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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풀 세탁기, 제 발등 찍었나?

지난 1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삼성과 LG의 세탁기에 16년 만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을 때 월풀의 마크 비처 최고경영자(CEO)는 “의심할 여지 없이 월풀에 호재”라며 정부의 보호무역주의를 반겼다. 월풀은 한국산 제품의 세이프가드를 강력하게 청원한 주역이었다. 미국 정부는 월풀 손을 들어주며 향후 3년간 수입 세탁기 중 120만 대 미만에는 20%를, 120만 대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50%의 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그로부터 6개월. 비처 CEO는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관세와 무역 관련 조치 등으로 인한 불안 요인이 있다”면서 “시장 동향을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뭔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다. 지난 1분기 순이익이 법인세 감면 혜택 등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400만 달러(약 723억원) 줄면서 전조를 보였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16일 WSJ이 세이프가드 발동 이후 6개월간 세탁기 시장을 분석한 보도에 따르면 월풀 주가는 세이프가드 도입 이후 15% 정도 떨어졌다. 3월부터 수입 철강·알루미늄 등에 부과된 관세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월풀의 가격 경쟁력이 상쇄됐는데, 이것이 주가에 반영된 것이다. 세탁기 제품은 영업이익률이 3.7%에 불과해 부품값이 오르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취약한 원가구조를 가졌다.
 
실제 지난 석 달간 건조 기능을 갖춘 세탁기의 경우 미국 시장에서 가격이 20%가량 올랐다. 12년간 가장 빠른 가격 상승세이다. 삼성의 최저가 제품이 1월 494달러에서 지난달 582달러로 올랐다. LG 제품은 같은 기간 629달러에서 703달러로 가격이 상승했다. 관세 폭탄을 맞지 않은 월풀 제품도 329달러에서 429달러로 가격을 올렸다.
 
문제는 전반적으로 가격이 오르다 보니 소비자들이 세탁기 구매를 미루는 현상이 나타났다. 삼성·LG 제품은 물론 월풀 세탁기도 예년보다 저조하게 팔렸다. 지난해 월평균 35만 대의 대형 세탁기가 수입됐지만, 올해 들어서는 4월까지 월평균 수입 대수가 16만1000대로 뚝 떨어졌다.
 
WSJ은 이에 대해 관세와 같은 복잡한 경제적 무기의 경우 머릿속으로 예상하거나 바라는 대로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예상외로 중고 제품을 수리해주는 서비스업체들이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 1회 출장비가 300달러에서 500달러로 치솟았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악조건 속에도 삼성과 LG 세탁기는 미국시장 점유율을 잘 지켜내고 있다. 지난 5월 말 미 최대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가 발표한 세탁기 부문 ‘베스트 셀러’ 상위 20위에 삼성전자가 8개, LG전자가 8개 모델을 올렸다. 월풀은 단 한 개의 제품만 올렸다.
 
가전 시장 전체를 봐도 마찬가지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생활가전 시장에서 점유율 19.6%(매출액 기준)를 기록하며 8분기째 1위를 지켰다. LG전자는 점유율 16.5%로 2위를 차지했다. 2016년 2위(16.6%)였던 월풀 점유율은 4위(14.1%)로 추락했다.
 
삼성과 LG전자는 미국 내 생산을 지속해서 늘릴 예정이어서 월풀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부터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뉴베리 가전 공장을 조기 가동 중이다. LG전자도 내년 예정이던 테네시주 클락스빌 공장 가동 시점을 올해 4분기로 앞당겼다.
 
월풀은 1월 세이프가드 발동 이후 오하이오주 클라이드시 세탁기 공장 직원을 200명 정도 더 뽑아 1300명으로 늘리고 3교대로 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고가 늘면서 3교대는커녕 직원 수를 줄여야 할 형편이다. 전직 월풀 직원인 스콧 블랙 클라이드 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시민들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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