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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성급한 남북 경협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권만학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 한반도평화만들기 운영위원장

권만학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 한반도평화만들기 운영위원장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평양에서 열린 1차 비핵화 고위급 회담에서 별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헤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비핵화 협상 과정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함으로써 6·12 북·미 공동성명이 불러왔던 희망이 갈림길에 섰다. 북한은 과연 ‘빅딜’에 이르는 새로운 길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기만전술’을 반복할 것인가?
 
“6·12 공동성명은 로드맵이 없다”, “9·19 합의(2005년)보다 약하다” 등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비핵화’와 ‘안전 보장’ 교환이라는 파격적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역대 미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북한에 대해 범죄자 처벌의 시각에서 선비핵화를 주장했다. 이들은 일방적으로 선비핵화를 내세우며 북한의 안보 우려를 무시하는 리비아 모델을 적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제를 거래로 간주하고 자신의 저서에서 제시했던 거래의 기술 중 하나를 선보였다. 평화체제라는, 상대방이 간절히 원하는 자산을 사용(“use your leverage”)한 것이다. 이러한 타협적 교환은 서로가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합리성을 갖춘 것으로써 비핵화 협상이 성공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제공한다. 고위급 회담 이후에도 양 정상은 이 목표를 재확인했다.
 
변하기는 트럼프의 미국뿐 아니라 김정은의 북한도 마찬가지다. 과거와 같이 북한이 과실만 따 먹고 돌아서 버리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북한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저자세로 취소된 정상회담을 살려냈다. 새로운 북한의 모습은 중국까지 가세한 미국의 ‘최대 압박’ 제재를 꼼수로 돌파하기 위한 것 이상의 절박함을 시사한다. 오늘날 북한 시장 경제는 주민 생필품의 70~80%를 공급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은 주민 생활 개선을 압박하고 드디어 노동당이 경제 건설 총력 노선을 채택하게 만들 정도다. 북한 경제 현대화는 핵·경제 병진노선 폐기와 대미 관계 개선을 필요조건으로 한다. 북한의 절실한 경제적 필요가 파격적 리더십의 트럼프 대통령과 줄탁동기처럼 만나 정상회담은 성사된 것이다.
 
시론 7/23

시론 7/23

비핵화와 안전 보장의 교환이 합리적 해결책이긴 하지만 북·미는 해법의 순서와 일부 쟁점들에서 이견을 보인다. 디테일의 악마가 등장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선의의 국제 회담이라도 패전국처럼 자신의 국익을 포기할 협상가는 없다. 미국과 북한이 첫 고위급 회담에서 자신들의 최대 요구를 제시하며 평행선을 달린 이유이다. 북한이 과연 기존 핵무기를 포함한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할 ‘전략적 결단’을 내렸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북한이 ‘가짜 뉴스’를 띄웠다면, 잔뜩 칭찬했다가 신뢰를 배반할 경우 무자비하게 보복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 방식’상 실패할 경우 군사적 옵션이 실행될 위험성은 커진다.
 
또 미국이 자신들에게 직접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만 확실히 하고 일부 핵무기를 은닉하려는 북한의 불완전 비핵화를 수용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도 남아 있다. 이 경우 여전히 위협을 느끼는 한국과 일본이 북한과 미국에 ‘완전한 비핵화’를 설득하겠지만 이를 관철할 수단을 갖고 있을지 의문이다.
 
비핵화를 늦추거나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이 북한의 최대 전략이라면, 미국의 최대 무기는 제재이다. 미국은 제재를 최대한 늦게, 북한은 최대한 빨리 해제하기를 원한다. 중국·러시아 등이 조기 해제를 지지하고 있지만, 해제에 있어 거부권을 쥔 쪽은 미국이다. 북한이 조기 해제를 원한다면 비핵화를 가속해야 한다.
 
민감한 의제로 중국·러시아가 북한에 동조하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문제를 비용 문제로 환원시킴으로써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주둔해야 한다는 워싱턴과 서울의 주류 의견이 뒤집히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제협력 비용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예산은 한 푼도 쓰지 않을 것이라며 한·중·일의 등을 떠밀고 있다. 북한이 전면적으로 현대화 프로젝트를 가동하여 중국·베트남이 개혁개방했을 때와 같은 이득을 창출할 수 있다면 기초 투자로서 비용 분담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은 중국·일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있다. 민족 정통성을 다투고 있는 북한 정권 입장에서 한국민과 기업에 자유로운 통행과 투자를 허용한다는 것은 붕괴를 자초하는 길이다. 자칫 한국이 민족주의적 순정과 주도적 열정에 몰입돼 최고 부담에 최소 이득을 떠안을 수도 있다. 이 역사적 전환기에 창조적 상상력뿐 아니라 현실주의적 신중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권만학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한반도평화만들기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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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