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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범선·증기·초고속열차 … 공간 지배한 나라가 웃었다

[도시와 건축] 공간 넓혀온 인류
중국의 초고속 열차. 중국은 현재 상하이 푸동 공항과 시내를 잇는 31㎞ 구간을 8분에 주파하는 시속 430㎞의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를 운영 중이다. 2020년까지 최고 시속 600㎞의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해 세계 최고 수준의 철도 기술국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중국의 초고속 열차. 중국은 현재 상하이 푸동 공항과 시내를 잇는 31㎞ 구간을 8분에 주파하는 시속 430㎞의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를 운영 중이다. 2020년까지 최고 시속 600㎞의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해 세계 최고 수준의 철도 기술국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인류문명의 역사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인류가 수렵채집에서 농경사회와 산업화를 거쳐서 지금은 정보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인류역사 초기에는 권력이 극소수 지배계층에 집중되어 있다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진화한다고 이야기한다. 각자 바라보는 시각에 의해서 인류 진화의 모습은 다르게 설명된다.
 
인류는 공간과 공진화해왔다. 처음이자 인간의 역사 중 가장 긴 기간을 차지하고 있는 수렵채집의 시기를 살펴보자. 이 시기의 인간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공간의 크기는 좁다. 근처 숲에서 열매를 따서 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하거나, 걷거나 뛰어나가서 사냥을 하고 며칠 만에 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 시기에 한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10㎢의 땅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러니 거주하는 영역은 수십 ㎢였을 텐데, 특징적인 점은 수렵채집인들은 계속 이동을 해서 거주하는 공간이 변한다는 점이다.
 
이후 기원전 7000년께부터는 농업이 시작되었다. 이때 대부분의 농부들은 평생 직경 수십 ㎞ 이내의 마을 공간에서 살다가 죽었다. 이들에게는 마을이 세상 전부였다. 이 시기의 보통사람들에게는 수렵채집의 시기보다 평생 체험하는 공간은 더 줄은 셈이다. 그런데 무리의 지도자 같은 권력자의 경우에는 영유하는 공간의 크기가 더 커졌다. 농업은 땅에 기반을 둔 생산체계이기 때문에 더 넓은 땅은 더 많은 생산과 소유를 뜻하고 소유가 늘면 권력도 커진다. 농업혁명은 더 많은 영토분쟁을 유발했다.  
 
구약성경을 보면 초기 이스라엘 민족이 아브라함이나 야곱같이 가족단위로 움직이는 유목경제였을 때에는 전쟁이 없었다. 하지만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탈출을 한 시점에서는 인구가 100만 명이 넘었고, 농업경제에 기반을 둔 집단이 되면서 땅이 필요했다. 이때 가나안을 정복하는 전쟁의 역사가 시작된다. 농업은  대규모 전쟁의 시대를 열었다.
 
 
정복지 전체에 로마로 향하는 도로망 뚫어
 
대항해 시대를 주름 잡은 범선. [AP=연합뉴스]

대항해 시대를 주름 잡은 범선. [AP=연합뉴스]

농업혁명이 무르익었을 때쯤 바퀴가 발명되고 말이라는 교통수단이 나오게 된다. 이 발명품들은 정복의 시대를 열었고 공간의 지리적 의미를 바꿨다. 농업과 바퀴와 말과 금속무기는 제국을 만들었다. 여기에 문자 체계까지 합쳐지면서 세금징수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집트는 파피루스, 메소포타미아 제국은 점토판, 중국은 대나무로 만든 발에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이로써 인류는 과거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규모의 제국을 가지게 됐다. 한 지도자의 영향력이 수백 ㎞에서 수천 ㎞까지 확장됐다. 땅이 넓어지자 자신이 소유한 땅을 관리할 필요가 생겼다. 지도가 제작됐다. 세계 각 제국들은 효율적 통치를 위해 저마다의 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도로를 만들었다.  
 
로마제국은 자신의 정복지 전체에 로마로 향하는 도로망을 뚫었다. 이 길을 통해서 파발이나 군대를 보낼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이 길은 세금을 수도로 옮기기 위한 물류 도로의 역할을 했다.
 
15세기 들어 인류의 주요 무대가 말을 타고 도로를 달리는 땅에서 범선을 타고 항해를 하는 바다로 옮겨지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생겼다. 1453년 동로마제국이 오스만 튀르크에 의해서 멸망한 것이다. 중동이 이슬람에 정복되자 동양과 통하는 육지 접근로가 막혔다. 먹고살기 위해서 서양 상인들은 바닷길을 개척해야 했고, 이로써 서양인은 동양인들보다 더 빨리 지구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바다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때 항해를 위해서는 해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지도제작 방식은 서서히 발전을 해오다가 1569년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지도제작기법인 ‘메르카토르’ 기법이 개발됐다. 위도와 경도가 격자형으로 그려져서 정확하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지도다. 이 지도를 통해서 사람들은 인지가 어려운 3차원 공간을 완전하게 인지 가능한 2차원으로 압축했고, 이를 통해서 공간을 논리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당시 범선이 이 지도와 함께 시너지효과를 가지면서 인류의 주요 무대가 바다로 바뀌게 됐다.
 
이에 비해 중국의 해안선은 둥그런 반원형을 띠고 있는데, 이러한 모양 덕분에 중국의 중원은 영토의 끝까지 동일한 거리를 가지게 되어서 마차를 이용하면 해안가까지 사각지대 없이 통치가 가능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바닷길을 이용하기보다는 대운하를 건설했다. 하지만 이러한 육지 중심의 공간 전략 때문에 중국은 바다를 이용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이는 중국이 세계적인 국가가 되지 못한 원인이기도 했다.
 
 
영국·미국, 증기기관의 혜택 가장 많이 봐
 
산업혁명 당시 증기기관차. [중앙포토]

산업혁명 당시 증기기관차. [중앙포토]

유럽인들은 메르카토르 도법을 사용하여 정확하게 항해로를 만들 수 있었고, 큰 범선이 제작되면서 세계의 주요 무대는 유라시아대륙에서 대서양으로 옮겨졌다.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유럽대륙 간의 무역을 장악한 유럽 국가들이 세계 경제의 패권을 쥐었다. 이 시대에는 바다에 접근성이 좋은 국가들이 지리적으로 유리해졌다.  
 
스페인은 범선의 규모가 커지면서 대서양을 건널 수 있게 됐다. 몽골제국이 말이 만든 제국이라면, 영국은 범선이 만든 제국이다. 근대에 와서는 대서양시대보다 더 큰 배가 건조됐다. 지리학적으로 미국은 현재 유일하게 국토가 두 개의 대양을 접하고 있는 국가다. 동쪽으로는 대서양,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접하고 있다. 미국은 큰 배 덕분에 대서양보다 더 큰 바다인 태평양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고, 태평양의 효율적 통치를 위해 하와이군도를 차지했다.
 
두 발로 뛰어 다니다가, 말을 타다가, 범선으로 이어진 공간의 변화는 이후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또 다른 진화를 맞이한다. 뛰거나 걷는 것이 인간의 힘이라면, 말은 동물의 힘을 빌렸고, 범선은 자연현상을 이용한 기계의 등장이고, 증기기관은 화석연료를 이용한 최초의 동력기계다. 시대별로 다른 에너지원을 이용하면서 점차적으로 인간은 시간·거리를 줄이는 기술을 발전시켰고 이는 공간의 의미를 변화시켰다.  
 
증기기관을 이용한 기관차 교통망은 범선 이후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시스템이 됐다. 범선이 먼 대륙을 가깝게 당겨주었다면, 증기기관은 육지의 땅을 더욱 압축시켜서 더 큰 시너지효과를 가져왔다.  
 
증기기관의 가장 큰 혜택을 본 국가는 이를 발명한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다. 증기기관은 이 두 국가가 세계를 장악하게 만들었다. 증기기관차 이후 혁명적 교통수단은 비행기였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하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공간체계를 가진 국가가 됐다. 게다가 포드가 내연기관인 자동차를 대량생산하게 됐고, 미국은 고속도로라는 도로망을 전국에 깔게 된다.  
 
미국은 이제 두 개의 대양과 하늘을 이용한 공중교통, 기차 네트워크,  고속도로망을 완성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공간압축 시스템을 보유한 것이다. 20세기 후반 뒤늦게 공간압축의 중요성을 깨달은 유럽은 미국을 따라가기 위해서 초고속 열차를 도입했다. 중국은 지난 수백 년간 해양시대에 뒤쳐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 전국을 시속 500㎞에 달하는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로 연결했다. 이에 질세라 미국은 일론 머스크를 필두로 진공관 속에서 공기의 저항 없이 달리는 시속 1000㎞의 수송기관을 만들고 있다.
 
달리기에서 시작한 공간의 변화는 말, 바퀴, 나침반, 별자리, 지도, 범선, 기관차, 자동차, 비행기, 고속열차, 초고속열차 등을 거쳐 대륙 간의 관계와 인류의 공간적 의미를 바꾸었다.  
 
가까운 미래에는 자율주행자동차와 개인 운송수단이 또 다른 변수로 등장할 예정이다. 현재 세계는 조용히 공간을 더 압축하기 위해 경쟁 중이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변화에 앞장서서 다음 공간의 시대를 접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건축의 흐름』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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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