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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문학 개척자, 남북 모두에 ‘광장’의 숙제 남기다

23일 타계한 소설가 최인훈. 분단 이후 남북 양쪽 체재를 다룬 첫 소설 『광장』을 써 한국소설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앙포토]

23일 타계한 소설가 최인훈. 분단 이후 남북 양쪽 체재를 다룬 첫 소설 『광장』을 써 한국소설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앙포토]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이었다고 할 수 있다.”
 
23일 오전 타계한 최인훈의 1960년 소설 『광장』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현(1942~90)은 1976년 이런 평가를 내렸다. 남북 양쪽의 체제를 다룬 분단 이후 첫 소설, 4·19 학생혁명과 5·16 군사정변 사이의 해방 공간에서 비로소 그런 작품이 피어날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남과 북의 피비린내 나는 이념 대결에 환멸을 느낀 소설의 주인공 이명준이 중립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는 설정은 지금 기준으로도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그만큼 파격적이었다. 61년 정향사 판 이후 출판사를 여러 번 바꿔가며 쇄를 거듭해 1976년 이후 문학과지성사 판만 70만 부, 전체적으로 100만 부가 넘게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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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이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최인훈은 어떤 의미에서 끊임없이 『광장』을 벗어나고자 했다. 무려 아홉 차례나 수정을 가했다. 주요 내용이 변경된 개정만 다섯 차례에 달한다. 한국문학 사상 가장 많은 판본이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주요 변경이 이뤄질 때마다 서문을 다시 붙였는데, 73년 서문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는 12년 전, 이명준이라는 잠수부를 상상의 공방에서 제작해서, 삶의 바닷속에 내려보냈다. 그는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심해의 숨은 바위에 걸려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명준의 발목을 잡았던 이데올로기는 작가 최인훈의 발목을 붙잡은 이데올로기였다. 최인훈은 1934년(공식 기록은 1936년) 두만강 변 북한 땅 회령에서 태어났다. 이명준은 최인훈의 분신, 소설에 나타난 이데올로기 분열은 작가 최인훈의 내적 분열이었다. 해방과 더불어 소련군이 밀어닥치자 함경남도 원산으로 강제 이주된 최인훈은 한국전쟁 때 월남했다.
 
체제, 이념에 대한 문제의식을 평생 이어가 5·16을 문제 삼은 장편 『구운몽』, 일본의 식민지배가 끝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한 가상소설 『총독의 소리』 등 그의 작품 세계는 잠시도 지금, 여기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예술의 형식실험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현실 비판과 모더니즘을 동시에 추구한 작가로 꼽힌다. 희곡에서도 일가를 이뤄 그의 작품들을 무대에 한꺼번에 올리는 최인훈 연극제가 1996년 열리기도 했다. 언어가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이어서 극시에 비견되는 희곡 작품들을 남겼다.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을 보내는 남은 사람들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고인은 지난 3월 말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23일 오전 10시 46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1987년 고인이 교편을 잡았던 서울예대에서 문학을 배웠던 시인 이진명씨는 “까다롭고 제자들에게 엄한 분이셨지만,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꽉 찬 느낌이 들었던 소설 수업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논리적이고 모범적인 분이셨다. 표정이 진지하다고 할까. 얕은 유머 같은 것 없이 항상 진지하고 올곧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곤 했다”고 회고했다.
 
해외에도 작품이 활발하게 소개돼 『광장』이 영어·일본어·프랑스어·독일어·러시아어·중국어 등으로, 소설 『회색인』과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가 영어와 러시아어로 번역 출간됐다.
 
동인문학상,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 이산문학상, 박경리문학상,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원영희 여사와 아들 윤구, 딸 윤경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02-2072-2091), 문학인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은 25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같은 날 오전 9시, 장지는 경기도 고양시의 공원묘원 ‘자하연 일산’이다.
 
고인은 2001년 서울예전에서 정년 퇴임했다. 당시 고별 강연에서 “시대마다 예술은 변화한다. 그러나 새롭다는 것만으로 예술의 권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새롭다는 조건 하에 예전과 똑같은 울림을 줘야 한다. 새롭지만 동시에 구닥다리여야 한다”고 말했다.
 
독자를 바꿔가며 새롭게 읽힐 그의 소설에도 적용될 발언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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