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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뼈 부러지고, 더 좋은 음악가 됐다" 김영욱 바이올린

10대 시절부터 세계 최정상의 무대에 올라봤던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 2000년대 초반 부상 이후엔 가르치는 일과 나눔에 전념하고 있다. [사진 스페설 뮤직&아트 페스티벌]

10대 시절부터 세계 최정상의 무대에 올라봤던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 2000년대 초반 부상 이후엔 가르치는 일과 나눔에 전념하고 있다. [사진 스페설 뮤직&아트 페스티벌]

외국 무대에 진출한 한국 연주자는 크게 늘었지만, 이른바 '특A 리스트'에 들어가는 이는 지금도 아주 드물다. 유럽과 미국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협연하고 명문 공연장에서 지속해서 초청받는 연주자의 길은 좁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71)은 10대에 이미 그렇게 했다.
 

1960년대의 세계적 신동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
발달장애인 위한 스페셜 페스티벌 총감독으로

1959년 한국에 들른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1903~91)의 눈에 띄었던 12세 바이올리니스트가 김영욱이었다. 제르킨의 추천으로 미국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한 김영욱은 16세에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지휘자 유진 오먼디와 연주하며 데뷔했다. 카라얀, 번스타인, 세이지, 하이팅크, 프레빈 등 20세기의 전설과 같은 지휘자와 협연이 이어졌다. 이후엔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임마누엘 액스, 첼리스트 요요마 등과 긴 시간동안 함께 연주하며 일류 연주자로 올라섰다.
 
1971년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나온 김영욱의 데뷔 앨범. DG 최초의 한국인 음반이다.

1971년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나온 김영욱의 데뷔 앨범. DG 최초의 한국인 음반이다.

1998년 보자르 트리오의 멤버로 영입돼 활동한 지 3년 만에 김영욱은 한국의 자택에서 넘어져 어깨뼈가 부러졌다. 그 후로 단 한 차례도 연주하지 않았고 2003년 서울대 음대 교수가 됐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집중하던 김영욱은 다음 달 열리는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의 총감독으로 이달 선임됐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문화축제다. 이 페스티벌에서 그는 일반적인 소통도 힘든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일을 2014년부터 해왔고 올해는 아예 총감독을 맡았다. 서울대 음대의 제자들에게는 엄격하기로 소문이 난, 타고난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은 발달장애인들에게 어떤 음악을 전해주고 싶을까. 일찍부터 화려했던 바이올리니스트의 삶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20대 시절까지는 왜 연주자가 돼야하는지도 잘 몰랐다. 무대를 떠났지만 지금이 더 좋은 음악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음대에서 호랑이 선생님으로 이름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무섭나요. 음악이 무섭지. 무엇보다 음악으로 대학교에 들어왔으면 음악가의 길을 정했을 나이인데 질문으로 부글부글 끓어야 되는데 자신에 대한 질문이 없다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대답을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엄격하다는 말을 듣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열두살도 아니고….”
 
바로 12세 즈음에 한국을 떠나셨죠.
“커티스 음악원에 처음 가서 정말 놀랐어요. 학교 연습실 방 하나마다 천재가 들어있는 거예요. 그날로 한국 집에 전화해서 ‘이거 돌아가야 되겠다’고….(웃음) 그래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데뷔를 하고 나서도 이 길이 어떤 길인지 잘 몰랐어요. 나는 그냥 모자라다고만 생각했으니까.”
 
1972년 나온 김영욱의 멘델스존ㆍ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972년 나온 김영욱의 멘델스존ㆍ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무대에 계속 오른 건가요.
“꿈도 못 꿨어요. 그저 우연히 연주 제의가 계속 이어지는 거라고 생각했죠. 음악원을 졸업하고 의대나 법대에 갈까 생각도 했고. 그런데 25세쯤 되니까 이래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배우고 채워야 하는데 무대에서 쏟아붓기만 하니까요. 그래서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 이후에도 연주 활동을 계속하셨죠.
“저를 처음 미국으로 이끌었던 루돌프 제르킨이 다시 한번 길을 보여줬어요. 여름에 미국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들에 데리고 다니시면서 파블로 카잘스, 부다페스트 4중주단하고 같이 연주를 해보게 했죠. 실내악을 하고 나니까 음악이 다시 좋아졌어요.”
 
독주자로 받는 스포트라이트가 부담스러웠던 건가요.
“세계 여러 도시에서 오케스트라를 매주 바꿔 가며 연주하면 외로워요. 사람들하고 친해지지도 못하죠. 어려서부터 연주 여행을 혼자 다니니 뭐든지 혼자 했어요. 그게 힘들었어요.”
 
그래도 당시 녹음한 음반을 들으면 특유의 예민하고 집중력 높은 바이올린 소리가 인상 깊습니다.
“최근에 운전하고 가다 라디오에서 제가 옛날에 연주한 멘델스존 협주곡 음반을 들었어요. ‘어떻게 내가 이런 죄를 지었을까’ 싶었어요. 생각 없이 연주를 했던 것 같아요. 1973년인가, 뉴욕 카네기홀에서 협연하는 무대를 앞두고 있었던 때의 일도 있어요. 브람스 협주곡이었는데 무대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곡이었는데, 그 전에 지독한 독감에 걸려서 준비도 잘하지 못했죠. 연주 전날 호텔 이십몇층 방에서 약음기를 끼고 새벽 2시 반까지 연습을 해도 잘 안되는 거예요. 창문 밑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냥 떨어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다음 날 연주를 잘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항상 불완전했어요.”
 
1716년산 스트라디바리를 가지고 있는 김영욱은 레슨할 때 반드시 학생의 악기를 써서 가르친다. "악기마다 다른 해결법을 찾아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1716년산 스트라디바리를 가지고 있는 김영욱은 레슨할 때 반드시 학생의 악기를 써서 가르친다. "악기마다 다른 해결법을 찾아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모차르트ㆍ베토벤 소나타 전곡 같은 공연, 작은 규모의 실내악에 더 집중하셨죠.
“보자르 트리오의 피아니스트인 메나헴 프레슬러가 80년대 초부터 트리오에 들어오라고 했는데 안 갔어요. 그러다 98년에 합류했는데 약속했던 것보다 연주가 너무 많은 거예요. 바쁜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1년만 쉬겠다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집에서 그만 왼쪽 어깨를 다친 거예요. 뼈가 다섯 조각으로 부러졌어요.”
 
치료하고 재활하면 다시 연주할 수 있지 않았나요.
“저 자신도 이상하고, 친구들도 절대 믿지 않는 얘기가 이거에요. 넘어지는 순간 알았어요. 이제 끝이구나. 뼈가 조각나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미련도 후회도 없이 1초 만에 '연주는 끝났다' 생각했어요. 몸이 완벽했을 때도 모자란 연주를 했는데 이 상태로 어떻게 하겠어요. 단 한 번의 작은 무대에도 서 본 적이 없어요. LA필과 연주가 예정돼있었고, 요요마를 비롯해 많은 친구가 연주하자고 몇번이고 제안했지만 다 거절했어요. 흔들림도 후회도 없어요. 이게 인생이에요!”
 
지난해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의 마스터클래스에서 발달장애인에게 음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영욱. [사진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

지난해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의 마스터클래스에서 발달장애인에게 음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영욱. [사진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

이젠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 건가요.
“서울대에서든 발달장애인 페스티벌에서든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도와주고 싶어요. 누구의 삶이든 의미 있게 만들어주려는 거에요. 발달장애인들은 무엇보다 의사소통하는 게 힘들어요. 한번은 리듬을 아무리 설명해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아서 좀 걸으면서 연주해보도록 했어요. 이렇게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해요. 서울대 학생들 가르칠 때보다요.”
 
음악으로 삶에 어떤 의미를 만들어줄 수 있나요.
“직업 연주자나 최고 실력자만 음악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느 레벨에서든 자신하고 연결이 되면 즐길 수가 있어요. 어떤 사람이든, 특히 장애인은 스스로에 대해 느끼고 표현할 기회가 많이 없잖아요. 그러니 음악을 통해서 잠깐이라도 그 순간을 느끼게 해주면 그게 얼마나 좋아요. 그렇게 기쁜 순간이 인생에 의외로 몇 번 없잖아요.”
 
가르치면서 기쁨을 느끼는 건 어떤 때인가요. 무대가 그립지 않나요.
 “안되던 아이들이, 특히 발달장애 아이들이 해보다가 뭐가 됐을 때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즐거워요. 이 아이들에게는 기술적인 것보다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어마어마한 무대에 서면서 연주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좋은 음악인인 것 같아요. 곡에 대해서, 음악에 대해서 의미가 더 크게 보이고 음표가 아니라 소리가 보여요. 연주는 안 하지만 공부는 더 많이 하게 되고 끝이 없어요.”
 
김영욱이 총감독을 맡은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은 다음 달 7~11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26개국 참가자 130명, 국내 문화분야 교수 29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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