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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열환자 무직·농어민 최다 … 폭염은 ‘약한 고리’를 덮친다

[SPECIAL REPORT] 가마솥 한반도 
폭염 속에 네 살 어린이가 어린이집 통원 차량에 갇혀 숨졌다. 올 여름 들어 18일까지 폭염으로 숨진 사람은 모두 8명이다. 본격적인 폭염이 작열한 이번 주에만 5명이 사망했다. 온열질환자 수는 801명. 이 중 135명이 입원 중이고, 46명은 중환자실에 있다. 이젠 여름철 더위를 ‘더위’라 하지 않는다. ‘폭염’이라 부른다. 폭염이 ‘침묵의 살인자’에 명단을 올린 지도 꽤 됐다.
 
조용성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2015~2060년 사이 폭염에 따른 65세 이상 연령층의 조기 사망자 수가 최소 14만3000명, 최대 22만2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국내 7개 대도시 고령층 분석을 통해 예측하기도 했다. 국립환경과학원 보고서에 따르면 2001~2010년 폭염으로 인한 사망 부담은 인구 10만 명당 0.7명이었는데, 그 두 배가 넘는 1.5명 선에 도달하는 시기는 2036~2040년이라고 관측했다. 이처럼 폭염 현상과 관련해선 낙관적인 전망이 없다.
 
 
올해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벌써 8명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폭염 피해의 또 다른 얼굴이 있다. ‘폭염의 불평등 현상’이다. 많은 전문가는 폭염 피해를 키우는 요인으로 콘크리트에 갇혀 온도가 잘 내려가지 않는 대도시의 열섬현상을 꼽는다. 그러나 실제 온열질환자는 농촌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이번 주에만 경남 의령과 경기도 양평에서 밭에 나갔던 할머니들이 숨졌다. 온열질환자가 많이 발생한 지역을 보면 경남(131명), 경기(103명), 경북(89명), 전남(76명) 등 농촌 지역이다.
 
바깥 활동이 온열질환의 주범인 것만도 아니다. 온열질환자의 15%는 실내에서 발병했고, 그중 절반은 집이나 건물에 있다 걸렸다. 직군별로는 무직자(121명, 노숙자 제외)가 가장 많다. 모두 에어컨이 없는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이다. 국내 에어컨 보급률이 80%를 웃도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나 쪽방촌, 판자촌 등 빈곤층 밀집지역에선 에어컨 구경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보건당국은 특히 고령자들이 에어컨 등 냉방시설이 제대로 없는 집 안에 머물러 온열질환에 많이 노출되는 게 큰 문제라고 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올여름 경로당 등 ‘무더위 쉼터’에 에어컨 가동 비용으로 지난해(5만원)보다 두 배 오른 1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정책 자체가 절반을 부담해야 하는 지자체들의 불만으로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곳이 많다. 이에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 무더위 쉼터가 전국에 즐비하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현장지도를 나가 에어컨을 틀라고 해도 전기료가 많이 든다며 잘 안 튼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특징도 있다. 온열질환자의 절반 정도가 작업장에서 발병한다는 것이다. 실외에서 일하는 근로자(230명), 농어업 종사자(125명)뿐 아니라 실내 근로자(45명)도 포함된다. 이런 양상은 해마다 반복된다. 폭염에 열악한 작업장들이 산재해 있으면서도 대책이 부실한 현실을 보여준다. 고용노동부는 올해부터 폭염 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를 형사고발하겠다고 했다. 특히 2013~2017년 사이 사망자가 4명이나 나왔던 건설업체들에 대해 더욱 강도 높은 주문을 하고 있다. 한 대기업 계열 건설사 관계자는 “우리는 이미 폭염 비상상황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옥외작업은 한 시간 단위로 휴식을 취하고, 휴게실엔 제빙기도 들여놓아 언제든 얼음을 퍼갈 수 있게 했으며, 폭염이 지속되면 아예 옥외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걱정하는 건 따로 있었다. 건설현장은 많은 사업장이 하도급으로 시행되는데 중소 하도급 업체까지 일일이 감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폭염 피해는 대기업 현장이 아니라 소규모 현장, 하도급 업체 등 약한 고리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시카고, 사회학적 접근으로 피해 줄여
 
폭염의 피해자는 이처럼 노인, 무직자, 냉방시설이 없는 집에 사는 사람, 하도급 업체 근로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돼 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약자에게 폭염 피해가 집중되는 현상은 결국 환경문제가 탈계층적이고 중립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계층의 문제로 귀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는 환경과 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폭염 대책을 환경적 관점이 아닌 기후복지의 관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폭염을 다루는 관점은 단순하다. 행정안전부 담당자는 “폭염은 재난은 아니지만 관리해야 하는 자연현상”이라고 했다. 에어컨을 가동하든 말든 ‘무더위 쉼터’를 지정해 놓고, 질병관리본부는 온열질환자를 신고받아 집계하고, 농축수산부는 가축 폐사를 관리하며, 해수부는 고수온을 관리하는 등 당장 나타나는 현상 관리에 집중한다. 폭염 대응 매뉴얼도 없고, ‘물 자주 마시기, 시원하게 지내기, 더운 시간대 휴식하기’라는 한가한 폭염 대비 3대 수칙 캠페인을 벌인다. 매년 똑같다.
 
선진국들도 혹독한 폭염 피해를 경험하고 난 후 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대책을 마련했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1995년 7월 한 달간 7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던 시카고 폭염 사태 이후 시카고의 접근법을 제시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이듬해 시카고 폭염 사망자의 사망 원인을 분석했다. 중요한 원인으로 사회적 고립이 지목됐다. 이후 에릭 클리네버그 노스웨스턴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들은 왜 사회적으로 고립됐는가를 연구했다. 연구 결과 시카고 사망자 수가 론데일 북부는 10만 명당 40명, 남부는 10만 명당 4명으로 10배 이상 차이가 났다. 북부는 범죄율이 높아 이웃과의 소통이 잘 안 되는 공동체였다는 것이다. 이 발견을 토대로 4년 뒤 비슷한 폭염 사태에서 시카고 정부는 치안이 불안한 지역은 공무원들이 일일이 집 안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쿨링센터로 옮겼다. 이에 99년 폭염에선 110명으로 사망자가 줄었다. 폭염 피해는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적 현상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그에 적절한 대응을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양선희 선임기자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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