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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속에 숨긴 부패 정치, 인도네시아 보이나요

인도네시아 공포영화 흥행 1위 ‘사탄의 숭배자’. 한국 기업이 제작에 참여했다. [사진 부천영화제]

인도네시아 공포영화 흥행 1위 ‘사탄의 숭배자’. 한국 기업이 제작에 참여했다. [사진 부천영화제]

“인도네시아는 공포 영화 시장이 정말 큽니다. 잘 될 수밖에 없어요. 구전되는 귀신만 42종이나 되거든요. (귀신같은) 정치인들을 빼고도 말이죠!”
 
인도네시아 감독 조코 안와르(42)는 13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가진 강연 내내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인도네시아에서 그는 대표적인 흥행감독으로 통한다. 대중적인 장르에 사회 풍자를 절묘하게 버무려 잇따라 히트시켰다. 한국 투자·배급사 CJ E&M이 제작에 참여한 ‘사탄의 숭배자’는 지난해 현지 개봉에서 ‘분노의 질주’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제치고 인도네시아 역대 흥행 5위, 공포 영화로는 역대 1위에 올랐다.
 
이 영화는 원인 모를 괴현상에 시달리던 4남매가 자신들이 어머니가 사탄을 숭배해 얻은 자식임을 알게 된다는 얘기. 이슬람 사제가 좀비에게 죽임을 당하는 설정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기존의 국수주의적·종교적 관습을 깨뜨린 내용이 대중에겐 오히려 신선하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는 “인도네시아 영화에선 보통 공포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성직자가 나타나 사탄을 물리치고 다 구해주는데 이번 기회에 그런 법칙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코 안와르

조코 안와르

혹독한 성장배경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매일 칼부림이 벌어지고 마약 등 범죄가 만연한 빈민가에서 자랐다. “열다섯 살 무렵 친구들은 모두 교도소에 가거나 임신한 상태였다”면서 “그런 현실을 벗어나게 해준 유일한 구원은 (성직자가 아닌) 걸어서 45분 거리 영화관뿐이었다”고 했다.
 
돈이 없어 환풍구로 영화를 훔쳐보다 처음 티켓을 사서 본 것이 바로 ‘사탄의 숭배자’(1980) 원작 영화. 이를 “평생 가장 인상적인 영화적 체험”으로 꼽는 그는 이때부터 감독의 꿈을 키웠다. 생계를 위해 항공기술학교를 다니다 영화지식을 토대로 기자로 취직, 직접 시나리오를 쓴 코믹 소동극 ‘조니의 약속’(2005)으로 성공리에 감독으로 데뷔했다.
 
지난해 그가 연출한 ‘사탄의 숭배자’는 80년 원작 영화의 앞선 이야기를 담은 프리퀄 버전. 극 중 시대 배경을 81년으로 설정한 건 원작을 잇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는 “현재 인도네시아에 아주 못된 지도자가 있는데 81년에 여덟 살로, 영화에서 사탄의 자식으로 밝혀진 또래 남자애와 이름이 같다”고 설명했다.
 
암시적인 정치 비판은 그의 전작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2007년 부천 폐막작으로 초청된 판타지 스릴러 ‘비밀’은 범죄 집단의 방화사건을 통해 이면의 거대 악을 들춰냈고, 2015년 ‘내 마음의 복제’에선 대통령 후보의 부패 증거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위협받게 된 평범한 연인을 뒤쫓았다.
 
이런 스토리텔링의 저력을 묻자, 그는 “미학적인 감각을 부단히 갈고 닦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독에겐 영화 기술과 미학적 눈 두 가지가 필요한데, 기술과 달리 미학은 책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면서 “영화적 미학은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미술·조각 같은 예술작품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고 보고 들으면서 삶에 우리를 많이 노출해야 한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인구는 2억여 명으로 세계 4위. 인구 절반이 25세 이하다. 반면 영화관 등은 상대적으로 적어 성장 잠재력이 크다. CJ·롯데 등 한국 기업이 잇따라 현지 극장사업 및 영화 투자·제작에 뛰어든 이유다. 그처럼 국내외에 인정받는 새로운 감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인도네시아에서 공포 영화라고 하면 2분에 한 번 귀신이 나와 놀라게 하는 게 다였지만, 요즘엔 이른바 호러 뉴웨이브가 시작됐습니다. 탄탄한 전통 괴담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연기·연출 기술이 계속 발전한다면 인도네시아 영화가 세계와 소통하는 좋은 플랫폼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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