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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정부를 놀라게 한 건 동네 민심이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논설위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논설위원

정부가 이렇게 화들짝 놀랄 줄 몰랐다.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두고서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 성장론의 첨병이었다. 줄곧 인상을 독려해왔다. 그것도 매년 15% 이상 확 올리려 했다. 그래서 두 자릿수 인상률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속도조절론을 언급했다. 뒤이어 하반기 경제 방향까지 내놨다. 근로장려금(EITC) 확대와 같은 대목에서 최저임금이 고용시장에 끼칠 악영향을 조금이나마 줄이려는 안간힘이 읽힌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청와대에 자영업자 문제를 다루는 비서관을 신설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다음 달에는 최저임금 대책을 추가로 내놓는다고 한다. 최저임금액이 우리 경제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란 점을 자인한 셈이다.
 
그동안 정부는 “최저임금이 고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없다” “최저임금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주장해왔다. 이쯤 되면 뚝심 하나는 끝내준다는 평을 들을만 하다. 심지어 “고용 쇼크는 인구구조 탓”이라는 진단까지 했다. ‘정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는 말로 들린다. 어이없는 분석이다.
 
이렇던 정부가 댓바람으로 태도를 바꾼 이유가 뭘까. 정말 지금 경제 사정을 심각하게 바라봐서일까.
 
한국 경제는 지속해서 악화하고 있다. 내수는 침체 일로에 있다. 국내 설비투자는 계속 준다. 상품이 안 팔리고, 설비가 안 느는데 일자리가 생길 리 없다. 향후 6개월 뒤 기업경기를 전망하는 기업신뢰지수(BCI)는 98.9(100 미만이면 부정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다. OECD는 지난해에 이미 “한국 BCI는 그리스만큼 비관적”이라고 경고했다. 전 세계 경제성장률이 오르는 데 한국만 성장률을 낮춰야 하는 지경에 몰렸다. 소득주도로 성장한다고 했는데, 성장은커녕 곤두박질이다. 이 정도면 정부의 정책이 변해도 한참 전에 변해야 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을 올리기 전에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영 나빠진 경제 때문에 놀란 것으로 안 보인다. 현 정부는 공약을 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경전 모시듯 중요시한다. 불거지는 경제 현상은 경전의 문구를 기준으로 재해석하는 듯했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고작해야 경제 부처의 걱정 어린 독백 정도가 공약과 현실을 분리할 뿐이었다.
 
얼마 전 모 국회의원 보좌관이 정부가 진짜 놀란 이유를 짐작케 하는 사례를 전했다. “미용실을 갔는데 정부를 엄청 욕하더라고요. 주인이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였는데, 최저임금이 오른 뒤 돌변했어요. 주인이 분풀이하듯 불만을 털어놓으니까 손님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거들더라고요.”
 
자영업자가 누군가. 이·미용실, 편의점, 주유소, 빵집, 분식점 등 이웃 주민과 밀착돼 있다. 선거운동의 단골 거점이다. 이들의 행동반경은 민심 파급력의 지표다. 정치권에서 보면 이보다 강력한 집표(集票) 효과를 지닌 집단이 없다. 그 면에선 노조는 게임이 안 된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쪽보다 바닥 민심에 더 가까워서다. 동네 민심이란 그런 거다. 당장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대통령 지지도가 미끄럼을 타지 않는가.
 
이런 영세 상공인의 분노가 정부를 움직이게 한 주된 이유 아닐까. 이를 두고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을 역임했던 한 경제학자는 “결국 경제의 위험성보다 정치적 위협 요인이 정부를 움직이게 한 것 아니냐”고 진단했다. 경제가 정치에 갇혔다는 얘기다. 경제 사정에 따라 민심이 움직이는데, 민심을 보고 경제 정책을 다듬으니 선후가 뒤바뀐 느낌이다.
 
한반도가 펄펄 끓고 있다. 열돔 현상에 지쳐간다. 경제도 단비 소식 하나 없이 끓기만 한다. 소득주도 성장론이 ‘열돔’이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생물처럼 움직이는 경제가 그 열기를 이기지 못해 헉헉대고 있으니 말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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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