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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륙한 라면 한류 … “매운데, 맛있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외곽 치노밸리의 대만계 대형 수퍼마켓 ‘99 랜츠 마켓’. 라면 코너에 들어서자 ‘라면 엑스포’를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나라에서 온 라면이 진열돼 있다. 삿포로이치방·도쿄·니신·마루찬 등 일본 라면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이부미, 태국 마마, 중국 유니프 등.  
 

[디지털 기획] 라면로드
수입 라면 3개 중 1개는 한국산
히스패닉계 매콤한 국물맛 좋아해

일본 제품 제치고 2위 넘보는 농심
현지인 입맛 겨냥 ‘오룡면’ 등 개발
고급화 전략으로 중산층 파고 들어

하지만 진열대 한가운데 자리 잡은 것은 ‘매울 신(辛)자’가 선명한 한국의 농심 신라면. 그 옆엔 같은 회사 제품인 너구리와 김치라면, 튀김우동 등이 터를 잡았다. 진열대 위쪽에도 한글과 영어로 포장된 오뚜기 진라면, 팔도 비빔면·우골탕면, 삼양 불닭볶음면 등이 고객을 유혹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본 라면이 석권하던 미국 라면 시장에서 매운맛을 무기로 한국 라면이 세를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 라면 시장은 연간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 규모다. 시장 점유율 1위는 마루찬(46%), 2위는 니신(30%)이다. 모두 일본 기업이다. 한국 농심은 15%의 점유율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눈여겨볼 점은 성장세다. 농심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2%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매년 14%씩 매출이 성장하면서 빠른 속도로 일본 라면을 따라잡고 있다.
 
1971년 처음 미국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농심은 매출이 크게 늘자 2005년 아예 LA 지역에 라면 공장을 세웠다. 북미 지역에서 유일한 한국 라면 공장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16종의 라면이 연간 3억 개 이상 캐나다와 미국·멕시코 지역으로 팔린다.
 
또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지 않는 한국 라면을 찾는 미국인이 늘면서 한국은 미국의 라면제품 1위 수출국이 됐다. KOTRA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한국에서 5862만 달러(약 663억원)의 라면 제품을 수입, 전체 라면 수입액의 26.6%가 한국산이었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 라면 제품 수입은 지난해 전년 대비 16.3% 증가하는 등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KOTRA 권오석 LA무역관장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매운 한국 라면 맛보기 챌린지가 소개되면서 전 세계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한국 라면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특히 매운맛을 즐기는 히스패닉 소비자들이 한국식 매콤한 국물 라면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농심의 미국 전진기지인 농심 아메리카법인 캠퍼스는 LA 도심에서 동쪽으로 100㎞가량 떨어진 소도시 랜초쿠카몽가에 자리 잡았다. 5만2000㎡(약 1만5600평) 규모의 캠퍼스엔 100m 길이의 라면 생산라인 5개를 갖춘 공장이 들어서 있다. 길 건너편에는 공장 절반 규모 시설에 연구개발(R&D)과 마케팅본부·창고 등 시설까지 갖췄다.
 
농심 아메리카법인 장우진 부장은 “최근 공장 규모를 대폭 키웠다”며 “R&D 시설이 들어선 곳은 6월 중순 새로 입주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지인 입맛을 공략하기 위해 한국산 제품과는 별도로 제품 개발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농심 아메리카법인이 생산하는 제품 16종 중 한국에 없는 제품만 6종에 이른다. 오룡면(烏龍麵)·김치·순(純) 등이 그것이다. 후발주자인 한국 라면이 미국에서 점유율을 높여가는 데엔 농심 등의 프리미엄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불닭볶음면은 SNS 스타 … 러시아서 라면은 ‘팔도 도시락’으로 통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농심 공장에서 직원들이 라면이 나오는 생산라인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농심]

미국 로스앤젤레스 농심 공장에서 직원들이 라면이 나오는 생산라인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농심]

농심의 북미 지역 판매총괄을 맡고 있는 크리스 로스 본부장은 “니신·마루찬과 같은 일본 라면은 처음부터 주 공략 대상이 저소득층이어서 면과 분말 수프가 전부였다”며 “반면 농심은 고급 밀가루에 건더기 수프까지 곁들이는 등 중산층 이상을 타깃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신동엽 농심 아메리카법인장은 “우리는 LA 공장에서 R&D를 통해 다양한 수프를 직접 개발하고 있지만 니신과 마루찬은 공장을 미국 현지에 두고서도 외부에서 면과 수프를 공급받아 믹스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신 법인장과 주요 본부장들은 주중 매일 점심식사를 사내 ‘크리에이티브 룸’(Creative Room)에서 해결한다. 주요 임직원과 연구개발실 연구원들이 함께 매일 다른 재료로 만든 면과 수프를 활용해 새로운 맛의 면을 요리해 먹고 토론하는 식이다. 농심 관계자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다른 메뉴의 면요리를 만들어보는 게 실무자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격의 없는 토론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식 매운 라면이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8월 농심 신라면은 한국 식품 최초로 미국 월마트 4692개 전 점포에 입점했다. 월마트가 미국 전역에서 판매하는 식품은 코카콜라와 네슬레·펩시·켈로그·하인즈 등 세계적인 식품 브랜드뿐이다.
 
한국 라면은 미국 이외 지역에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최근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국 라면을 세계인들에게 전파하는 첨병이 되고 있다. 유튜브 검색창에 불닭볶음면을 뜻하는 ‘fire noodle’을 입력하면 100만 개에 가까운 동영상이 검색된다. 이들 중에는 한국인이 외국 친구들과 같이 불닭볶음면을 즐기는 영상도 있지만 외국인들끼리 매운맛에 도전하는 것들도 절반 가까이 된다. 덕분에 삼양식품은 최근 연간 매출 4500억원 중 45%(2050억원)가 수출이다.
 
진종기 삼양식품 기획담당 상무는 “수출의 85%를 불닭볶음면 시리즈가 차지하고 있다”며 “한국인의 입맛에도 매운 라면을 외국인들이 즐긴다는 게 뜻밖이었다”고 말했다.
 
특정 국가에서 맹활약하는 한국 라면도 있다. 1986년 출시된 사각형 모양의 팔도 도시락은 러시아의 ‘국민라면’으로 성장했다. 시장을 석권하다 보니 현지인들은 아예 ‘라면=도시락’으로 여길 정도다. 이 때문에 팔도는 2002년 ‘도시락’이라는 이름의 현지법인까지 세우고 2개의 생산공장에서 8종의 도시락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내 매출은 2300억원에 달해 팔도 국내 라면 매출(2200억원)을 넘어서는 진기록을 세웠다.
 
조홍철 팔도 해외영업팀장은 “도시락은 부산항과 러시아를 오가던 러시아 선원들과 보따리상을 통해 러시아에 처음 알려졌다”며 “이후 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치킨·버섯·새우 등 현지인 입맛에 맞게 제품을 현지화한 것이 러시아 시장을 석권한 비결”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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