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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 구독신청

폭염 속 김일성광장 9·9절 행사 채비 … 남북관계엔 경고음

요즘 평양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노동당과 내각의 간부와 실무자들은 사실상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고 한다. 주민을 대상으로 한 강도 높은 사상교양과 총화(비판·결산 모임)가 이어진다. 올 들어 2차례 남북 정상회담 이후 주춤하던 대남 비방의 포문도 다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을 정조준한 대목이 찜찜하다. 남북 당국 관계 뿐만이 아니다. 민간 차원의 경협·교류도 남측의 기대치만 높아졌을 뿐, 북한은 시큰둥한 상황이다. 4.27 판문점 선언 석 달을 맞이하는 평양 내부를 들여다본다.
  
올 여름 평양도 폭염 기세가 대단하다. 연일 30도를 넘는 날이 이어지고, 어제는 34도를 기록했다. 1994년 이후 24년 만의 기록적인 더위다. 그해 7월 북한은 김일성 사망이란 변고를 맞았다. 살인적 폭염 속에 검은 상복 차림으로 장례와 추모 행사를 치르다 열사병에 걸리거나 숨진 경우가 적지 않다고 당시를 체험한 탈북 인사들은 진저리친다. 올해는 9·9절(정권 수립 기념일) 70주년 행사 준비로 부산하다는 게 지난주 평양을 다녀온 재미교포 인사 A씨의 귀띔이다. 이 인사는 “김일성광장과 인민대학습당 마당 등에 흰색 운동복 차림에 모자를 쓴 학생·주민이 김정은 찬양 매스게임과 군중집회 행사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대학교수 출신 탈북 인사는 “2~3개월 정도의 준비 일정에 강제 동원되다시피 하다 보니 학생의 경우 수업결손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래픽= 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 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A씨는 노동당·내각의 간부와 실무자도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피곤해하는 분위기였다고 강조했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잇달아 치렀지만 체제 내부의 위기감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A씨는 “토요일 오전 실시하던 총화를 오후까지 연장해 강도를 높인데다, 출결 여부를 엄격히 체크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평양을 방문한 교포·해외 대표단 안내를 맡은 북측 관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과거와 달리 총화에 출석도장을 찍기 위해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 노동당과 내각·군부 고위층을 대상으로 군기잡기에 나선 김정은의 ‘버럭 통치’가 결정적 작용을 한 듯하다는 게 A씨의 진단이다. 지난달 12일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회담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곧이어 베이징을 찾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 이후 북·중 경제특구인 황금평 지구가 있는 평북 신의주 일대 공장·기업소를 현지지도했다. 여기에서 김 위원장은 “마구간 같다”거나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온다”는 등의 거친 언사를 동원해 경제관리 실태와 간부의 태도를 질책했다. 이런 행보는 백두산이 있는 양강도 삼지연과 함경북도 청진 지역 등으로 이어졌고, 어제 노동신문은 김정은의 강원도 지역 양묘장 방문 소식을 전했다. 6월 말부터 북·중 접경과 동북부 지역을 잇는 현장방문 여정을 소화한 것이다.  
 
A씨는 평양에 새로운 대형 쇼핑몰이 세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 시대 들어 선보인 쇼핑센터인 광복거리상업중심이 성업 중인데, 보다 현대적 시설이 올 가을 오픈을 목표로 공사 중이란 얘기다. A씨는 “북한에서 상업유통 등으로 막대한 자본을 거머쥔 신흥 부유층의 경우 ‘오늘 소비를 해도 내일 또 더 많은 돈이 들어온다’는 인식이 만연한 상태”라고 말했다. 마치 중국의 개혁·개방 시기 이중가격제의 빈틈을 노려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사례를 보는 듯하다는 설명이다.
 
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이 빼곡한 뉴타운 건설이 한창이던 평양의 건설붐은  속도 조절에 들어간 느낌이었다고 한다. A씨는 “김정은 지시로 건설 중인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해양리조트) 공사에 건설 장비와 자재·인력이 대부분 투입되고 있어 다른 지역이 부진한 것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공사현장에선 강도나 품질에서 B급으로 취급받는 중국산 철근이나 강재가 북한에선 A급으로 간주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북한 건자재의 수준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 당국이 최근 들어 ‘천년을 책임지고 만년을 보증하자’고 품질과 안전을 강조하는 것도 이를 의식한 때문이라고 한다.
 
한여름에 접어들면서 북한의 대남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있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동해선·경의선 철도 연결 및 현대화’ 문제도 미온적이다.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동해선 철도 연결지점 공동조사도 시행 하루 전 급작스레 통보해와 지난 20일 가까스로 치렀다. 어제 갖기로 한 경의선 공동조사도 차질을 빚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직접 “철도 시설이 불비(不備)하다”며 현대화 사업을 우회적으로 요구했던 상황에 비춰보면 이상 징후가 감지된다. 남북 간 합의대로 원만하게 이행된 사안은 김정은이 제안한 통일농구경기(4일 평양) 정도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주민 접촉 신청이 500건을 넘을 정도로 우리 내부엔 봇물을 이루지만, 북한은 극히 제한적 교류에 그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거친 비방을 재개한 건 좋지 않은 징후다. 노동신문은 20일 ‘주제 넘은 허욕과 편견’ 운운하며 문 대통령에게 “감히 입을 놀려대고 있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3일 싱가포르 렉처를 통해 “북·미 공동성명을 지키지 않을 경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데 따른 반발이다. 북한은 내달 20일 금강산에서 열기로 합의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까지 위협하고 있다. 2016년 중국 내 북한 식당에서 일하다 집단 탈북·입국한 것으로 알려진 여종업원의 송환을 요구하며 “상봉행사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 여론 공작에 나서려는 징후도 포착되고 있다. A씨는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 씨를 피격 사망케 한 북한 경비병을 남한 언론에 출연시켜 ‘경비 임무 수행 중 일어난 불가피한 사건’으로 주장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대남부서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방송매체를 피격 현장이나 제3국으로 불러 인터뷰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A씨는 “북한은 현대의 관광 독점권은 더 이상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3개의 한국 업체를 사업자 후보에 올려놓고 있다”고 전했다. 9억4200만 달러(1조 687억원) 규모의 관광 대가 지급 논란이 일었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대북제재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올 가을 풍성한 결실을 거둘 것으로 예견해 왔다. 문 대통령의 ‘가을 평양 방문’과 정상회담은 그 정점으로 꼽힌다. 지난 4월 평양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의 방북 공연 ‘봄이 온다’에 이어 북측 공연인 ‘가을이 왔다’를 서울에서 개최한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언제쯤이 좋겠느냐’는 우리 측의 공연 날짜 문의에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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