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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기준 변경 고민하는 보험사 … “고보장성 상품 안 팔 수도”

보험사는 전쟁 중이다. 맞서야 하는 적은 ‘시가’(市價)다. 개전의 신호탄은 2021년 도입되는 새로운 회계기준(IFRS17)과 건전성 평가 기준인 신(新)지급여력제도(K-ICS)다. 원가로 평가했던 보험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게 되면서 보험사는 ‘시가의 난’에 시달리고 있다.
 
보험 상품의 수명은 길다. 특히 생명보험 상품은 가입 이후 30~50년에 걸친 긴 시간을 견디고 버텨야 한다. 이 때문에 미래에 고객에게 줄 보험금의 일부를 적립금으로 쌓아둔다. 보험 부채다.
 
한국과 일본의 보험사는 그동안 이 부채를 시가가 아닌 보험을 판매했던 시점의 원가로 평가해 재무제표를 작성했다. 반면 자산은 시가로 따졌다.
 
이유가 있었다. 보험을 내놓거나 팔 때 원가로 계산하면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어서였다. 이 때문에 보험사나 감독 기관이 부채는 원가로 평가했다. 하지만 채권 등 시장에서 거래되는 보험사의 자산은 시가를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제각각인 기준 탓에 보험사의 적정 자본 상태가 드러나지 않았다. 보험사의 건전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IFRS17과 K-ICS가 도입되면 그동안 원가에 가려졌던 보험사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보험사가 ‘시가’와 씨름하는 것은 적립금으로 쌓아야 하는 돈이 늘어나서다. IFRS17은 원가로 평가하던 보험 부채를 시가로 평가한다.
 
보험사가 10년 뒤 가입자에게 3억원을 줘야한다고 가정해보자. 보험 판매 시점의 금리가 연 7.5%였다면 현재 방식대로 원가 평가를 할 경우 보험사의 적립금은 1억4556억원 정도다. 가입 당시 금리(연 7.5%)에 해당하는 수익이 매년 날 것으로 예상하면 그 정도의 돈만 넣어둬도 10년 뒤에 3억원이 된다는 계산이다.
 
IFRS17이 도입돼 시가 평가를 하게 되면 주판알을 다시 튕겨야 한다. 최근의 금리 수준을 고려해 연 2.5%의 금리를 적용해보자. 10년 뒤 3억원을 만들려면 2억3436억원 정도의 적립금이 필요하다. 원가로 평가할 때보다 보험사가 쌓아둬야 할 돈이 8880만원이나 늘어난다.
 
문제는 과거에 연 5~7%가 넘는 확정형 고금리 상품을 많이 팔았던 국내 생명보험사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생보사가 보유한 부채 중 약정 이율이 연 5%가 넘는 고금리 상품의 비중은 29.9%에 이른다. 이들 부채를 모두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면 보험사가 쌓아야 하는 돈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나이스신용평가가 보험부채 적정성 평가제도(LAT) 결과를 토대로 기준금리 연 1.5%와 연 2.8%로 가정한 국고채 금리(5년물과 10년물 평균)를 기준으로 시가 평가한 국내 생보사의 올해 말 기준 보험부채는 515조원 정도로 추산됐다. 원가에서 시가로의 기준 변화로 늘어난 추가 부채 규모는 61조원에 달했다.
 
보험사를 옥죄는 시가의 족쇄는 IFRS17만이 아니다. 함께 도입되는 건전성 평가기준인 K-ICS는 더 부담스럽다. 보험사의 건전성은 지급여력제도로 따진다. 보험금 지급 요청을 한꺼번에 받았을 때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을 수치화한 것으로 그동안은 지급여력비율(RBC)을 활용했다.
 
RBC는 자산은 시가와 원가(대출 채권과 만기보유채권)로, 부채는 원가로 평가해 산출했다. 자산은 많게, 부채는 적게 된 이유다. 그렇지만 K-ICS는 IFRS17처럼 부채를 시가로 평가한다. 지급여력비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국내 보험회사의 RBC는 249.9%였다. 부실 위험 마지노선인 100%를 훨씬 웃도는 수준으로 안전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K-ICS가 도입되면 이 수치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100% 아래로 추락하는 업체가 나올 수도 있다. RBC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영업 정지 등의 제재까지 받을 수 있는 만큼 보험사는 K-ICS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험사를 겨냥한 또 다른 ‘시가’ 폭탄도 대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종걸, 박용진 의원이 각각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이다. 보험사의 총자산과 계열사 주식을 모두 시장가격으로 평가하고 총자산의 3%가 넘는 계열사 주식은 7년 동안(박용진 의원 안은 5년) 처분하는 내용이 골자다. 현행 보험업법 감독규정은 보험사의 총자산은 시장가격으로, 계열사 주식은 취득 당시 장부가격으로 평가한다.
 
이 개정안이 겨냥한 곳은 삼성생명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현재 보유한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 약 20조원어치를 처분해야 한다.
 
‘시가 평가’와의 전투를 치르는 보험사의 가장 큰 부담은 자본 확충이다. 한화생명(1조5000억원)과 교보생명(5억 달러)은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자본을 늘렸다. 신종자본증권은 주식처럼 만기가 없거나 길고, 채권처럼 매년 일정한 이자나 배당을 주는 금융상품으로 후순위채보다 금리가 높다. IFRS17 기준으로, 100% 자본으로 인정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규모가 큰 회사는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자본을 확충했지만, 최근에는 금융 당국이 금리 상승에 따른 우려를 드러내며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어 이조차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IFRS17 도입 시점에 맞춰 회계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전문 인력 부족에 수요가 몰리며 컨설팅 비용이 오르는 등 어려움이 커진다는 것이 업계의 볼멘소리다.
 
보험 부채의 시가 평가로 보험사의 건전성은 강화될지 몰라도 소비자의 효용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해식 보험연구원 금융정책실장은 “건전성 강화 요구가 계속 커지면 보험사가 보장 기간이 길거나 보장 범위가 넓은 보험 상품을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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