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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읽기] 엉뚱하게 상상하다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요즘에 입안에서 중얼중얼하는 시구가 하나 있다. “향기로운 꽃의 파도를/ 물결치며 바람의 배가 지나갈 때.”라는 시구다. 이 시구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 ‘알스트로메리아’의 일부이다. 알스트로메리아는 꽃의 이름이다. 고지대 황무지에 솟은 듯이 핀 꽃을 네루다는 노래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땅 밑에서 “열심히, 맑게, 준비되어,/ 그 우아함을 세상으로 내밀었”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꽃핌을 “사랑으로 증폭된 어떤 신선함”이라 불렀다. “향기로운 꽃의 파도를/ 물결치며 바람의 배가 지나갈 때.”라고 자꾸 말하다 보면 어떤 물결이, 신선함의 흐름이 내 마음에 생겨난다. 그리하여 우울하거나 슬픈 구석이 밀려나고 마음이 환해진다.
 
마음에 신선함이 깃든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네루다는 마음에 신선함이 많았던 시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신선함이 엉뚱한 상상에서 생겨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네루다는 아이들이 갖고 있는 호기심과 경이를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아이의 호기심과 경이를 빌려 다음과 같은 멋진 질문들의 시구를 탄생시켰다. “만월은 오늘밤/ 그 밀가루 부대를 어디다 두었다지?”라고 썼고, “바다의 중심은 어디일까?/ 왜 파도는 그리로 가지 않나?”라고 썼다.
 
나는 문동만 시인의 새 시집을 읽으면서도 어떤 엉뚱함이라는 것이 삶을 조금은 더 윤택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동만 시인은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나는 장난기 많은 사람이었는데 진지하고 엄숙한 세계로 편입되고 말았다. (…) 언제나 가벼운 날들을 열망하리라.”라고 썼다. 그리고 시 ‘구르는 잠’을 통해 아이들이 갖고 있는 천진한 장난기와 엉뚱함을 예찬했다. 시는 이렇다. “아이들은 던진다/ 돌도 공도 아닌 나뭇잎을/ 욕도 악다구니도 아닌 나뭇잎을// 나는 싸움 구경을 하느라 집에 가지도 못하고/ 건너편 은행나무에 기대어 물끄러미/ 바스락거리는 잎과 속닥거리는 입 사이에/ 누워본다”. 돌이나 공이나 욕이나 악다구니가 아닌 나뭇잎을 던지며 싸우는 아이들의 이 행위는 세상을 해치는 것이 없다. 이 동심의 세계는 재치와 기발함과 재미와 장난이 있을 뿐이다. 마음에 신선함이 있을 뿐이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얼마 전 한 선생님을 뵙고 얘기를 나누다 여고 선생님으로 재직할 때에 겪은 만우절 일화에 대해 듣게 되었다. 지방의 그 여고는 만우절 때마다 유난히 짓궂은 일을 잘 벌였다고 했다. 어느 해 만우절에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한창 하고 있었는데, 뭔가 교실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고, 조금 엇박자처럼 틀어져서 맞지 않는 듯이 느껴지더라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자 교실 여기저기서 학생들의 웃음이 툭툭 터져 나왔고, 아뿔싸, 선생님도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고 했다. 1학년과 2학년과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뒤섞여 한 교실에 앉아 있었던 것이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학생들이 교실 복도를 오가면서 학년을 무시하고 교실마다 들어가서 앉아 있었던 것이었다. 선생님은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웃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일화를 들려주셨다. 1교시 수업을 위해 앞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갔는데,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느껴져 얼른 교실에서 나왔다고 했다. 교실에 들어섰더니 학생들이 모두 등을 보이고 앉아 있어서 당신이 앞문을 통해 교실로 들어간 게 아니라 뒷문을 통해 교실로 들어갔구나, 라고 생각해 얼른 교실에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교실에서 나와서 거듭 확인해보아도 당신이 들어간 것은 분명 교실 앞문을 통해서였고, 그래서 다시 앞문으로 교실에 들어갔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학생들이 박장대소하더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칠판 쪽을 바라보며 앉지 않고, 일부러 등을 돌려 교실 뒤편을 향해 앉아 있었던 것이었다. 선생님은 그 여고에서 재직할 때가 제일로 기억에 남고, 또 그 학생들에게 가장 애정이 많았다고 했다.
 
삶의 매 순간이 진지하기만 하고 엄숙하기만 하다면 어떨까. 나는 썩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농담을 즐기면서 좀 가볍게 사는 시간이 빛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딴짓 부리는 사람이 때로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바람 부는 날의 나뭇잎 그림자처럼 건들거리는 시간을 살고도 싶다. 또한 낙천주의자들의 활력도 부럽다. 매사에 투덜대기보단 긍정적이고 불평이 적으며 앞으로 일이 잘되어 갈 것으로 여기는 사람에게 호감이 간다.
 
마음의 영역에서 조바심과 걱정과 화를 밀어내고 엉뚱함과 설렘과 호기심과 질문과 신선함의 꽃을 피워보면 어떨까 싶다. 한줄기 시원한 바람처럼 가벼이 삶의 시간 속을 불어가면 좋겠다. 향기로운 꽃의 파도를 물결치며 바람의 배가 지나가듯이 말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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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