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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딘 바르고 배식구로 '탈출'···한국 뒤흔든 탈주범은

신창원, 지강헌, 조세형, 최갑복…. 
각기 다른 수법으로 유치장과 교도소 등을 빠져나와 세간을 공포로 들썩이게 한 탈주범(脫走犯)들이다.

 
‘배식구 탈주범’으로 알려진 최갑복(56)이 최근 출소 10여일 만에 대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붙잡히면서 탈주범들의 행각이 재조명되고 있다. 최갑복은 16일 대구 내당동의 한 요양병원에서 옷을 모두 벗은 채 환자 수십명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가 약 20분간 고함을 지르고 폭력을 행사했다.  
 
감쪽같이 사라진 ‘미꾸라지 탈주범’  
유치장 배식구로 도주한지 6일만에 검거된 탈주범 최갑복이 호송차량에 탑승한 모습. [중앙포토 ]

유치장 배식구로 도주한지 6일만에 검거된 탈주범 최갑복이 호송차량에 탑승한 모습. [중앙포토 ]

절도, 성폭행 등 수십건의 범죄를 저질렀던 최갑복은 2012년 출소 후 대구 효목동의 한 건물에서 불법 유사 휘발유를 팔다가 건물 주인과 마찰을 빚었고, 폭행을 저질러 검거됐다.  
 
그런데 2012년 9월 17일 대구동부경찰서 유치장에 입감된 최갑복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의 ‘탈출로’는 다름 아닌 가로 45㎝, 세로 15㎝ 크기의 배식구였다. 그는 미리 준비해둔 ‘후시딘’ 연고를 창살과 몸에 발라 미끄럽게 만든 뒤 배식구를 통과했고, 이어 2m 높이의 창살 사이를 지나 유치장을 빠져나왔다. 그가 탈출한 시간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유치장에 “누명은 벗어야 하기에 선택한 일”이라는 글도 남겼다.

 
하지만 최갑복의 탈주행각은 오래가진 못했다. 탈주 6일 만에  밀양 하남읍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1심 재판부(대구지법 형사11부)는 도주, 준특수강도미수, 상습절도 등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했지만, 항소심(대구고법 형사1부) 재판부는 준특수강도미수 혐의를 무죄로 판단, 1년 감형된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최갑복의 탈주는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1990년 금은방을 털다가 경찰에 붙잡혔고, 대구교도소로 이송되던 중 경찰호송버스가 서행하는 틈을 타 쇠창살을 뜯고 불과 20㎝ 틈으로 탈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도 3일 만에 대구의 한 여관에서 검거됐다.

 
경찰 다섯번 마주치고도 도망친 신창원  
검거뒤 부산교도소로 압송될 당시의 신창원. 김상선 기자

검거뒤 부산교도소로 압송될 당시의 신창원. 김상선 기자

신창원(51)은 탈옥 후 가장 오랫동안(2년 6개월) 붙잡히지 않은 범죄자다. 강도치사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됐던 그는 1997년 1월 교도소 감방 화장실의 통풍구 쇠철망을 끊은 뒤 탈옥했다. 노역 도중 빼돌린 실톱날 조각으로 4개월에 걸쳐 시간이 날 때마다 지름 1.5㎝ 쇠철망을 조금씩 잘라냈다고 한다. 철망 틈을 빠져나가기 위해 80㎏이던 몸무게를 60㎏까지 줄였다. 그는 이후 교도소 외벽의 환기통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와 교도소 내 교회 공사장으로 들어간 뒤 밧줄을 통해 공사장 펜스를 넘어 교도소를 빠져나갔다. 탈옥에 걸린 시간은 약 1시간 30분이었다.

 
그는 탈옥 후에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도주하는 동안 경찰과 5차례나 만났지만 검거망을 벗어났다. 1998년에는 경찰관과 격투를 벌인 뒤 권총까지 뺏어 달아나기도 했다.  
 
'신창원 신고자' 김영군(왼쪽)씨는 공로를 인정 받아 경찰로 특채됐다. 김상선 기자.

'신창원 신고자' 김영군(왼쪽)씨는 공로를 인정 받아 경찰로 특채됐다. 김상선 기자.

신출귀몰한 도주행각을 벌인 그가 붙잡힌 것은 한 가스 수리공의 신고 때문이었다. 순천의 한 아파트에 수리하러 온 김영군씨는 이 집에서 우연히 신창원을 목격한 뒤 경찰에 전화로 신고했고, 도주극은 막을 내렸다. 경찰이 꿈이었던 김씨는 공로를 인정받아 경찰로 특채됐다. 신창원이 검거 당시 입었던 미쏘니 니트 셔츠는 당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저 같은 범죄자가 다시는 없게 사회와 가정에서 문제아들에게 사랑을 달라”는 말도 남겼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강헌, 대도(大盜) 조세형  
인질극 당시 지강헌(왼쪽)의 모습. [중앙포토]

인질극 당시 지강헌(왼쪽)의 모습. [중앙포토]

5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징역 7년, 보호감호(복역 후 교화를 위해 수용하는 것) 10년 처분을 받은 지강헌은 88올림픽 직후인 1988년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도중 공범 12명과 탈주했다. 이들 중 붙잡히지 않은 4명은 서울 북가좌동의 한 자택에 침입, 집주인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했다.

 
이 인질극은 당시 TV로 생중계되며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경찰에게 호주 록밴드 비지스의 노래 ‘홀리데이’ 카세트테이프를 요구한 뒤, 노래를 들으며 창문 유리조각으로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했다. 이후 경찰특공대원의 총을 맞아 몇 시간 뒤 병원에서 과다출혈로 숨졌다. 지강헌이 인질극 과정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친 것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1998년 수감 16년만에 석방될 당시의 조세형. [중앙포토]

1998년 수감 16년만에 석방될 당시의 조세형. [중앙포토]

80년대 고위층의 집을 골라 절도를 해 ‘대도’라고 불린 조세형(80)은 1983년 4월 구치소로 넘겨지기 직전 구치감에서 ‘대낮 탈주’를 했다. 그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구치감 복도의 환풍기를 뜯어낸 뒤 그 틈으로 도주했다. 6일간 서울 도심에서 도피 행각을 벌이며 5차례에 걸쳐 절도죄를 저지르다가 총을 맞고 검거됐다. 징역 15년,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은 그는 재심청구를 통해 수감 16년 만인 1998년 출소했고 목사로 ‘변신’ 했다. 하지만 그의 절도 행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후 일본에서 절도 행각을 벌이다 구속돼 3년 6개월의 형을 살았으며 2013년, 2015년에도 절도죄로 붙잡혀 복역했다.  
 
유치장 탈주, 탈옥범 공소시효는?
교도소 이미지. 사진은 해당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중앙포토]

교도소 이미지. 사진은 해당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중앙포토]

어떤 범죄자가 선고를 받기 전 유치장 등에서 탈주하면 도주죄 또는 특수도주죄(도주시 수용설비를 훼손하거나 폭행, 협박 등을 저질렀을 경우)가 추가로 적용된다. 도주죄는 1년 이하의 징역, 특수도주죄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탈주를 저지르면 공소시효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형사소송법 249조에 따라 만약 범죄자가 징역 5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면 공소시효는 3년이지만, 여기에 특수도주죄까지 추가되면 공소시효는 10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
 
이미 재판부의 선고를 받고 탈옥을 했을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아닌 ‘형의 시효’ 적용을 받는다. 형법 77조에 따라 형의 선고를 받은 자는 시효가 완성되면 집행을 면제받는데 무기징역의 시효는 20년, 10년 이상 징역의 시효는 15년이다.  
최제영 법무부 교정기획과장은 ”국내에선 탈옥 후 검거되지 않은 사례가 없었던데다가 탈옥 뒤 검거되면 특수도주가 적용돼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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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