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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워치] 섣부른 욕심은 북핵 협상 망친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제논의 역설’ 중에 유명한 화살 이야기가 있다. 궁수가 과녁을 향해 쏜 화살이 과녁에 도달하려면 중간 지점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그 반의반, 다시 또 그 반의반 …. 이렇게 수많은 중간 지점을 거쳐야 하므로 화살은 끝내 과녁에 도달하지 못한다. 주장은 주장일 뿐. 화살은 과녁에 꽂힌다. 다만 이 역설은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협상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비핵화의 세부적 기술 문제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그 문제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 있다. 과한 욕심이 초래하는 위험도 크지만, 근시안적 행동도 실패 요인이 된다.
 
지난 6월 26~28일에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 포럼’에 참여했다. 포럼에서 남북한 공동프로세스에 동력을 불어넣기 위해 북·미협상과 한국 정부의 노력이 어떻게 보조를 맞춰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현시점에서 한국은 의제를 넓혀 방향을 살짝 바꿀 필요가 있다.
 
기대치를 낮춰 보자. 북한 입장에서 가장 바라는 협상은 핵·미사일을 보유하는 동시에 체제를 인정받고 대북제재가 풀리는 것이다. 그보다 좋은 성과는 없을 것이다. 반면에 미국 입장에서는 핵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하는데, 핵과 관련된 협정만 따로 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제주 포럼에 참가한 필립 젤리코 미국 버지니아대 석좌교수가 말했듯이 핵 문제만 다루는 협상은 북한에 일방적 요구를 강요하는 것으로 비칠 여지가 있다. 젤리코 교수는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에서 두루 고문 역할을 맡은 경험이 있다.
 
글로벌워치 7/27

글로벌워치 7/27

핵 협상 분리 전략은 대북제재가 마법처럼 북한의 일방적인 양보를 끌어내리라는 믿음을 전제로 해야 한다. 미국은 국제 사회의 느슨해진 대북제재 상황에 우려를 표하며, 최근 북한에 대해 ‘최대 압박’을 강화했다. 그러나 제재는 상황 변화에 따라 해제가 될 수 있다는 상대방의 기대가 있어야 제대로 작동한다.
 
북한이 북·미협상 뒤에 “강도적인 요구”라고 한 비판은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이유를 보여준다. 협상 테이블에 나온 미국이 평화체제 구축 방식에 대한 진지한 논의 자세나 상징적으로라도 종전을 선언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현실적으로 봐야 한다. 북한의 비난 성명은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으려는 책략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과 미국이 더 야심 차게 협상에 임하라고 보내는 정당한 신호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평화선언에는 회의적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미국 대통령이 선언에 동참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어렵다. 아무리 상징적이라고 해도 그렇다. 집권당이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둘 다 마찬가지다. 다만 판문점 선언처럼 의향이나 조건을 잘 담아낸다면 협상이 진일보하는 데 일조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한걸음에 협상 테이블에 올라온 수많은 의제를 전부 아우를 수는 없다. 젤리코 교수는 분리된 핵 협상이 아닌 6개 분야의 포괄적 협상을 언급했다. 여기에는 남북관계, 경제 협력, 인도적·문화적 문제, 한반도의 재래식 무기, 동북아 지역의 안보를 포함한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양측이 어떤 의제도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데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대북제재 해제를 다루고자 한다면, 좋다고 하면서 미국과 한국도 이와 비슷하게 북한군 배치나 미래 군산복합체와 같은 난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러한 협상을 어떻게 실제로 진행할 수 있을까? 북한은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원칙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러나 2008년 단기간에 재건 가능한 냉각탑을 폭파하며 이 원칙을 무너뜨렸듯이 단순하고 상징적인 행동보다는 핵심적이고 야심 찬 단계로 프로세스를 진행해야 한다. 핵 능력의 외부 검증이나 실질적인 불능화와 같이 의미 있는 선언문도 좋은 선택 사항이다.
 
한국과 미국은 그에 따른 대가로 북한에 중대한 양보를 제공해야 한다. 관계 정상화를 위해 실질적 단계로서 연락 사무소를 개설하거나 인도적 지원, 무역 투자 같은 것이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협상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마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결국 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여러 언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더디게 진행되는 협상에 잔뜩 화가 났다고 보도한다. 그래서 이런 의문이 든다. 그같은 조급함이 대통령을 지난 가을의 “분노와 화염” 정국으로 되돌아가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계산된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과 긴밀하게 협력하게 할 것인가?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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