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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역사 왜곡 과민증

이지영 아트팀 기자

이지영 아트팀 기자

1955년 개봉한 영화 중에 ‘피아골’이란 반공영화가 있었다. 지리산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던 빨치산 부대의 파멸을 그린 작품이니 명백한 반공영화다. 하지만 ‘피아골’은 반공법 위반으로 상영이 금지되는 해프닝을 겪었다. 빨치산을 잔인무도한 악마가 아닌 고뇌하는 인간으로 미화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 김진규가 빨치산 연기를 했던 것도 화근이 됐다. 이만희 감독의 영화 ‘7인의 여포로’(1965) 역시 비슷한 고초를 겪었다. 한국전쟁 중 중공군에게 겁탈당할 위기에 처한 포로들을 북한군이 구해 준 장면이 문제였다. ‘북한 괴뢰군’을 찬양했다는 혐의로 감독은 구속까지 당했다. ‘무찌르자 공산당’ 시대에 공산주의자는 절대 호감이나 공감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됐던 것이다.
 
최근 불거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역사 왜곡 논란은 반세기 전 영화 ‘피아골’ ‘7인의 여포로’ 소동과 똑 닮았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가장 문제가 된 캐릭터는 구동매(유연석 분)다. 백정의 아들로 태어난 구동매는 조선 사회의 비인간적인 차별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일본 극우단체의 한성지부장이 돼 돌아온다. 친일 미화 논란은 방송 첫 주부터 불거졌다. 일본 앞잡이 구동매의 변절에 타당성을 부여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제작진은 스스로 스포일러가 돼 향후 극 전개 방향을 흘렸다. “격변의 시대에 백정으로 태어난 설움으로 첫발을 잘못 디딘 한 사내가 의병들로 인해 변모해 가는 과정을 그리려는 의도”라고 밝힌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는 기본적으로 허구다.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만들었다 해도 실제 역사 그대로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심심찮게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린다. 꼭 1년 전엔 영화 ‘군함도’가 그랬다. 조선인의 내부 갈등을 강조해 일제의 악랄함을 희석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손익분기점을 못 넘겼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를 두고 “개연성 있는 허구였는데 관객 반응이 너무 편협하고 과민했다”며 “다시는 강제징용을 소재로 영화를 못 만들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역사 왜곡 논란은 일본 관련 콘텐트에서 유독 도드라진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선덕여왕과 김유신이 연인 관계였다는 말도 안 되는 설정(드라마 ‘선덕여왕’)도 그냥 넘어간 시청자들이지만 일본이 조금이라도 미화되는 것 같은 상황은 못 견딘다”고 짚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도 “여전히 식민사관이 득세하고 친일파 척결이 요원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현실의 반일 감정이 드라마·영화에 대한 ‘역사 왜곡 과민증’을 부추기는 셈이다. 바뀌어야 할 건 제작진이 아니라 세상일지 모른다. 이제 더 이상 북한군 미화가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
 
이지영 아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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