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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은 지하철 노약자석 아예 없애자

기자
김성희 사진 김성희
[더,오래]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54)
노약자석. [중앙포토]

노약자석. [중앙포토]

 
며칠 전 일이다. 오후 7시쯤 됐으려나, 경의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강매역에서 8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한 분이 탔다. 노약자석은 이미 꽉 차 있었기에 내 옆에 섰는데 자그마한 몸이 흔들리는 것이 안쓰러웠다.
 
마침 그 앞에 앉아 있던 60대 여성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는데 내가 눈여겨본 것은 바로 옆에 앉아 핸드폰만 들여다보던 젊은이(?)였다. 차림새가 멀끔해 회사원 같았는데 절대 마흔은 넘지 않은 듯했다. 그는 옆에서 나이든 여성끼리 벌이는 ‘노노케어’ 풍경에도 나 몰라라 하고 앉아 버티고 있었다. 그러더니만 바로 다음 역인 행신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지간하면 젊은 친구가 자리를 양보하지’에서 ‘낮에 회사에서 오죽 힘들었으면’까지, ‘바로 다음 역에서 내릴 걸 그냥 일어서지’에서 ‘다음 역에서 내리니 그냥 가자 싶었나’까지. 그러다가 ‘노약자석 때문이 아닐까’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노약자석이 자리 양보 않는 핑계가 될 수도
실제 내 생각엔 노약자석이 자리 양보를 미루는 심리적 방패가 된다고 본다. 역효과가 크다는 이야기다. 돌이켜보면 만원 버스에 시달릴 때도 노인이 타면 학생이 벌떡 일어서는 풍경이 흔했다. 외려 일어서지 않는 학생에게 눈총이 쏟아지는 형편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이제는 다르다. 지하철 일반석에 앉은 젊은이들로선 ‘노약자석이 있으니 거기 앉으면 되지’ 하는 마음에 앞에 선 호호백발 노인을 외면할 명분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무료라고 하니 쓸데없이 타고 다닌다니까’하는 심리가 겹치면 절대 자리를 양보할 리 없다.
 
노약자석을 만들어 노인을 한자리에 몰아 앉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중앙포토]

노약자석을 만들어 노인을 한자리에 몰아 앉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중앙포토]

 
노인들 입장에서도 할 말이 많다. 노인이 불가촉천민도 아니고 스치기만 해도 옮는 병을 앓는 것도 아닌데 굳이 따로 앉아 가라 할 필요가 있을까. 나이든 이들을 한자리에 몰아 앉히다 보니 어쩌다 일반석에 끼어 앉은 노인을 고깝게 여기는 듯한 시선도 느껴진다. 노약자석 비율도 충분치 않다. 평일 오후 지하철 승객은 조금 과장하면 절반이 노인이다. ‘노약자석’이 설마 ‘노약자는 여기에만 앉으시오’라는 뜻은 아니겠지만 일반석에 앉은 노인은 왠지 미안해진다.
 
우리 어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인 88세까지 지하철을 탈 때 노약자석에 자리가 없으면 문가에 서서 갔다. 당신은 공연히 일반석 앞에서 서서 젊은이들에게 부담 주는 것이 싫다고 했다. 실제 이처럼 깔끔한 성격의 노인들이 적지 않다. 유심히 보면 지하철 문가에 서서 흔들리며 가는 노인들을 만날 수 있다.
 
지하철 문가에 서서 가는 노인들도 생각해야
무엇보다 예의는 강제할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노인들이 떳떳이 어디든 앉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젊은이들 역시 의무감이나 박탈감을 느끼는 대신 자기 사정에 맞춰 자유롭게 자리를 양보할 선택권을 주는 게 마땅하다. 말 많고 탈 많은 노약자석의 굴레에서 혹은 방패를 벗어던지자.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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