음도 닫아 버렸다. 침을 줄줄 흘리고 갑자기 무작정 뛰거나 반복된 행동을 했다. 눈 마주침을 피하고 별안간 웃다 또 울기도 했다. 생각하면 너무나 슬픈 날들이었다.
 
직장암 1차 수술로 배에는 일곱 군데의 수술 자국과 인공항문이, 2차 수술로는 길게 그어진 절개선이 남았다. 국술원 유단자에 군에서 특급전사 출신인 나였지만, 1차 수술은 너무나 통증이 심했다. 수술 후에 만든 인공항문 부위가 물러져서, 고통이 심할 때는 ‘사람들이 이래서 차라리 죽는 게 났겠구나’라는 말을 하는지 공감할 정도였다.
 
2차 수술 후에 찾아온 고단함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였다. 퇴원 후 둘째 날은 화장실 60번 들락거렸고, 심지어 잠도 화장실에서 잤다. 그 이후 50번, 40번, 30번, 20번으로 줄었지만 그렇게 2년을 보냈다. 지금도 하루 평균 화장실에 10번은 간다.
 
2차 수술 후 나는 왜 이런 역경을 견디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왜 갑자기 자폐 성향을 보이는 걸까, 아내는 왜 이런 시련을 겪는 걸까, 왜 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걸까,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위 사진은 암 발견 전 해외 출장 중에 찍은 사진이다. 그때만해도 체중이 78kg 나갔다. 아래 사진은 1차 수술 후 찍은 사진이다. 수술 전 방사선 37회 항암치료(항암약 40일 복용) 받고 암 크기를 1/3로 줄인 다음 6시간의 수술 끝에 깨어났다. [사진 오학신]

위 사진은 암 발견 전 해외 출장 중에 찍은 사진이다. 그때만해도 체중이 78kg 나갔다. 아래 사진은 1차 수술 후 찍은 사진이다. 수술 전 방사선 37회 항암치료(항암약 40일 복용) 받고 암 크기를 1/3로 줄인 다음 6시간의 수술 끝에 깨어났다. [사진 오학신]

 
나부터다.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마음을 단단히 잡아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침 마음 챙김 영상을 접했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심호흡하는 것이 좋다고 되뇌며 하루 10분 정도를 매일 실천하다 보니 한 달 후부터 변화게 생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변하니깐 아내와 딸도 변했다. 아들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두 달 전부터 시작한 아들과의 포옹은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다시 가족들을 보며 웃기 시작했고 예전에 쓰던 말도 조금씩 다시 쓰게 됐다. “아빠, 호수공원에 킥보드 타러 가요”라는 평범한 말이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지금 우리 가족은 피자 한 판을 시켜놓고 먹으며 웃음 가득한 행복한 토요일 저녁을 보내는 중이다.
 
[더,오래] 인생환승역 개통 이벤트
 
인생 환승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더,오래]가 새 홈페이지 오픈 기념으로 독자 여러분의 인생 환승 사연을 공모합니다.
 
인생 환승을 통해 여러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무엇이 힘들었고 어디서 보람을 찾았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눠주세요.
인생 환승에 도전한 본인은 물론 가족이나 친구·지인도 응모할 수 있습니다. 한달 동안 공모한 사연 가운데 4분을 뽑아 가족 여행상품권을 드립니다.
 
▶보내실 내용: 과거와 현재 달라진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상세한 사진 설명 포함)과 1000~1500자 분량의 사연 글
▶보내실 곳: 중앙일보 시민마이크 인생환승샷 이벤트 페이지(http://peoplemic.joins.com)
▶응모 기간: 6월 30일(토)~7월 31일(화)
▶시상:
1등 여행 상품권(1명, 300만원)
2등 여행 상품권(1명, 100만원)
3등 여행 상품권(2명, 5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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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