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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 없는 집이 서울에? 에너지제로 주택단지 가보니

[천권필의 에코노믹스]
생태학(Eco-logy)과 경제학(Eco-nomics)이 같은 어원(Eco)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에코(Eco)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온 단어로 ‘집’을 뜻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집인 지구를 지키는 일이 인간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생존의 문제가 됐습니다. [에코노믹스]는 자연이 가진 경제적 가치를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있는 에너지제로주택 노원ez하우스. [사진 이응신 명지대 교수]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있는 에너지제로주택 노원ez하우스. [사진 이응신 명지대 교수]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는 국내에서 하나 밖에 없는 독특한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바로 친환경 에너지제로주택인 '노원 이지(ez, Energy Zero)하우스'입니다. 국내 최초로 에너지 자급자족을 목표로 내세운 국민 임대형 공동주택 단지입니다.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리던 지난 18일 노원 이지하우스를 찾아갔습니다. 지난해 11월 입주를 시작한 이후 맞은 첫 여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단지에 들어서자 독특한 구조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단지 안에 아파트와 연립주택, 단독주택이 모두 있었기 때문이죠. 현재 이곳에는 121세대가 6년 장기 임대 계약을 맺고 살고 있습니다.
 
오전 11시쯤인데도 바깥 기온은 이미 30도를 넘었고, 햇볕은 몸이 녹아내릴 것처럼 뜨거웠습니다. 서둘러 아파트 1층에 있는 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10평이 조금 넘는 실내에는 쾌적함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집안 어디에서도 에어컨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중앙 열회수 환기장치가 집 안에 찬바람을 보내주고, 대신 뜨거운 바람은 가져가면서 실내 공기를 순환시켜 주고 있어요. 그래서 에어컨이 없어도 실내 온도를 26도 수준으로 유지시켜 주는거죠. -이응신 명지대 제로에너지건축센터 교수
 
이응신 교수가 천장에 설치된 환기구를 가리키며 설명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이 집에 살면서 에너지제로주택이 어떻게 운영되는 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응신 교수가 노원ez하우스 공동주택 실내에 있는 환기구의 온도를 측정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이응신 교수가 노원ez하우스 공동주택 실내에 있는 환기구의 온도를 측정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연간 전기료 97만 원 절약” 
그렇다면 어떻게 ‘에너지 제로’가 가능할까요?
 
원리는 간단합니다. 일단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꼭 필요한 에너지는 단지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시설을 통해 직접 만들어 쓰겠다는 것입니다.
 
이명주 명지대 제로에너지건축센터장은 “여름철에 26도, 겨울에는 20도 정도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화석 에너지량을 예측해서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하고 거기서 발전하는 전력량과 입주민들이 소비하는 전력량이 1년 동안 제로가 되는 게 에너지제로주택의 목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센터장은 이를 위해 건축 설계에서부터 '패시브 기술'을 적용해 에너지소비량을 61%가량 줄였습니다. 패시브(Passive) 기술은 3중 유리창처럼 건물 단열을 대폭 강화해 에너지 손실을 차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환기장치 같은 고효율 설비 기술로 13%를 더 아꼈습니다.
 
에너지제로주택 노원ez하우스 내에 있는 단독주택. 천권필 기자.

에너지제로주택 노원ez하우스 내에 있는 단독주택. 천권필 기자.

그는 에너지제로주택이 폭염에도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비결로 벽을 꼽았습니다. 외벽을 살펴보니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아파트와 달리 두꺼운 단열재가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낮 동안에 콘크리트가 뜨거워지면 해가 진 이후에도 열을 방출하는, 또 다른 태양이 나를 둘러싼 공간에 있는거에요. 그래서 열대야가 있는 거죠. 하지만, 에너지제로주택은 콘크리트가 열을 머금지 않도록 단열재가 최대한 열을 차단시켜주니까, 밤 중에는 마치 동굴에 있는 것처럼 콘크리트가 실내온도를 쾌적하게 유지시켜 주는거에요. -이명주 센터장
 
단지 내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이 센터장은 실제로 최근 사흘 동안 집을 비웠는데도 실내 온도가 28.5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주민 김기정(28)씨는 “외부의 열이 집 안에 들어오지 않아서인지 선풍기만 틀고 있어도 금새 서늘해진다”며 “혹시 몰라 이전에 쓰던 에어컨을 가지고 왔지만 필요가 없어서 설치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전기만 사용…“전기료 많다는 불만도” 
노원ez하우스 공동주택에서 외부 블라인드로 햇볕을 차단하고 있다. [주민 김기정씨 제공]

노원ez하우스 공동주택에서 외부 블라인드로 햇볕을 차단하고 있다. [주민 김기정씨 제공]

그렇다고 에너지제로주택이 마냥 입주민들에게 좋은 것 만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낮 동안에는 햇볕이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외부에 설치된 블라인드를 꼭 내려야 하고요. 벽에 못을 박는 것조차도 에너지가 손실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이 센터장은 “제로에너지를 만든다고 해서 전기를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실제로 집 안의 모든 에너지 사용량은 난방·조명 등 종류별로 실시간 측정되기 때문에 어디서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는 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요리를 할 때도 가스가 아닌 전기레인지를 쓸 정도로 집 안의 모든 에너지를 전기로 쓰기 때문에 처음에는 전기료가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느냐는 불만도 많았어요. 하지만, 주민들도 점점 에너지제로주택에 적응하면서 평소 에너지 소비 습관은 물론 일상까지 바뀌고 있어요. -이 센터장
  
실제로 지난 5월 한 달간 전체 단지가 낸 전기요금은 499만 원인데, 이 중 태양광 발전으로 238만 원을 돌려 받았습니다. 결국, 한 세대가 2만 1600원 정도의 전기요금을 낸 셈입니다. 이 센터장은 “아직 입주 첫 해다 보니 시행착오가 있지만, 거주 기간이 길어질수록 주민들이 내는 전기요금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후변화 시대에 맞는 대안 주택”
노원ez하우스 외벽에 설치된 태양광 전지판. 천권필 기자.

노원ez하우스 외벽에 설치된 태양광 전지판. 천권필 기자.

건물에서 쓰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건물이 밀집한 대도시는 더욱 그렇죠. 서울의 경우 건축물이 사용하는 전력사용량이 전체의 83%나 됩니다.
 
해외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오래 전부터 건물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규제를 강화해 왔습니다. 유럽의 경우 2020년까지 신축건물에 대해 제로에너지를 의무화하기로 했습니다.
 
정부 역시 2030년까지 모든 건축물에 제로에너지 인증을 받도록 할 방침입니다. 기존 건축물에 대해서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도록 그린 리모델링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아직은 생소해 보이는 에너지제로주택이 새로운 주거 문화로 자리잡는 날도 멀지 않아 보입니다.
 
이 센터장은 “기후가 혹한과 폭염이 번갈아 나타나는 식으로 양극화되면 현재의 주택은 감당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며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을 만들려면 결국 에너지제로주택이 대안이 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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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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