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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살린 걸 용서할 수 있겠니" 의사의 고백

지난해 영국에서 희귀병을 앓다 생후 11개월에 숨진 찰리 가드. 법원이 의료진의 연명의료 중단 요구를 수용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영국에서 희귀병을 앓다 생후 11개월에 숨진 찰리 가드. 법원이 의료진의 연명의료 중단 요구를 수용했다. [AP=연합뉴스]

“내가 너를 살린 걸 용서할 수 있겠니?”
 
지난 5일 세계적인 의학전문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 퍼스펙티브 코너에 이런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미국 오리건주 벤드시의 ‘세인트 찰스 메디컬 그룹’ 외상센터 토리 맥고완이라는 의사가 쓴 글이다. 아이 엄마가 병원에 들어서면서 “애가 숨을 못 쉬어요”라고 다급히 소리쳤다. 아이는 온몸이 뒤틀리고 경직돼 사망 직전이었다. 추락에 의한 뇌손상이 원인으로 추정됐다.
 
맥고완 외상팀 덕분에 아이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큰 병원으로 후송됐다.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지만 심각한 후유 장애가 남았다. 엄마와 할머니가 24시간 수발한다. 최근 맥고완이 방문했을 때 가끔 눈을 뜰 뿐이었다. 만화영화 ‘모아나’를 좋아해서 계속 틀어준다고 한다. 그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맥고완은 “네가 행복을 아는지 확신이 안 간다. 다만 고통은 분명히 느끼는 것 같다. 내가 너를 구한 게 기쁘니? 너의 엄마와 할머니는 너를 돌보느라 몇십년 희생해야 한다. 너를 구한 걸 용서할 수 있겠니?”라고 회한을 표했다.
 
이런 아이 같은 최중증 장애가 남는 소아 환자가 국내에도 적지 않다. 인공호흡기 등 중환자 의학이 발달하면서 의료적 의존도가 높은 상태로 사는 희귀·난치병 소아 환자가 늘었고, 과거라면 살리지 못했을 초미숙아가 후유증을 가진 채 살게 되어서다.
 
유럽에 비해 복지가 덜 발달한 미국도 중증 장애아동 지원은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도 맥고완 같은 의사가 무엇이 아이의 진정한 행복인지를 묻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중증 또는 최중증 소아가 3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대병원 김민선 소아청소년과 교수의 추정이다. 질병 치료 실력은 세계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다. 체중 1.5㎏ 미만의 미숙아 생존율이 크게 올라 85%에 달한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장은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생존율이 올라가지만 3분의 1은 장애를 가지고 산다. 이게 부모의 부담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엄마는 때로는 의사, 때로는 간호사, 어떨 때는 간병사가 된다. 1분도 눈을 뗄 수 없는 아이도 수두룩하다. 이런저런 소모품에 월 50만원이 훌쩍 넘게 들어간다. 의사도 부모도 이런 상황을 잘 안다.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한 대학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24주만에 710g으로 출생한 미숙아 민수(가명)는 두 달 넘게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출생하면서 뇌출혈이 생겨 뇌를 심하게 다쳤다. 눈을 뜨지만 통증 등의 자극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인공호흡기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퇴원하더라도 휴대용 인공호흡기 신세를 져야 한다.
 
“뇌신경 손상이 심각하다고요. 인공호흡기를 유지해서 평생 살아야 한다면 아이에게 고통만 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아이의 부모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의료진에게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이런 경우 의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치의도 혼자 결정할 수 없어 병원 윤리위원회에 의뢰했다. 결론은 법률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불가능”이었다. 올 2월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은 민수에게 무용지물이다. 회생 가능성이 없고,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이 임박한 상태의 임종 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난해 7월 숨진 영국의 11개월짜리 아기 찰리 가드다. 찰리는 ‘미토콘드리아 결핍증후군(MDS)’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고 런던에서 연명의료를 했다. 뇌 기능뿐 아니라 심장·간·신장까지 손상됐다. 근육이 죽었고, 호흡 능력이 거의 없었다. 의료진은 연명의료 중단을 제안했고, 부모가 거부했다. 영국 법원과 유럽인권재판소에서 의료진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다고 부모가 아이의 치료 중단을 원한다 해서 비난할 수 있을까. 36주만에 태어난 미숙아 서현(가명)이는 복합 심장질환에다 한 쪽 팔·다리가 크게 짧은 기형이었다. 의료진은 심장 수술을 하고 약을 복용하면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80%가 넘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성인이 되면 합병증이 나타날 가능성이 컸다. 설명을 들은 아이의 부모는 “장애와 심장 질환을 안고 사느니 차라리 편안히 보내주자”며 수술을 거부했다. 의료진이 부모를 설득해 결국 수술을 했다.
 
김민선 교수는 “어떤 보호자가 ‘(최중증 장애가 있게 해서)내보내면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병원이 무책임하지 않으냐. 도대체 치료의 목표가 뭐냐’고 호소하더라. 퇴원 후 아이의 고통, 부모의 힘든 삶이 너무 뻔하기 때문에 아무 대꾸도 못했다”며 “이런 논란은 현행 연명의료를 훨씬 넘는 것이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대병원이 최근 임상윤리센터를 열어 이런 복잡한 의료현장의 윤리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또 보건복지부가 서울대병원과 함께 중증 소아 환자 가정의료 시범사업을 9월 시작한다. 하지만 부모의 간병 부담을 덜어주는 장치는 없다. 영국은 훈련 받은 간호조무사가 야간에 가정으로 가서 아이를 봐준다. 부모는 휴식을 취한다. 일본은 중증 아동 환자를 위한 요양병원이 여럿 있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환자의 최선의 이익이 뭔지, 환자의 행복, 삶의 질, 바람 등을 먼저 생각해서 윤리적 결정에 이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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