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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엎었으면 잘 치워야 한다

윤정민 산업팀 기자

윤정민 산업팀 기자

중년 남성이 혼자 TV를 보며 라면을 먹는다. 화면엔 멀리 유학을 떠난 자녀들과 아내가 등장한다. 그들은 즐거운 모습이지만, 라면을 먹던 남성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진다. 잠시 후, 남성은 서서히 눈물을 흘리고 끝내 라면 그릇을 바닥에 내던진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 나쁜 짓도 하고 목숨도 걸었는데(그는 조폭이다), 결국 가족들과 떨어져 기러기 아빠가 된 처지가 서러워서일 거다.
 
영화 ‘우아한 세계’의 이 마지막 장면은, 때마다 한 번씩 꺼내보는 ‘인생씬’이다. 배우 송강호의 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라면 그릇을 던진 뒤 이어지는 장면 때문이다.
 
바닥에 쏟아진 라면을 보며 울던 남성은 잠시 후 사라진다. 다시 등장할 땐 손에 비닐봉지와 걸레가 들려있다. 그는 쪼그리고 앉아 휘적휘적 라면을 치운다. 여전히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지만, 어쨌든 손은 깨진 그릇을 줍고 바닥을 훔친다.
 
영화에선 보통 던지고, 깨고, 부수는 ‘감정의 절정’만 보여준다. 그 뒤는 관심사도 아니며 얼버무려지는 일도 많다. 그릇을 던지고 끝났다면, 이 장면도 오래 마음에 남진 않았을 거다. 그러나 영화는 굳이 쏟아진 라면을 치우는 장면을 보여 준다. 감독의 의도까진 몰라도, 여기서 감히 인생의 작은 진리 하나를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삶은 계속되며, 던지고 부쉈으면 그 뒤엔 치우고 정리해야 한다는 것. 분노든 고통이든 환희든, 어떤 절정이 지나가면 그 뒤 수습과 정리도 이어져야 한다. 절정은 지나도 삶은 계속되니까.
 
그런데 가끔 현실에서도 라면 그릇만 엎었을 뿐, 그 뒤가 없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바닥은 더럽혀졌는데 그저 분노가 식도록 방치할 뿐 누구도 치우진 않는, 그런 찝찝함.
 
최근에도 몇 가지 일에서 찝찝함을 느끼고 있다. 작게는 월드컵을 보며, 크게는 ‘미투 운동’ 이후를 보며 그랬다. 뭔가가 잘못돼 분노한 것까진 알겠는데, 그 뒤 수습이 잘되거나 상황이 나아지고 있는진 모르겠다. 한국 축구는 마지막 경기 덕인지 그 앞의 졸전과 잡음에 대해 별달리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다시 잡음이 반복될 뿐이다. 미투 운동으로 온 사회가 분노했지만, 그 뒤 성범죄나 성차별을 뿌리 뽑기 위한 근본적이고 대담한 변화는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극단적인 성 대결과 갈등은 커지고 있다.
 
어느 사회든 삶이든 잘못될 수 있고, 분노할 수 있으며, 흔들릴 수 있다. 다만 잘못을 바로잡고, 분노를 덜어내고, 흔들려 무너진 것을 바로 세우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영화와 달리 삶은 계속 이어진다. 우리는 잘못되고 무너진 것들을 얼마나 잘 치우고 있을까.
 
윤정민 산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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