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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을’이 OECD 3위가 된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얼마 전 미국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서 겪은 일이다. 아침 일찍 공항에 도착, 유나이티드항공 보스턴 행 자동 체크인 수속을 시작하니 모니터에 ‘해당 편 결항’이란 메시지가 떴다. 창구로 가니 “크루(승무원) 문제가 생겨 오늘 비행기가 안 뜬다”고 했다. 이때부터 옥신각신이 이어졌다. “어젯밤에 예약 컨펌까지 했는데 결항이라니” “방금 결항이 확정됐다” “다른 편이라도 수배해 달라” “심야에 클리블랜드(오하이오주)를 경유해 가라. 아님 그냥 내일 가거나.”
 
카운터 앞에서 넋을 잃고 20분가량 서성이고 있을 때 반전이 일어났다. “아, 비행기 편이 다시 살아났네요.” 그 말 딱 한마디였다. 미안하다는 말도, 경위 설명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간 ‘착한’ 이들만 바보가 된 셈이다.
 
대한항공 일가의 일탈, 아시아나항공의 ‘노 밀(No Meal)’, 유나이티드의 결항 번복 해프닝. 오십보백보다. 고객을 우습게 아는 갑질이다. 후속 대응도 빼닮았다.
 
유나이티드는 지난해 4월 시카고 공항에서 “우리 직원 자리가 필요하다”며 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 4명을 무작위로 선정, 내릴 것을 강요했다. “내일 환자와의 약속이 있다”며 거부하는 베트남계 미국인 의사를 처참하게 질질 끌고 나갔다. 코가 부러지고 앞니 2개가 나갔다. 유나이티드 최고경영자(CEO)의 첫 대응은 “사과는 하지만 승객의 잘못이 크다”는 톤의 사내 e메일 한 통이었다. 아시아나·대한항공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CEO의 헛발질로 주가가 하락하자 유나이티드의 주주들이 가만 있지 않았다. 결국 CEO는 재차 사과문을 내고 이렇게 고개를 숙였다. “이번 일로 발생한 격분, 분노, 실망에 공감하고 사과한다. 우리가 모든 책임을 지고 잘못은 고친다. 옳은 일에는 결코 ‘너무 늦음’이란 없다.”
 
뒤늦었지만 울림은 있었다. 즉각 CEO의 이사회 의장 승진 취소, 연봉 50% 삭감 조치가 이어졌다. 사장을 최대 경쟁사인 아메리칸 에어라인에서 영입하는 파격도 선보였다. 이것이라도 가능했던 이유는 뭘까. 이사진의 치열한 비판과 견제 시스템이 작동하는, 전문경영인 체제였기 때문이다.
 
‘혐의 목록 누가누가 더 많나’가 화제가 될 정도로 부패해도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는 대한항공 오너, ‘노 밀’ 사과 회견장에서 회사 경험이 전무한 가정주부 딸을 상무로 꽂은 걸 “예쁘게 봐 달라”고 하는 아시아나의 전근대적 오너, 이런 체제론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저 “태풍아 지나가 다오~”를 되뇌는 ‘오너 바라기 간부’들만 즐비하고, 그 위에 또다시 자격 미달 후계자가 자동적으로 세습 오는 경영 시스템으로는 우리 기업은 물론이고 대한민국마저 언제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언제까지 우리 모두 회사 망신, 나라 망신 해외 토픽을 지켜봐야 할까. 세계 최고 부자 워런 버핏은 “2020년 올림픽 선수 선발을 2000년 금메달리스트 자녀 중 나이 많은 순으로 하는 셈”이라고 한국식 경영에 일침을 놓는다. 세습경영의 원조 일본? 오너 체제를 놓은 지 30년이 지났다.
 
어찌 보면 두 전직 대통령을 잡아넣고, 장자연 사건 재조사하고, 기무사를 뒤지는 현 ‘적폐 청산’은 본질이 아닌 곁가지일지 모른다. 진정으로 바꾸고 도려내야 할 적폐들은 이런 우리의 ‘미래’와 관련된 후진적 사회·경제 시스템이다. ‘갑’의 시스템과 수준은 OECD 최하위권인데, 불경기 속 ‘을’의 최저임금은 OECD 3위로 오른다니, 그 미스매치(부조합)가 뭔가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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