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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 ”의 변천사

이철호 논설주간

이철호 논설주간

인터넷 댓글 분위기가 확 변하고 있다. 6월 지방선거 때까지 최고의 유행어는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였다. 지금은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안 하면 안 돼?”가 대세다.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부작용에 따른 실망감이 배어 있다. 최근엔 폭염과 탈원전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이제 그만해”라는 댓글까지 출현하고 있다. 실망감을 넘어 짜증과 분노가 묻어난다.
 
문재인 대통령도 소득주도 성장이 ‘주홍글씨’가 된 탓인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제 청와대 회의에선 포용적 성장을 새 정책기조로 내세웠다. 포장지를 바꾸면서 대통령은 두 정책이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잘못된 이야기다. 소득주도 성장은 이단(異端) 경제학의 생체실험이다. 정부가 임금 등 시장가격에 개입해 인위적으로 소득을 끌어올리면 경제가 성장한다고 우긴다. 반면 포용적 성장은 시장가격과 경쟁에는 손대지 않고, 이에 따른 양극화는 시장 밖에서 교육과 복지 등을 통해 완화하는 정통 경제학이다. DNA부터 완전히 다르다.
 
앞으로 문 대통령이 내용물까지 포용적 성장으로 바꿀지는 의문이다.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등 이 정부 주요 주주들의 반발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청와대의 규제혁신 점검회의가 돌연 연기된 것도 참여연대가 은산분리 완화와 빅 데이터 규제 완화에 제동을 건 탓이었다. 실제로 이튿날 참여연대는 “그 두 규제 완화는 관료와 업계의 요구”라는 반대 논평을 냈다. 이들 단체는 매일 3~4개씩 논평·비평·성명을 내며 온갖 정책에 간섭한다. 비판과 견제를 넘어 아예 완장을 차고 설친다.
 
이에 대해 같은 참여연대 출신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반박에 나섰다. 그는 인터뷰에서 “시민단체의 근본주의적 성향 때문에 현 정부가 실패할 수 있다”며 “대통령이 지지층의 비판을 받더라도 규제 혁신을 위한 정치적 결단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너무 많이 올리면 주는 사람이 힘들어지는 게 아니냐”며 고민했다고 한다. 이런 고뇌가 청와대 담장을 넘어 새어 나오자 진보진영이 즉각 차단에 나섰다. 지난 18일 진보인사들이 집단으로 “정부의 사회경제 개혁 포기를 우려한다”며 공개 압박한 것이 대표적 장면이다. 이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이라크 파병으로 지지계층이 등을 돌려 폐족 신세에 몰렸던 노무현의 정책전환 트라우마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 환경이 암울해지고 시간도 정부 편이 아니다. 정책 선회는 빠르면 빠를수록, 시장과 경제주체들에게 보다 선명한 신호를 주는 게 좋다. 우선 반도체 수퍼호황부터 시들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장기 고정 거래선을 다시 챙기는 등 치킨게임에 돌입할 조짐을 보이면서 그제 증시가 곤두박질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까지 감안하면 반도체 특수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서 유화산업도 휘청대고 있다. 시장은 그동안 셰일가스 채굴 비용을 고려해 배럴당 60달러를 저항선으로 여겨 왔다. 하지만 두바이유가 배럴당 72달러를 돌파했다. 미국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에 오히려 느긋해하고 중국이 초조한 표정이다.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으로 원유 수출국으로 변신한 반면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학 구도 탓에 유가 고공행진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 역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가장 불길한 신호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미국의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는 조짐이다. 미국에선 1970년 이후 여섯 차례의 장단기 금리 역전이 발생했는데 그 뒤 어김없이 경기침체가 뒤따랐다. 또한 세계 경제위기는 항상 부채위기에서 비롯됐으며 그 방아쇠는 언제나 미국의 금리 인상이 당겼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의 실패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다가오는 쓰나미에 함께 대비하자고 호소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당장 최저임금의 부작용을 메우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만약 야당이 국회에서 ‘세금주도 성장’이라 반발하면 재정 투입이 어렵게 된다. 그래서 기획재정부가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기금운용 꼼수를 동원해 열심히 3조8000억원을 긁어모으고 있지만 곧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이제 참여연대·민주노총 등 시민단체와 정중한 거리를 두는 게 필요하다. 아무리 대선공약이라도 시장을 무시하고 이념을 앞세운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정권은 실패하고 나라와 국민도 불행해진다. 더 이상 ‘보수는 철학이 없고 진보는 정책이 없다’는 냉소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이제 그만해’라는 분노와 조롱의 댓글과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
 
이철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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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