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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지원 얼마면 돼, 10조?" 北지원에 계산기 만지는 日

“얼마를 생각하느냐. 6000억엔(약 6조원)에서 1조엔(약 10조원) 정도면 되는 건가.”
지난 6월 27일 일본 야당 입헌민주당 소속 오사카 세이지(逢坂誠二)의원이 정부에 보낸 ‘대북 경제지원 관련 질문주의서’의 일부다. 납치문제 등이 잘 해결돼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협상이 진전될 경우 도대체 얼마를 경제지원 명목으로 줄 것인가를 물었다.
2002년 9월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왼쪽)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중앙포토]

2002년 9월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왼쪽)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중앙포토]

 
일본에선 의원이 ‘질문주의서’를 작성해 정부가 보내면 총리가 답변서를 각의(우리의 국무회의에 해당)에서 확정해 국회에 제출한다. 이런 공식적인 절차에 대북 경제지원금 액수가 등장한 건 이례적이다. 
그만큼 북·일 문제에 대한 일본 내의 관심을 대변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사카 의원은 질문서에서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협정 때는 3억 달러 상당의 생산물과 용역의 무상제공, 2억 달러의 유상(차관)제공, 3억 달러 이상의 민간 차관을 약속해 모두 11억달러 정도였다. 당시 한국 국가예산이 3.5억 달러였으니 예산의 3배가 넘는 원조를 약속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북한의 예산 규모가 불분명하지만 전문가들이 대략 2000~3000억엔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니 한국의 경우에 적용하면 약 6000억엔~1조엔 규모가 된다”는 논리를 폈다. 
 
오사카 세이지 일본 입헌민주당 의원[사진=오사카 세이지 의원 트위터 캡쳐]

오사카 세이지 일본 입헌민주당 의원[사진=오사카 세이지 의원 트위터 캡쳐]

오사카 의원의 계산이 물론 정확한 건 아니다. 65년 청구권 협정에서 결정된 ‘무상 3억 달러+유상 2억 달러+민간 차관 3억 달러 이상, 합계 8억 달러’와는 금액면에서 차이가 있고, 북한의 예산도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했지만 어쨋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경제 지원 규모를 계산해 정부에 물었다.  
오사카 의원이 아베 총리에게 대북 경제지원 규모를 물은 질문주의서 일부. 파란색 네모 표시 안쪽이 관련 내용.서승욱 특파원

오사카 의원이 아베 총리에게 대북 경제지원 규모를 물은 질문주의서 일부. 파란색 네모 표시 안쪽이 관련 내용.서승욱 특파원

 
이에 아베 총리는 8일 각의에서 결정한 답변서에 “자세하게 언급하면 향후 협상 등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말을 아꼈다. 
 
“납치문제에 진전이 없는데 무슨 대북지원 운운이냐”는 비판이 두려워 이렇게 언급을 꺼리고는 있지만 일본 정부는 이미 경제지원금 규모에 대해 내부 연구에 돌입한 지 오래다.
 
총리관저 사정에 밝은 재계 소식통은 “지난 4월께부터 총리관저를 중심으로 금액 산정 작업을 시작했다”며 “한국과 합의했던 청구권 자금 금액에다 한국의 경제성장률, 그동안의 물가상승률 등이 고려 변수”라고 말했다.
 
현재 대북지원 규모와 관련돼 가장 널리 회자되는 숫자는 ‘1조엔’이다. 일본 언론들도 “65년 한국과의 협상을 기초로 계산하면 총액이 1조엔 정도”라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이 1조엔은 지난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북·일 평양선언과도 관련이 있다.  
 
선언엔 "국교정상화 뒤 쌍방이 적절한 기간에 걸쳐 무상자금협력, 저금리 장기차관제공과 국제협력은행 등의 융자 등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금액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일본에선 "사실은 일본이 1조엔 규모의 자금을 제공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이 내용이 기록된 외교협상 문서가 파기됐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북한이 일본으로부터의 100억달러 원조를 기대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의 저서. 서승욱 특파원

북한이 일본으로부터의 100억달러 원조를 기대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의 저서. 서승욱 특파원

또 탈북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가 펴낸『3층 서기실의 암호』에도 비슷한 정황이 담겨있다.
2002년 김정일의 최측근 외교 참모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식민지 통치 피해에 대해 경제협력 방식의 보상을 일본이 약속했다. 최소 100억 달러(약 1조엔)는 들어올 것이다. 100억 달러면 도로와 철도 등 기본 하부구조는 모두 현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일본에 보낸 납치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横田めぐみ)의 유골이 가짜로 드러나고 100억 달러 제공도 유야무야되자 김정일이 "일본놈들은 못 믿겠다"고 말했다는 내용도 있다.
 
2007년 말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핵을 포기하면 국제자금 400억 달러를 북한에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도 그중 100억 달러는 일본의 지원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16년 전인 2002년에 만약 1조엔(100억 달러)수준의 합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북한의 요구가 더 커질 것이란 분석도 만만치 않다. 
 
삼성증권 북한리서치팀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북한의 요구가 200억 달러(약 20조엔)수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고, 로이터통신도 최근 "물가변화와 북한 내 경제 상황 등을 감안하면 3~4조엔 , 아니면 5조엔 수준이 될 수도 있다"는 관계 소식통의 발언을 보도했다.
 
도쿄의 외교소식통은 “일본 정부로서는 북한의 핵 폐기에 소요되는 비용까지 경제지원금에 포함시키는 등 일본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지원 규모를 최소화하려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두고 "북한은 일본과 대화하겠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일본 정부가 납치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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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