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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당진 주민 덕에 죽다 살아난 정부

신진호 내셔널팀 기자

신진호 내셔널팀 기자

16일 오후 7시 충남 당진시 송악읍 고대1리 마을회관. 마을총회가 열리는 자리에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들어섰다. 홍 실장은 “매트리스를 당진으로 반입하면서 사전에 이해를 구하지 못해 죄송스럽다”고 머리를 숙였다. 한 주민이 “석탄화력발전소와 제철소 때문에 피해를 겪는데 라돈 매트리스까지 들여오는 바람에 정부에 대한 불신이 더 커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실장이 “앞으로 의견을 귀담아듣겠다”고 사과하고 나서야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이날 마을총회는 동부항만 고철야적장에 쌓인 1만6900여 장의 라돈 매트리스 해체를 놓고 주민에게 찬반을 묻는 자리였다. 지난달 16일 정부가 매트리스를 야적한 지 한 달여 만이었다. 주민들은 논의를 거쳐 ‘야적장 내 해체’를 결정했다. 참석 주민 70여 명이 대부분 동의했다. 김문성 고대1리 이장은 “매트리스를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게 어려울 같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 달 전 정부는 ‘라돈’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된 상태에서 주민과 한마디 논의 없이 군사 작전하듯 매트리스를 당진으로 들여왔다. 산더미처럼 쌓인 매트리스를 본 주민들은 라돈보다 정부의 일방적인 일 처리가 더 불안했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주민들은 “독재 시대도 아니고 정부가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야적장 입구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충남 당진시 송악읍 동부항만 고철야적장에 쌓여 있는 1만6900여 개의 라돈 매트리스. [연합뉴스]

충남 당진시 송악읍 동부항만 고철야적장에 쌓여 있는 1만6900여 개의 라돈 매트리스. [연합뉴스]

정부는 부랴부랴 매트리스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주민들이 믿지 못하겠다고 하자 협약서도 써줬다. 하지만 거짓이었다. 실제론 옮길 곳이 없어 주민들이 현지 해체를 동의해주기만을 기다렸다. “무더위에 지쳐 격앙된 분위기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린다”는 비난이 정부에 쏟아졌다. 정부 관계자는 “그동안 주민을 설득하고 물밑작업을 해왔다”고 해명했다. 라돈 매트리스가 인체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방사선 수치도 일상 수준이라고 적극적인 홍보 활동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한 달 사이 네 차례 당진 야적장에 갔던 기자는 현장서 정부 관계자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사태 장기화를 우려하며 발만 동동거리던 정부는 주민의 대승적 결정에 시쳇말로 죽다가 살아났다. 당진에서는 매트리스 처리문제가 가닥을 잡았지만, 대진침대 본사가 있는 천안지역 주민을 설득하는 과제는 남아 있다. 천안에는 해체하지 못한 라돈 매트리스 2만4000여 장이 쌓여 있다. 그동안 갈팡질팡하며 “갈등 조정 능력이 읍·면보다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정부가 어떻게 처리할지 지켜볼 일이다.
 
신진호 내셔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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