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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개문발차 김병준 비대위, 김종인 모델 넘어설 수 있을까

최상연의 정치 속으로
어제 전국위서 공식 추인 
의원총회가 거듭될수록 당내 혼란과 갈등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자유한국당이다. 6·13 지방선거 참패 후 다섯 차례 의총에선 계파 갈등으로 당내 긴장감이 증폭됐다. 인신공격성 발언과 고성으로 난장판도 만들었다. 김성태 당 대표 권한대행의 거취 문제로 제대로 된 당 재건 논의는 아예 발걸음조차 떼지 못했다. 하지만 어제와 그제, 의총과 전국위는 분위기가 달랐다. 뚜렷한 충돌 없이 일단 ‘김병준 비대위’를 띄웠다. 한 달 넘게 싸운 결과다. 그러나 그렇다고 비대위가 당을 살려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비대위 역할과 권한에 대해 합의된 게 없는 만큼 계파 갈등은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는 휴화산이다. 첩첩산중 비대위다.
 
할 만한 사람도, 하겠다는 사람도 마땅치 않았던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은 결국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로 결론 났다. 말하자면 대안 부재 비대위원장이다. 경제 전문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은 있다. 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을 짚어내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경제 중심 정당’을 천명했다. 노무현 청와대서 정책실장을 맡았던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노 정부와 기조가 비슷한 문 정부의 경제 실정을 잘 아는 인사다.
 
그러나 지금 한국당 비대위에 더 필요한 건 정치적 영향력이다. 친박과 비박 등 여러 갈래로 나뉜 당 내부를 통합하고 수습해 나갈 리더십이 절실하다. 김 위원장에겐 그런 경험이 취약하다. 친박계 의원들은 조기 전당대회를 요구하고 있다. ‘징검다리 비대위’를 거쳐 하루빨리 리더십 있는 당 대표를 뽑아야 당 개혁과 재건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1차적으론 ‘친박 쳐내기용 비대위’라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비박계가 혁신비대위를 내세워 친박 청산의 틀을 마련한 뒤 결국 당권을 장악해 친박들을 수술대에 올리는 수순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중심엔 복당파인 김무성 의원이 있다고 겨냥한다. 목을 친다는 데 칼자루를 내줄 수는 없다는 친박이다. 그러니 구성과 운영 방식은 물론 혁신비대위란 명칭 자체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전권 비대위’ vs ‘관리 비대위’ 논쟁 여전
 
김병준 비대위

김병준 비대위

김성태 권한대행을 포함한 지도부는 ‘전권 비대위’를 주장한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가 롤 모델이란 것이다. 20대 총선을 승리로 이끈 견인차는 물갈이에 성공한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강력한 권한이었다. 정당 권력은 총구가 아닌 공천권에서 나온다. 인적 청산이 관건이다.
 
중요한 건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을 행사한 김종인 모델과 달리 김병준 비대위 앞엔 총선이 1년 9개월이나 남았다는 사실이다. 안상수 혁신비대위 준비위원장은 “이번 비대위에서 혁명적 수준의 공천 룰을 만드는 방향으로 당헌·당규를 개정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식으로든 솎아내겠다는 뜻이다.
 
친박은 반대다. 친박계 당원이 많은 상황에서 하루빨리 친박계 당 대표를 뽑아야 2020년 총선에서 공천권을 쥔다는 계산도 하고 있다. 비대위 역할과 권한, 활동 시한을 놓고 팽팽하게 맞서 결론은 쉽지 않다. 김병준 비대위는 김종인 모델을 넘어설 수 있을까. 김병준 교수에 앞서 한국당 수술을 요청받았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에 물었다.
 
비대위원장 제안을 받았나.
“여러차례 많이 받았다.”
 
왜 거절했나.
“정치를 떠났고 다시는 정치할 생각이 없다. 설사 내가 맡는다 해도 특별히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확신도 없다.”
 
비대위원장에게 당 수술의 전권을 준다는 것 아닌가.
“전권이 요술지팡이는 아니다. 총선이 2년 가까이 남은 상황에서 강제적 인적 청산은 불가능하다. 손 대면 갈등과 반목, 반발만 부를 게 뻔하다.”
 
조기 전당대회를 위한 징검다리 비대위가 돼야 한다는 건가.
“그건 아니다. 징검다리 비대위를 하겠다면 비대위를 꾸릴 필요 없이 현재 당 지도부가 전당대회를 준비하면 된다.”
 
혁신비대위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의원 서너 명의 불출마 선언 정도론 당 재건이 어렵다. 그렇다고 인명진 비대위처럼 대놓고 칼만 휘두르면 반발이 클 거다. 의원들이 자기 목을 스스로 치도록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의원들 스스로가 밀알이 되겠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국회의원은 의정 활동이 핵심이다. 곧 열리는 정기국회 실적을 공개하고 공천에 반영토록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김병준 비대위는 성공할까.
“반반이라고 본다. 관건은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김성태 권한대행을 완전하게 컨트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텐데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람 정리보다 이념 정리가 우선”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얼마 전 한국당을 향해 ‘사람 정리’보다 ‘이념 정리’가 우선이란 처방전을 낸 적이 있다. ‘친박이니까 떠나라’가 아니라 새로운 깃발과 가치에 따라 ‘당신은 우리 당에 맞지 않으니 떠나라’가 더 합당한 일이란 것이다. 버리기 힘들고 자르기 어렵다면 새로운 것을 세워서 덮어버리겠다는 말도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한국당 의원 모두가 내 목을 쳐도 좋다는 자세와 결의를 만들 수 있다면 혁신비대위는 성공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러자면 김병준 비대위는 현재의 비박 지도부에도 손을 대야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거란 목소리가 더 많다. 그런 불만이 터져 나온 게 12일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친박 중심의 ‘보수 재건 토론회’였다.
 
정우택 의원이 먼저 “당 궤멸에 책임 있는 홍준표 전 대표는 연말 복귀 의사를 내비치고, 그를 따라 당을 망친 분들은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김성태 권한대행 체제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김 권한대행 사퇴와 조기 전당대회 요구가 뒤를 이어 불을 뿜었다. 심재철 의원은 “당 대표가 궐위되면 60일 이내에 새 대표를 뽑도록 당헌에 규정돼 있는데 집행부는 왜 당헌을 지키지 않느냐. 그게 바로 독재다”고 퍼부었다. 곧 홍문종 의원이 거들었다.
 
김병준 비대위가 ‘적기(당헌에 적혀진) 전당대회’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만 해야 한다는 의견과, 전권을 갖고 대대적인 인적 청산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는 끝없이 부딪치는 평행선이다. 친박계인 유기준 의원에게 물었다.
 
왜 관리형 비대위여야 하나.
“비대위원장에게 ‘총선 공천권에 영향을 줄 칼을 드릴 것’이라고 했는데 총선이 2년 가까이 남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전권 비대위는 공천권이 아니라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의원 몇 명을 날리는 살인권을 주겠다는 거다.”
 
한국당은 어떻게 재건될 수 있나.
“선거 패배든 정책 실패든 당내에서 자체적 역량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게 바로 적기 전당대회다. 당헌·당규에도 그렇게 규정돼 있다. 전권을 줄 수도 없으면서, 사실은 뒤에서 조종하려 하면서, 겉으로만 ‘전권을 준다’고 하니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된 분들도 오지 않겠다고 한다.”
 
친박과 비박간 표 대결이 이뤄지면 어느 쪽이 우세한가.
“친박은 없다. 4선 이상 의원 중 상처 없이 살아남은 친박은 나와 정우택 의원 정도다. 지금 싸움은 계파 싸움이 아니라 지도부가 당헌·당규를 지키라는 쪽과 아닌 쪽의 다툼인데 원칙론에 동조하는 분이 더 많다. 친박계가 아닌 심재철 의원도 우리 주장에 동조한다.”
 
숫자로만 따지면 아직 친박계 우세
 
따지고 보면 계파는 다르지만 목표는 하나다. 당권을 잡아 2년 뒤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거다. 두 주장과 힘겨루기가 전당대회에서 맞붙는다면 어떻게 될까. 숫자로만 따지면 한국당은 아직도 친박계가 우세한 다수파다. 복당파 의원은 스무 명 남짓에 불과하다. 복당파를 지지하는 친복당파 의원까지 합해 봐야 과반수를 넘지 않는다. 지난해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에서 김성태 원내대표는 55표를 얻었다. 한국당 의원 수는 113명이다.
 
이런 식이라면 비대위가 제대로 된 활동을 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당에선 비대위 출범 자체가 무산된 전례도 있다. 2016년 5월 정진석 비대위원장, 김용태 혁신위원장을 의결하기 위한 새누리당 전국위원회는 열리지 못했다. 당시에도 친박계 보이콧으로 혁신위 구성을 위한 당헌 개정안과 비대위 구성은 각각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불발됐다.
 
어렵사리 출범한 김병준 비대위다.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게 비대위 역할과 비대위원장 권한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다. ‘선거만 끝나면 비대위원장 자리가 생긴다’는 우스갯말이 있지만 우리 정당사엔 성공한 비대위가 많지 않다. 2011년 11월 집권당인 한나라당에서 출범한 박근혜 비대위와 2016년 1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발족한 김종인 비대위가 대표적인 성공 모델이다.
 
두 비대위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총선 직전 출범해 인재 영입과 인적 청산이 가능했다. 또 강력한 대권 후보가 직접 나섰거나 후원했다. 그런 만큼 비대위가 활동하는 동안 계파 갈등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양쪽 모두 정책 전환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박근혜 비대위는 진보 어젠다였던 경제 민주화와 복지 정책을 받아들이면서 좌클릭했다. 김종인 비대위는 우클릭 행보로 친노 색채를 걷어내는 데 주력했다.
 
김병준 비대위는 거꾸로다. 총선이 멀고 유력 대권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꾸려졌다. 한국당 내에서 70%에 육박하는 초·재선 의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도한 공천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당 쇄신과 인적 청산 요구가 강렬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김성태 권한대행은 ‘김종인 비대위보다 더 강한 모델’을 내세웠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사람 정리’보다 ‘이념 정리’를 앞세우는 건 그런 깊은 고민과 시름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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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