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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선취업-후학습, 제대로 만들자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얼마 전 교육부는 ‘선취업-후학습’ 활성화 방안을 다음달 중 내놓을 것이라 발표했다. 혹시 독자들께서는 선취업-후학습이 무슨 제도인지, 그리고 그걸 교육부가 왜 준비하고 있는지 아시는가? 아마도 아시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초·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은 관심을 좀 기울이셔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제도는 자녀들의 대학입시와 미래의 직업과 매우 큰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선취업-후학습은 청소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먼저 취업을 하고 나중에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다. 지금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취업을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처럼 고등학교 졸업생은 바로 대학교에 진학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모든 18세 고3생들이 대학에, 그것도 좋은 대학 진학을 원하기 때문에 서로 경쟁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과도한 사교육이 등장했고, 많은 학생은 적성과 관계없이 맹목적으로 학과를 선택해야 했다. 전공에 대한 애정이 없으니 학문보다는 스펙 쌓기가 더 중요해졌다. 대학을 나왔으니 그에 맞는 직업과 직장을 찾아가야 하는데 대졸자 직장의 수는 정해져 있고 한 번에 대학 졸업생들이 쏟아져 나오니 마치 고3 때 대입을 위해 경쟁했듯 사회진출도 경쟁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끝없이 악화되고 있는 청년실업이고,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고 있는 ‘헬조선’이다. 물론 현재 청년들의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삶이 모두 지금의 선학습-후취업 관행 때문에 발생했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최소한 과도한 사교육과 맹목적인 대학 진학의 상당 부분이 이 관행에서 기인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조영태칼럼

조영태칼럼

선취업-후학습은 바로 이 관행을 깨 지금의 청소년들이 5~10년 후 지금의 청년들과는 다른 삶, 그것도 훨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열기 위한 배경에서 등장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시간을 갖고 본인의 적성과 하고 싶은 일을 탐구하고 본인의 삶에 대학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때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연령은 20대 중반이어도 좋고 20대 후반이어도 좋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바로 취업을 해 직장 경험을 쌓을 수도 있다. 창업을 해 사회경험을 쌓을 수도 있다. 물론 18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대학에 들어갈 수도 있다. 이처럼 고등학교 졸업 이후의 삶에 다양성을 주고, 대학에 진학하는 시점을 본인의 삶 속에서 스스로 정할 수 있게 하면 모든 청소년이 사교육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맹목적인 대학 진학도 사라질 수 있고, 스펙에 매달릴 이유도 없다. 궁극적으로 이렇게 성장한 청소년들은 청년이 되었을 때 지금의 청년들과는 매우 다른 삶의 궤적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이처럼 다소 이상적이지만 충분히 실현 가능한 미래를 우리 청소년들에게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측면에서 필자는 교육부의 선취업-후학습 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곧 구체적인 관련 정책들이 발표되겠지만 지난주 언론에 소개된 교육부의 선취업-후학습 관련 내용들만 보면 위에서 언급한 원래의 취지가 과연 달성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 교육부가 소개한 선취업-후학습 제도의 골자는 이렇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들이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 시간을 활용해 국립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만들고, 이들에게 학비를 지원해 주겠다는 것이다. 선취업-후학습 제도가 이렇게 정책화되면 절대로 지금 청년들의 왜곡된 삶을 만들어 낸 과도한 사교육, 맹목적인 대학진학, 스펙에의 올인 등을 극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선취업-후학습은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삶의 자율성과 선택의 다양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목적인데, 교육부는 트랙을 만들어 놓고 그곳으로 들어오도록 정책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트랙이 지금 청소년들과 그 부모들이 본인과 자녀의 미래를 담보할 만큼 매혹적이지도 못하다.
 
선취업-후학습이 중소기업에 취업시킬 청년을 만들어 내는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제도는 우리 청소년들이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미래 인재로 커가는 데 기여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고교 졸업 후 창업한 청년도, 부모를 도와 농업이나 자영업을 시작한 청년도, 또 해외에서 경험을 쌓은 청년도 원하는 시점에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고, 그게 고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가는 것보다도 더 선호되는 제도가 필요하다. 교육부의 최종안에 기대를 걸어 본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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