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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속 꽃은 왜 실제 꽃보다 훨씬 붉을까

#1. 계수나무 밑에서 사이좋게 마주 서 방아를 찧고 있는 두 마리 토끼. 소나무 아래 안경 낀 호랑이(‘낙도’, 19세기 말~20세기 초)…. 화폭이 온통 추상적으로 패턴화된 꽃과 잎 문양으로만 가득 차 있는가 하면, 세부 묘사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실루엣만 살린 꽃그림도 있다. 옛 그림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이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민화, 현대를 만나다’전에서 만난 작품들이다.
 
#2.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도 있다. 버드나무 아래서 그네 타는 여인들(‘구운몽도’, 20세기 전반)도 보이고, 작두 타는 무속인(‘무신도’, 20세기 전반)도 있다. 그런데 신윤복·김홍도의 그림과는 너무 다르다. 독특한 비례와 구도, 인물들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웃음을 자아낸다. “민화에는 천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한 운보 김기창(1913~2001) 화백의 말을 연상케 하는 그림들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세종민화컬렉션-판타지아 조선’ 전이다.
 
평소에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즐겨 찾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올여름 이 전시만큼은 놓치지 말라고 귀띔해주고 싶다. 지금 서울 강남·북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대규모 민화전이다. 이번 전시에 쏟아져나온 조선 시대 민화 병풍만 무려 100틀에 달한다. 친근하게 다가오면서도 사뭇 새롭고, 아름다우면서 해학이 넘친다. 경주대 문화재학과 정병모 교수는 두 전시를 가리켜 “현대 미술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이벤트”라고 말했다.
 
◆‘김세종민화컬렉션-판타지아 조선’=“저는 민화를 학문적인 지식 없이 오로지 그림으로만 인식하고 감상하고 좋아했습니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 자신의 소장품 70여 점을 풀어놓은 컬렉터 김세종(평창아트 갤러리 대표·62)씨가 들려준 얘기다. 그는 민화를 제발 ‘그림’으로 보아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씨는 “그동안 민화가 상징과 관념의 굴레에만 갇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주목받지 못한 점이 너무 아쉬웠다”며 “이번 전시가 조선 말기에 처절하게 자기 세계를 추구한 무명의 천재 작가들과 교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30대 초반 제주 문자도(文字圖)가 지닌 회화미에 충격을 받아 민화 수집을 시작해 지난 17년간 민화 1000여 점을 모았다. 그의 소장품으로만 꾸여진 이 전시에선 문자도와 책거리, 화초, 산수, 삼국지, 구운몽, 까치호랑이, 무속화 등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 8월 26일까지.
 
조선시대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조형미가 돋보이는 민화들이 적잖다. 사진은 일본에 소장된 민화 화조화 가운데 명품으로 꼽히는 ‘화조도’(19세기, 종이에 채색). [사진 갤러리현대]

조선시대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조형미가 돋보이는 민화들이 적잖다. 사진은 일본에 소장된 민화 화조화 가운데 명품으로 꼽히는 ‘화조도’(19세기, 종이에 채색). [사진 갤러리현대]

◆‘민화, 현대를 만나다:조선시대 꽃그림’=반면 갤러리현대·현대화랑의 전시장은 꽃밭, 그 자체다. 모란도, 연화도, 화초영모도 등 우리 선조들이 사랑을 기약하던 혼인식, 생명이 탄생과 삶이 마감하는 순간을 축복했던 그림들이 총출동했다. 고연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는 “민화의 꽃그림은 자연의 꽃, 고전 회화 속 꽃보다 붉다”며 “민화는 고전 회화의 공식을 벗어나고 훌쩍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이 전시에선 가회민속박물관, 온양민속박물관, OCI 등이 소장해온 걸작들과 야나기 무네요시가 아끼던 ‘연화모란도’, 일본에서도 최고 명품으로 꼽히는 ‘화조도’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8월 19일까지.
 
꿈꾸는 듯한 분위기의 ‘화조인물도’(19세기 중반, 종이에 채색). [사진 예술의전당]

꿈꾸는 듯한 분위기의 ‘화조인물도’(19세기 중반, 종이에 채색). [사진 예술의전당]

◆민화는 왜 회화사에서 외면당했나?=“조선민화는 현대 미학 이론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불가사의한 미의 세계가 있다(…)이 그림이 세계에 알려지는 날이 오면 세상은 큰 충격에 빠질 것이다.” 일본의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1959년에 이런 글을 썼을 정도로 민화의 가치를 일찍이 알아봤다. 국내 작가 중에선 김기창·장욱진·이우환·김종학·박대성 등이 일찍이 민화에 매료돼 작품을 수집하거나 민화의 요소를 작품에 녹여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왜 민화는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 회화사에서 주목받지 못했을까? 김세종씨와 고연희 교수는 “‘민화’는 무명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낮춰보는 경향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무병장수, 다산, 벽사구복(辟邪求福, 귀신등을 물리쳐 복을 얻는다)등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실용장식화나 민예품으로 여겨온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민화, 현대 회화의 원천=정병모 교수는 민화를 “암울한 역사 속의 유쾌한 그림”이라고 정의했다. 정 교수는 “민화에는 풍요로운 삶을 바라는 민중의 욕망과 각박한 현실을 꿈의 세계로 풀어낸 낭만적 기질이 함께 반영돼 있다”며 “민화는 전통의 바탕 위에서 새로움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고 분석했다.
 
2016년 예술의전당과 함께 ‘문자도·책거리’전을 연 데 이어 두 번째 민화 전시를 기획한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은 “김기창 화백은 1970년대에 민화에 심취해 유명한 ‘바보 산수’를 탄생시켰고,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있는 김종학 화백도 작품에 민화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며 “조선 민화가 현대 회화의 소중한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영택 미술평론가는 “우리가 그동안 민화가 지닌 풍부하고 놀라운 회화의 맛을 음미하는 데 인색했다”며 “한국인 특유의 창조력과 상상력의 저장소인 민화의 매력과 가치를 밝히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고 덧붙였다. 관람료 각 8000원, 통합 관람료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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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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