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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식 재벌개혁, ‘메스’냐? ‘핀셋’이냐?

지난해 6월 재계는 크게 술렁였다. 재벌 저격수의 현장 등판 때문이다. 한쪽에선 환호했다. 경제적 약자 보호라는 시대적 요구를 실현해주리란 기대였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얘기다. 19일로 취임한 지 약 400일이 지났다. 평가는 엇갈린다. ‘기업을 옥죈다’는 지적과 함께 ‘기대했던 개혁 속도에 한참 못 미친다’는 반론이 공존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7월 1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이날 김 위원장은 "공정위는 최저임금 상승으로 늘어나는 가맹점주의 부담을 덜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라며 올 하반기 추진하는 가맹사업법 개정 방향과 개정 하도급법에 관해 설명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7월 1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이날 김 위원장은 "공정위는 최저임금 상승으로 늘어나는 가맹점주의 부담을 덜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라며 올 하반기 추진하는 가맹사업법 개정 방향과 개정 하도급법에 관해 설명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을(乙)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취임 일성대로 그는 1년 간 시장의 뿌리 깊은 갑을 관계와 불공정 거래 차단에 천착했다. 미스터피자·대한항공 등 갑질 사건이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온 시대적 배경과 맞물렸다. 점포 환경개선 비용을 가맹점에 떠넘긴 프랜차이즈 업체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도급 분야에서도 단가 인하, 부품 밀어내기 등을 적발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3일 적발한 두산인프라코어의 하도급업체 기술자료 유용 사례도 그의 의지가 반영됐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기존 업체(A)가 납품 가격 인하 요구를 거절하자 해당 업체에 부품 제작 도면을 제출하라고 한 뒤 이를 다른 업체(B)에 전달했다. 이를 바탕으로 B가 새로운 제품 개발에 성공한 뒤 납품을 시작하자 A와의 거래를 끊었다. 납품가는 A보다 10%가량 낮아졌다. 공정위는 두산인프라코어에 과징금 3억7900만원을 부과했다.
 
이른바 '김상조 효과'는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공정위가 접수한 민원·신고 신청은 4만1894건으로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 김 위원장 취임 이후인 하반기에만 50.3% 증가했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적 약자의 기대감이 커졌고, 공정 경쟁에 대한 인식이 기업 전반으로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재계와 관가·시민단체 등은 그가 임기를 마칠 2020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가 그리는 재벌개혁의 큰 그림이 완성되는 시기다. 현안이 많고, 사람을 잘 바꾸지 않는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할 때 김 위원장은 임기(3년)를 무난히 채울 전망이다. 당초 교수 출신으로 색깔이 강한 공정위 조직을 장악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국 신설'이란 선물을 안기며 내부 신임을 확보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 기존 기업집단과를 기업집단국으로 확대, 개편했다. 이에 따라 국장급과 과장급 자리가 각각 1개, 3개 늘었다.  
 
김 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 등 대기업의 사익 편취 행위에 대해 단호하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과정에서 공익재단과 지주회사를 타깃으로 삼았지만, 핵심은 부당 내부거래 차단이었다. 내부거래는 일감이 필요한 외부 경쟁자 입장에선 기회의 상실이다. 국내 대기업의 상당수는 비상장, 비주력 계열사 만든 뒤 내부거래 통해 회사를 키웠다. 공정위 관계자는 “그 이면엔 승계 자금 마련이란 큰 목적이 존재하는 데 내부거래를 잡으면 이런 승계 문제도 양지로 꺼낼 수 있다는 게 김 위원장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축인 재벌 지배구조 개선 문제에 대해서는 정면보단 측면을 공략했다. 개별 대기업 입장에서 민감한 승계나 지배구조에 관해선 속도를 조절하는 대신, 특위를 통한 공정거래법 개정을 택했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특정 기업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반발이 크고, 시간도 오래 걸려 임기 내 교통정리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벌은 개혁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과 같은 유화적 언급도 많이 했다. 교수 시절 강조했던 기업분할 명령제 등은 시기를 늦췄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은산분리에 관한 판단 기준이 지금 시점에서 얼마나 합리적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인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다.  
 
이렇게 지난 400일 동안 김 위원장은 기업에 ‘알아서 하라’는 시그널을 자주 보냈다. 앞으로도 그럴까? 현장에선 시간을 준 만큼 8월로 예정된 공정거래법 개편안 발표 이후 구체적인 액션이 있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김 위원장 역시 지난 6월 14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주주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공정위 조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최근 자신이 몸담았던 진보진영으로부터 개혁 성과가 미진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개혁 조급증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는 발언과 은산분리 완화 언급 등이 나온 뒤엔 비판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믿고 맡겨뒀는데 재벌 개혁 속도가 더딘 건 사실 아니냐”라고 반문하면서 “이 정부가 정상 사회를 열망한 촛불로 탄생한 정부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동윤 교수는 “지금까진 환부만 공략하는 ‘핀셋’ 전략을 썼다면 조만간 ‘메스’를 꺼내 들고 개혁에 나설 수 있다”며 “갑질이나 편법 상속, 불법 채용 등으로 대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을 고려하면 이제 기업도 반발이 아닌 적응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부닥칠 난관도 분명하다. 최근 공정위는 최저임금 인상 이후 200여 개 가맹본부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가맹본부를 갑, 점주를 을로 규정하는 편의주의적 발상이란 비판이 적지 않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업주 입장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과 가맹본부로부터 받는 부담은 전혀 다른 데 최저임금의 급격히 올린 책임을 기업에만 묻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배구조 문제도 간단치 않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국내총생산(GDP)에 연동하는 방안, 지분율을 통해 사익편취 규제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과 지주회사의 지배력을 줄이는 방안 등이 담긴 공정거래법 개편안을 마련 중이다. 공정한 질서를 확립하고, 나쁜 기업을 솎아낸다는 의도지만 대안 없이 밀어붙이다간 상당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7월 3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김동연 경제부총리(오른쪽)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7월 3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김동연 경제부총리(오른쪽)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마다 주력 사업의 특성, 자본 조달 여건이 다른데 자회사는 되고, 손자회사는 안 된다는 식으로 일률적으로 규제하면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며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속세 완화 등 유인책이 함께 필요한데 압박만 해서는 갈등만 커질 것이란 지적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의 투자 의욕이 꺾이면 오히려 보호하려는 중소기업이나 약자가 피해를 본다”며 “현재 경기나 기술 개발 등 경제를 둘러싼 여러 여건까지 잘 살피는 게 공정위원장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인을 우르르 소집하듯 부르는 것도 이젠 바꿀 때가 됐다”며 “직접 찾아가서 기업의 어려움까지 들어주는 게 진짜 소통”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일정상 서울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 다른 장관급 인사와 달리 일주일에 사흘 정도는 세종에 머물며 현안을 챙긴다고 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애매한 지시를 하지 않고, 소신껏 일하라며 독려해 젊은 직원들이 좋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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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