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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마크]이인영, "586이 기득권? 칼자루 쥐어본 적 없다"

 
동대구역 철길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역사(驛舍)를 나와 햇빛을 마주하자 “헉”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헛웃음이 나왔다. 18일 대구의 최고 기온은 섭씨 35.6도.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란 별칭답게 이날 대구는 전국에서 가장 뜨거웠다.
 
KTX에서 내리기 전, 일정을 확인하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KTX에서 내리기 전, 일정을 확인하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얼굴도 살짝 달아올랐다. 그는 지방선거 때 대구에서 당선된 이들을 상대로 특강을 하러 내려온 참이었다. 몇몇 대구시당 관계자들과 1인분에 7000원 하는 ‘복매운탕’으로 점심을 먹은 뒤 강연 장소인 YMCA 강단에 섰다. 그때까지 그는 감색 양복 상의를 벗지 않았다.
 
강연 시작 전, “상의를 벗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청중이 웃으며 “네”라고 하자 그는 고개 숙여 인사를 마친 뒤 재킷을 벗고 셔츠 소매를 걷었다. 이후 30여분간 국회의 개헌 논의 과정, 전망을 설명했다. 그는 국회 개헌특위 여당 간사를 지냈다.
 
“지금은 일하기 시작할 때다. 경기는 하강 국면이고 2~3년 후면 침체기일 수 있다. 이런 국면에서 개헌을 얘기하면,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다.”
 
대구지역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개헌을 주제로 강연하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구지역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개헌을 주제로 강연하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청중은 열심히 적었고, 때론 고개를 끄덕였다. 강연 중 웃음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강연을 마칠 즈음 돼서 이 의원이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다. 응원해 달라”고 머쓱하게 얘기하자 비로소 웃음이 터졌다.
 
앞서 서울에서 대구로 향하는 KTX에 나란히 앉아 1시간 40분가량 묻고 답했을 때도 그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지방선거 압승은 민주당의 공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인가.
“‘잘하는 문재인 대통령 힘 실어주자’와 ‘평화를 선택하자’, 그리고 ‘홍준표 전 대표와 자유한국당은 좀 찌질하다’는 세 가지 변수가 대승을 안겨줬다.”
민주당은 역할이 없었다?
“이제 민주당 차례다. 다음 총선 때면 대통령도 평가받는 위치로 바뀐다. 그런데 세계 경제가 하강기로 들어가고, 구조적으로 더 어려워져 있을 상황이다.”
문 대통령과 인연이 있나.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편이다. 사적으로 대통령 되기 전에 여러 번 만난 사이다. 공적으로는 개헌 논의할 때 보조를 같이 맞췄으니 충분한 신뢰는 있다.”
지연이나 학연은 없어도 업연(業緣)은 있는 셈이네.
“내가 측근이나 친문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런데 친문이냐 아니냐를 딱 나눠서 볼 필요 있나. 대통령 되시기 전에는 소주도 같이 좀 마신 편이다. 코드가 맞았는데 나보다 품성이 좋더라. 더 담백하고, 경청은 하되 주관은 확실한 분이더라.”
소주 한 잔 하고 싶겠다.
“에이, 포기하고 산다. 대통령 후보 되신 이후부터는. 후보 되기 직전 개헌을 화두로 한 병쯤 서로 마신 뒤로는 못 했네.”
 
이 의원은 향후 2년간 집권 여당을 이끌 당 대표를 선출하는 8ㆍ25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공식화한 상태다. 2015년 2월 전당대회 때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는데, 그때는 3위였다. 1위가 문 대통령이었다.
전당대회 전망 좀 해보자.
“친문이냐 비문이냐 하는 구분을 없애버려야 한다. 당이 어떤 가치와 방향으로 나갈 건지 치열한 논쟁이 있어야 한다.”
형이상학적이다. 사람들은 이런 걸 안 좋아한다.
“2010년엔 ‘복지를 통한 진보의 길’이란 화두가 있었고,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의 논쟁으로 번졌다. 이런 논쟁이 필요하다.”
이번엔 뭐가 화두가 되어야 하나.
“선생님은 괜찮고 전교조는 안 된다는 식의 편견을 넘어서는,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대기업의 약탈적 마진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나눠줘야 한다. 적어도 경제 분야에선 남북이 하나 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
전당대회 주자들 모두 ‘70만 권리당원’을 얘기한다.
“권리당원이 많아지는 건 바람직하다. 더 성숙하고 깊이 있는 토론이 벌어지면 좋은 거다. 다만 ‘너는 친문재인이냐 아니냐’ 그런 거로만 하지 말고 ‘다 문재인이다’는 전제로 향후 20~30년을 어떻게 갈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이 의원이 애착을 갖고 활동하는 의원 모임이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다.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개혁 성향의 의원 모임으로, 노무현 정부 당시 집권 여당의 주류였다. 여기에 속한 의원들은 소위 ‘GT’계라고 불린다.
권리당원 중 다수는 이른바 ‘문파’들이고 이들은 민평련을 좋아하지 않는다.
“민평련 안에서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많다. 줄을 안 선 사람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데 김근태 선배 가신 이후 ‘누구를 위한 정치’는 안 한다는 생각이어서 그렇게 안 했을 뿐이다. 문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노영민 주중 대사 같은 경우도 민평련이다. 편 나누기 좋아하는 일부의 언어도단이다.(※조용히, 조곤조곤 얘기하던 그의 목소리가 이 대목에서 조금 커지고 빨라졌다.)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안다. 당시 누가 1등 할지 나도 알았고. 그걸 몰라서 안 한 게 아니다. 권력을 탐하는 건 내 정치의 과제가 아니다. 끊임없이 진보의 가치를 추구하는 게 내 과제다.”


80년대 전대협 활동 당시의 이인영 의원.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그는 대표적인 '운동권'이자 '586' 정치인이다.

80년대 전대협 활동 당시의 이인영 의원.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그는 대표적인 '운동권'이자 '586' 정치인이다.

 
이 의원은 우리나라 첫 ‘세대 담론’의 주인공인 386세대의 대표 격이다. 386들은 시간이 흘러 586이 됐다. 50대면, 적어도 세대 상으론 우리 사회의 주역이고 역할이 많다. 그래서 물었다.
586은 기득권이 됐다는 목소리가 크다.
“겸손하게 경청해야겠지만, 기득권이란 비판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기성세대는 맞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비정규직과 최저임금을 얘기한다.”
누렸을 뿐 후진을 안 키웠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가 직접 칼자루를 쥐어 보지 못했다.”
칼자루는 누가 쥐나. 당 대표가 쥐나.
“그렇다. 그런 면에서 세대교체가 안 됐다. 후배들을 진출시키려 해도 최종 결정은 우리 몫이 아니었다. 언제든 비켜줄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우리의 그것보다 더 좋아서 밀어낸다면 기쁠 거다. 그런데 무슨 권력 싸움하듯 할 문제는 아니다.”
586이 우리 정치의 주역이 아니라는 건가.
“문재인 정부는 ‘3철(양정철ㆍ이호철ㆍ전해철)’의 정부일 수는 있지만 586의 정부는 아니다. 지금은 우리 세대의 맛을 보여주고 있는 거다. 더 담대한 평화 통일, 시장을 하나로 통일하는 정도까지는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
  
서울시청 앞 서울 광장을 찾은 이인영 의원. 왼쪽은 그와 함께 586을 대표하는 정치인인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울시청 앞 서울 광장을 찾은 이인영 의원. 왼쪽은 그와 함께 586을 대표하는 정치인인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화를 마무리할 무렵, 그의 휴대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부인 이보은(50)씨 사진이 배경화면이었다. ”앳돼 보인다“고 하자 표정이 밝았다.
 
“작년 요맘 때 심장 마비가 와서 한 달쯤 있다가 깨어났다. 그 후 같이 외출했을 때 찍은 사진인데, 이렇게 예뻐졌더라. 그런데 1년쯤 지나니 다시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웃음) 지금은 ‘마르쉐’라고 농부 시장 관련 활동을 한다. 나보다 10배는 좋은 사람이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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