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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자들, 국내 주식 팔고 금·달러 사들였다

국내 주식은 일단 처분. 과감한 현금화 후 관망. 목표 수익률은 낮게, 투자 기간은 짧게, 위험은 적게.
 
금융사 프라이빗뱅커(PB)들이 귀띔해준 요즘 부자들의 투자 트렌드다. 중앙일보가 주요 은행·증권사 PB센터장 8명에게 “요즘 부자들은 어디에 투자하느냐”고 문의한 결과 답변들에서 공통으로 이런 특징들이 포착됐다.
 
일단 국내 주식은 부자들의 투자 리스트에서 탈락하는 분위기다. 미·중 무역전쟁이나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주식으로 대표되는 위험자산에 거액을 투자하기가 망설여지는 시기라서다. 특히 한국 증시는 고점을 치고 내려온 뒤 지지부진한 추세인 데다 경제 전망도 밝지 않아 투자 선순위에서 배제되는 분위기라고 PB들은 전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PB들에 따르면 자산가 A씨는 며칠 전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면서 국내 주식을 모두 팔았다. 그는 자산의 10%는 미국 주식, 5%는 일본 주식으로 채웠고 중국 주식도 2% 정도 담았다. 달러 예금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국내 주식은 단 한 주도 사지 않았다.
 
이노정 한국투자증권 삼성동PB센터장은 “투자심리가 많이 위축돼 있어 ‘국내 주식이나 국내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자’는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유현숙 NH투자증권 프리미어 블루 강남센터장도 “최근 들어 주식 시장과의 연동성이 약한 상품을 찾는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의 PB센터들에서는 자산을 전부 현금화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고 한다. 문동호 삼성증권 SNI강남파이낸스센터 지점장은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자산을 모두 현금화한 뒤 투자 시점을 기다리려는 고객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현금화 행진’에는 고액 자산가들의 현 정부 불신도 일부 깔려 있다고 PB들은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강남 지역의 한 PB는 “고액 자산가 중에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분이 많은데 이들 중 일부는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이 못 미더워 주식에 투자했다가는 손실을 볼 것 같다’며 현금화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고액 자산가 특유의 안전추구 성향도 빼놓을 수 없다. 유정희 KB국민은행 강남 스타PB센터장은 “원래 고액 자산가일수록 높은 수익률보다는 안전 투자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자산이 많아서 불편함이 없는데 왜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위험한 곳에 투자해야 하느냐’는 인식을 기본적으로 가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부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게 중위험·중수익 상품들이다. 수익률과 위험성도 모두 중간 정도인 상품들을 말한다. 수익률이 낮아도 좋으니 위험도가 낮은 상품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대표적 상품이 부동산 펀드다. 임대 수요가 많은 입지의 대형 상가를 사들여 임대 수익을 올릴 목적으로 설립된 펀드를 말한다. 가입 기간 연 수익률이 5% 내외로 꾸준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최악의 경우 펀드가 파산하더라도 부동산이라는 담보물을 확보할 수 있어 비교적 안전한 상품으로 통한다. 유정희 센터장은 “유망 상가건물을 편입하고 있는 부동산 펀드는 가입 기간도 3개월~3년으로 다양하며 가입 기간 중 연 4~6% 정도의 수익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부동산 펀드 고객들도 ‘물건’을 전보다 더 꼼꼼히 살피는 분위기라고 PB들은 전했다. 부동산 양극화 트렌드 때문에 자칫 수익성이 나쁜 곳에 잘못 투자했다가는 손실을 볼 가능성도 있어서다. 금리가 올라 부동산 수익성이 나빠지거나 신흥국발 세계 경제 위기가 터질 경우 부동산 시장이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더해졌다. 이재철 KEB하나은행 클럽1 PB센터장은 “투자 대상 물건이 투자 기간 월세를 잘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만기가 됐을 때 여차하면 매도할 수 있는 물건인지 등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 등을 고려해 ‘부자 포트폴리오’에서 달러 자산이나 미국 투자 비중도 늘어나는 추세다. 달러 현물이나 예금뿐 아니라 최근에는 미국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달러 자산 비중을 늘리기도 한다.
 
“지금은 쉬어가는 타임” 현금화 후 관망 분위기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노정 센터장은 “미국 나스닥 지수는 계속 오르고 있는데, 막상 고객들은 이미 많이 올랐다는 생각에 미국 주식이나 펀드를 사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달러 자산을 가지고 가자는 취지에서 미국 주식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도 재차 주목받고 있다. 김대한 신한PWM 압구정 중앙센터장은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 돈은 금과 같은 안전자산으로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이 골드바 등 금에 투자하기 좋은 시점”이라며 “다만 원자재 시장은 원래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내 금 투자 비율이 10%를 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헤지펀드에 주목하는 부자들도 늘고 있다.  
 
문동호 지점장은 “요즘 부자들은 주식형 펀드를 환매해서 ‘롱숏’이 가능한 헤지펀드에 10억~30억원씩 자금을 옮기곤 한다”고 말했다. ‘롱숏’이란 주가 상승을 예상하면서 투자하는 ‘롱(매수)’과 하락에 대비하는 ‘숏(매도)’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주가가 내려간 기술주를 사고, 많이 오른 화장품주는 파는 식의 전략이다. 문 지점장은 “변동성이 적고 수익이 안정적이라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유명 헤지펀드 들은 가입 조건이 제한적인 사모펀드들이지만 최근에는 ‘미래에셋 스마트헤지펀드셀렉션 펀드’ 등 소액으로도 사모 헤지펀드에 재간접 투자할 수 있는 공모형 상품도 있다.
 
부자들은 단기 고금리 채권에도 방망이를 짧게 잡은 채 뛰어들고 있다. 유현숙 센터장은 “수요에 맞춰 1년~1년 6개월 이내에 콜옵션(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되살 수 있는 권리) 행사가 확정되거나 유력한 국내 우량기관의 달러 표시 조건부자본증권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만기가 많이 남은 상품이라 해도 콜옵션이 행사되는 순간 만기가 도래하는 구조라 투자 기간이 길지 않고 수익률도 연 4.5~5% 정도 된다는 게 유 센터장의 설명이다.
 
이 밖에도 ▶초대형 투자은행(IB)들이 만기 1년 이내, 연 2% 중반대 금리 지급 조건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발행 어음 ▶만기 5년에 연 4% 금리를 주는 은행권 코코본드(조건부 신종자본증권), ▶대출채권이나 매출채권을 엮어서 만든 ‘확정금리 추구형 펀드’ 등도 부자들의 짧은 만기와 적정한 수익률로 부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재철 센터장은 “부자들의 투자 방법이 그들만의 전유물은 아닌 만큼 일반인들도 이 방법들을 참고해 투자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무작정 남의 방법을 따라 해서는 낭패를 보기 십상인 만큼, 자신만의 투자 원칙과 기준을 정립해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정용환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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