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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가십니까. 아니, 오신 것입니까."

23일 타계한 최인훈의 제자, 이진명 시인의 조시  

 
23일 타계한 고 최인훈 선생의 장례식은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긴 고인의 문학 위상에 걸맞은 규모로 치러지고 있다. 장례위원으로 문단 최고의 원로 작가부터 이미 중견작가에 이른 서울예전 제자들이 망라돼 있다. 1987년 서울예전에 입학해 문학을 배운 이진명(63) 시인이 조시(弔詩)를 미리 보내왔다. 학창시절 경험한 유별한 문학수업을 무겁지 않으면서도 간곡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여기 살아 있는 게 있다, 뭐냐?

 -최인훈 선생님 가시는 앞에
 
이진명

 
선생님, 가십니까.
아니, 오신 것입니까.
 
오늘 가족과 함께

문단의 동료 어르신, 후배문인,
제자들 앞에 이렇게 나와 말쑥이 계십니다.
 
또 분단 한국문학의 기념비  

불후의 작품 『광장』으로 시작해서
만년의 두 권짜리 두툼하고 빽빽한 『화두』까지를  
끈기와 애정과 성찰의 힘을 내어 같이 따라온
많은 독자들 앞에도 나와 계십니다.  
 
바깥 내왕을 그치신 지 수십 년 되시었으니

좀 어색하고 수줍으실까요.
 
제가 서울예대 그해 제일 나이 먹은 학생이었을 적

선생님 수업시간에 있었던 한 일화를 떠올려드리는 것으로
오늘 어색하고 수줍은 시간을 좀 흩으려 드릴까요.
저에게는 혼자 아껴먹는 이야기라서
끝까지 내놓고 싶지 않지만,  
선생님 마지막 대면하는 이 시간을 당해서  
오히려 제 스스로 더 풀고 싶은 마음이랍니다.
 
그때, 수업을 진행하시다가

불현 정지하시더니, 침묵의 뜸을 꽤도 들이시더니
오십여 학생제군을 휘돌아보시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지금 여기 살아 있는 게 있다, 그게 뭐냐?”
 
(뭐야, 이거? 질문이야 뭐야? 어쩌라고?)

창가에 놓인 두 개 화분으로 제 눈길이 흘깃거리는 동안
선생님은 강단에서 내려오시어  
너, 말해 봐라. 너, 말해 봐라.
다섯 번째 학생을 지목하며 대답을 재촉하셨습니다.
한 학생도 답을 내지 못하고 있고,
강의실은 쥐죽은 듯 찬물에 끼얹어진 듯  
질식할 듯한 고요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뭐야, 정말? 그럼, 당신과 여기 학생들 다 산 것들 아니란 거야?)

강의실은 계속 압력이 올라 고압 불덩이 속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완전 쥐구멍에 몰린 쥐새끼신세로  
자세 하나 머리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그날따라 맨 뒷자리 가생이에 앉은 저한테까지 급기야 오시어
진명이, 너도 모르겠냐? 뭐냐? 말해 봐라!
투명망토를 뒤집어쓴 유령학생이 되지 못했던 것이 한탄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올려다보며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대답은
“지금 이 수업시간이요!”
입이라는 구멍이 있었으니,  
뭐든지 튀어나오거나 해야 하는,  
그때는 뭐든지 답해야 하는 시간이었으니까요.
 
1970년대 후반 최인훈 작가의 모습. [중앙포토]

1970년대 후반 최인훈 작가의 모습. [중앙포토]

허어, 그런데 가타부타 말도 없이  
표정 하나 바뀌지도 않고 교탁으로 돌아가시고는
정말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다음 수업을 진행하시는 거였습니다.
당신도, 혹 답 모르시는 거 아냐.  
돼도 않는 질문을 던져놓고서는…완전 혼자만 고소해하시는 건가.
그때 저 학생신분일지라도 역시 하루하루의 현실이 간두지세(竿頭之勢)여서
그놈의 이상한 질문과 이상한 대답  
더 이상 관심을 내서 매만지고 있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답을 들으시고도 별무관심, 교탁으로 돌아가
선생으로서의 의무 다음 진도를 덤덤히 진행하시던 선생님.
 
길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과 대면하는 마지막 시간이어서
생전에 뵙고 나눠보았더라면 좋았을 심중의 이 에피소드를 길게 올렸습니다.
사실은 선생님과 장난하고 싶은 맘 남아서인지도 모릅니다.
그 옛 수업시간,  
쥐구멍에 몰린 쥐새끼신세가 됐던 제 부아 난 값만큼
기회는 지금이라 똑같이 선생님께 되갚아 드리고 싶은 장난을 좀…  
뭐, 그래봐라. 이런 선생님의 대답이 왔다고 치고
그럼, 때와 장소도 못 가리는 맹랑한 제자 되어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되고 선생님은 학생이 됩니다.

저는 강의하다 불현 멈추고
“지금 여기 살아 있는 게 있다, 그게 뭐냐?”
괴질문을 던져놓고 학생들을 다구칩니다.
너, 말해라. 너, 말해라. 너, 너, 너…
“어, 최인훈군, 자네도 모르겠냐? 뭐냐? 말해 봐라!”  
하하, 선생님, 답 말하시겠습니까. 않으시겠습니까.
답도 뭐도 아무 말 못하시겠습니까.  
가타부타 역시 말 없으신 선생님.
선생님께서 답을 하시든 하지 않으시든 또 못 하시든  
말을 내고 계시지 않는 이처럼의 답은 다 좋은 답이고 맞는 답입니다.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그렇게 보란 듯이 계셨던 선생님이시니까요.
 
죄송합니다. 길었지요.

학교에서 스승으로서 삼엄했던, 그 삼엄이라는
격하게 친절했던 선생님 수업의 일면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학생으로서는 홍복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오늘 먼 길 가시려 문밖을 나오신 선생님.

모두의 앞에 말쑥하게 오신 선생님.
아침 꽃향기 좋습니다.
새로 오르는 햇살도 환하고 투명합니다.
 
부디 하늘세상의 격 높고 해맑은 영혼 되시어

북녘 고향땅 회령과 원산, 뼈와 살을 익혔던 그리운 곳곳을  
다시 소년의 명랑함과 순정함으로 꼼꼼히 디뎌보시고,
더 멀리 가이없는 원적의 본향으로
너울너울 당도하소서.
당도해 크게 평안하시고
크게 자유하소서.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본향에 드신 다음
대한민국 작가로서의 평생의 화두
민족분단의 오늘과 내일에 대한 평생의 심각한 성찰
세계 속 인간과 개인은 어찌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평생의 탐구를
생전처럼 계속 더 밀어가시든지 마시든지
그건 선생님 마음대로 하소서.
그건 마음대로 하소서.
(끝)         
 
한편 정부는 고 최인훈 작가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한다. 고인은 1999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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