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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의 금융 산책] 1조원 돌려줘야 하나…생명보험사 목 줄 죄는 즉시연금 뭐길래

 보험업계에 1조 원의 폭탄이 터질 태세다. 금융감독원이 부실 약관에 따른 즉시연금의 과소 지급분에 대한 일괄 구제를 압박하고 있어서다. 
 
 생명보험사가 일괄 구제에 나서면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비용은 1조 원에 이른다. 소비자 보호 기치를 든 당국의 공세에 가입자와 주주 눈치까지 봐야하는 보험업계는 사면초가다.  
 
 보험업계의 뜨거운 감자가 된 건 즉시 연금 중에서도 ‘만기 환급형 즉시 연금’이다. 
 
 즉시연금은 가입자가 한꺼번에 목돈(보험료)을 내면 보험사가 이를 운용해 매달 이자를 생활연금으로 지급하고 만기 때 원금을 돌려주는 상품이다. 세제 혜택도 있어 은퇴자나 자산가들이 많이 가입했다.  
삼성생명

삼성생명

 
 즉시연금 문제는 한 건의 민원에서 시작됐다. A씨는 2012년 9월 삼성생명 만기 환급형 즉시연금에 가입했다. 
 
 가입금액(보험료)은 10억원으로 보험기간은 10년이다. 만기가 돌아오거나 가입자가 사망하면 보험료 원금인 10억원을 돌려받는다. 약관에 명시된 최저보증이율은 연 2.5%였다.

 
 A씨는 공시이율(운용자산이익률과 외부지표금리를 가중평균한 금리)이 떨어져도 최저보증이율을 적용한 월 208만원의 연금이 들어올 것을 기대하고 이 상품에 가입했다. 
 
 가입 후 3년 정도는 문제가 없었다. 가입 후 1년 동안은 매달 305만원, 이후 2년간은 매달 250만원이 넘는 돈을 연금으로 받았다.  
 
 하지만 기준금리와 시장금리가 하락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월 지급 연금액이 급감했다. 연금액이 월 136만원까지 떨어지자 A씨는 “매달 208만원을 지급하라”며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민원을 제기했다.  
 
 최저보증이율 2.5%를 명기한 약관이 존재함에도 A씨에게 지급한 연금액이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은행 예금과 다른 보험 상품의 특징 때문이다.

 
 보험 연금상품은 사망보험금을 지급하고 은행의 예금이자보다 높은 공시이율을 제시하는 대신 보험료에서 사업비와 위험보장료를 뗀다. 이게 순보험료다. A씨의 경우 순보험료는 총 5700만원의 사업비와 위험보장료가 빠진 9억4300만원이다. 보험사는 이 순보험료를 운용해 연금을 지급한다. 이렇게 되면 최저보증이율을 적용해 A씨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월 196만원이다.
 
 그렇지만 A씨는 매달 196만원도 받지 못했다. 운용수익에서 A씨에게 연금을 지급하기 전에 책임준비금을 뗐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가입자 사망이나 만기가 돌아왔을 때 보험료 원금(A씨의 경우는 10억원)을 돌려주기 위해 운용수익의 일부를 책임준비금으로 쌓아둔다. 
 
 사업비와 위험보장료(5700만원)로 제한 금액을 만기 때까지 채워둬야만 원금을 돌려줄 수 있어서다. 여기에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며 원금을 맞추기 위해 보험사가 쌓아둬야 할 적립금 액수가 커지면서 A씨에게 돌아갈 연금액은 더 줄어들었다.

 
 A씨와 보험사의 입장이 엇갈리며 분쟁이 생긴 지점이다. A씨는 “운용수익에서 책임준비금을 뗀다는 내용이 약관에 명시되지 않았던 만큼 월 208만원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삼성생명은 “약관에서 ‘연금계약 적립액은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서 정한 바에 따라 계산한 금액으로 한다’고 돼 있다”며 “기초서류(약관, 산출방법서, 사업방법서)에 따라 산정한 것”이라고 맞섰다.  
 
 분조위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분조위는 “산출방법서는 보험사 내부의 서류일 뿐 약관만 보면 연금액이 최저보증비율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며 “순보험료에 최저보증이율을 적용한 수익을 연금으로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저금리 상황을 염두에 넣지 않은 채 보험을 설계한 문제가 드러난 데다 부실하게 작성된 약관이 생보사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보험사도 약관이 부실하게 작성된 부분은 인정한다. 삼성생명은 이 건과 관련한 분조위의 결정은 수용했다. 
 
 한화생명의 즉시연금 관련 민원에도 분조위는 같은 결정을 내렸고 한화생명은 이의제기 기간인 다음 달 10일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문제는 이 결정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데 있다. 보험업계가 난감해하는 부분은 두 가지다. 우선 이 결정이 보험의 기본원리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순보험료 운용수익을 전액 연금으로 지급하면 만기 시 지급할 보험료 원금을 맞추기 위한 적립금을 쌓을 수 없다. 사업비와 위험보장료는 고스란히 생보사가 감당해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사업비와 위험보장료라는 보험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결정이란 설명이다.

 
윤석헌 금감원장 취임 첫 기자간담회가 9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열렸다. 윤 원장은 이날 금감원 감독 강화와 금융개혁 방안 등 장기적인 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오종택 기자

윤석헌 금감원장 취임 첫 기자간담회가 9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열렸다. 윤 원장은 이날 금감원 감독 강화와 금융개혁 방안 등 장기적인 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오종택 기자

 더 부담스러운 부분은 금감원이 강조하는 ‘일괄 구제’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9월 기자간담회에서 "즉시 연금 미지급금에 대해 일괄구제 제도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즉시 연금과 관련해 분조위 결정을 참고하라는 안내 공문을 보내며 생보사 전체 16만건이 넘는 유사 사례에 대해 책임준비금으로 제했던 돈을 모두 연금으로 지급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삼성생명 4000억원을 비롯해 생보사가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할 돈은 1조원에 달한다.

 
 일괄구제는 금융사고나 민원이 발생하면 이를 금감원 홈페이지에 공시해 피해자의 분쟁조정 신청을 받은 뒤 분조위에 일괄 상정해 한꺼번에 구제하는 제도다. 
 
 올 하반기에 도입할 예정으로 현재는 시범 적용하고 있다. 아직은 제도적 근거도 없다. 지금은 개별적으로 분쟁 조정을 신청한 경우에만 구제된다. 
 
 제도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일괄 구제와 관련한 공은 26일 열리는 삼성생명 이사회로 넘어갔다. 당국이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이사회의 결정도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분조위가 결정한 한 건을 5만5000명의 가입자에게 모두 적용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특히 이번 결정이 보험사 입장에서는 보험의 원리와 맞지 않는 측면이 있는 만큼 일괄 구제를 했을 경우 이사회의 배임 논란이 빚어질 수도 있다. 주주들이 배임 문제를 제기하면서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업계는 금감원에 구체적인 행정 지도 공문 등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금감원은 개별 회사에서 알아서 결정하라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동양그룹 기업어음(CP) 등 분쟁조정에 들어갔다가 일괄 구제된 사례는 많다”며 “보험은 보험사 책임하에 파는 것으로 피해자 구제를 권고한 안내 공문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일괄 구제를 강제할 근거가 없는 만큼 당국도 즉시 연금 과소지급액을 돌려주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낼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실 약관의 문제에서 금감원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약관을 승인한 것이 금감원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니 보험사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지난해 자살보험금 사례처럼 보험업계가 손을 들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급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금감원이 종합감사에 나서거나 기초서류(약관) 위반 제재 등에 따른 과징금도 부과할 수 있어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26일 삼성생명 이사회의 결정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삼성생명이 백기를 들고, 이의제기 신청 기간에 한화생명까지 분조위의 결정을 수용하면 다른 보험사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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