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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 당한 코인레일, 창조경제 이뤘다?

지난 14일 오전 1시 25분(세계협정시(UTC) 기준으로 13일 오후 4시 25분). 이더리움 기반 토큰(암호화폐)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는 이더스캔에 새로운 토큰 거래(transfer)가 포착됐다.

 
이름은 레일토큰(Rail Token, RAIL). 총 발행량은 1100억개다. 보유 지갑(계좌)은 단 1개. 계약(contract)을 살펴보면, 총 가치는 0이더(ETH)다. 곧, 특정인(지갑 소유자)이 땡전 한 푼 들이지 않고 암호화폐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보통 새로 암호화폐를 발행(ICO)하는 경우, 새 암호화폐를 나눠주는 대가로 그에 비례하는 일정량의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받는다. 공모주 청약과 비슷하다. 그런데, 가치가 0이라는 것은 공모 혹은 프라이빗세일(ICO 전 기관투자자 등에 판매) 등을 거쳐 자금을 모으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 뒤 암호화폐 커뮤니티가 술렁였다. ‘해킹당한 코인레일 거래소의 창조경제’, ‘코인레일 거래소의 천재적인 해킹 보상 방안’ 등 코인레일과 관련한 비난과 조롱이 쏟아졌다.  
 
코인레일은 지난달 10일 400억원 규모의 해킹 피해를 봤다. 피해 복구를 위해 한 달여 간 문을 닫았다. 지난 15일 오후 9시경 다시 서비스를 재개했다. 피해 보상책을 내놨지만, 투자자들은 되레 분노하고 있다. 코인레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출처: 코인레일

출처: 코인레일

 
◇레일(RAIL)로 보상하겠다
코인레일의 공지에 따르면, 도난당한 암호화폐 가운데 덴트(DENT)ㆍ비투비코인(BBC)ㆍ이더리움(ETH) 등 3개는 전량 복구돼 입출금과 거래가 가능하다. 지브렐네트워크(JNT)는 ‘(해당 재단과) 협의하에 복구 진행 중’이라고 안내했다. 나머지는 완전히 복구를 못 했다. 미복구 상태가 카이버(KNC)는 29.9%, 스톰(STORM) 56.1%, 트론(TRX) 33.1%, 펀디엑스(NPXS) 84.2%, 애스톤(ATX) 42.9%, 엔퍼(NPER) 89.4% 등이다. 해킹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던 비트코인(BTC)도 34.8%를 아직 복구하지 못했다.
 
코인레일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 방식으로 두 가지를 제안했다. 먼저, 코인레일이 직접 암호화폐를 매입해 피해 복구하는 방법이다. 회사 측은 “서비스 운영을 통해 발생한 이익으로 암호화폐를 단계적으로 매입해 미복구 암호화폐를 갚아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른 하나는 암호화폐 ‘RAIL(레일)’을 발행해 교환 옵션을 제공하는 방법이다. 코인레일은 “기축통화이지 지급 결제 수단인 레일을 발행하고 ‘레일 마켓’을 오픈해 다양한 암호화폐를 거래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1레일은 0.72원의 가치를 지니며, 피해를 입은 암호화폐는 서비스 점검 전의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다만, 레일은 현금(원화)이나 비트코인으로 바꿀 수 없다. 현재는 덴트ㆍ루키코인ㆍ위토큰ㆍ메디엑스ㆍ메디ㆍ할랄체인 등으로만 교환할 수 있다.
출처: 코인레일

출처: 코인레일

 
지난달 해킹 피해를 보았던 국내 최대 거래소 빗썸의 경우엔 해킹 사태가 터지자마자 “회삿돈으로 보상하겠다”고 선언했다. 피해 규모가 350억원(최종 190억원으로 정정)인데, 지난해 이 회사의 당기순이익은 5300억원을 웃돈다. 자력으로 피해를 보상할 여력이 충분하다.
 
코인레일은 그러나, 자본금이 1000만원으로 알려진 데다 보험 가입 여부도 확인이 안 됐다. 400억원이라는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내놓은 보상방안에 자체 거래소 코인 발행이라는 해법이 들어있다. 지난 14일 생겨난 레일토큰이 코인레일이 피해자 보상을 위해 발행한 암호화폐로 짐작된다.
 
◇거래소 코인 전성시대
해킹 피해를 본 거래소가 자체 토큰을 발행해 보상한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6년 홍콩 거래소 비트파이넥스는 당시 시세로 6000만 달러에 달하는 비트코인을 해킹당했다. 피해 보상을 위해 비트파이넥스는 거래소 자체 암호화폐 BFX를 발행, 피해자들에게 지급했다. 이후 수수료 등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1년여에 걸쳐 피해자들이 보유한 BFX를 되사는 방식으로 보상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를 참고삼아, 지난해 4월 해킹 피해를 당한 국내 거래소 야피존(현 유빗)도 자체 암호화폐인 페이(Fei)를 피해자들에게 나눠줬다. 그러나 해킹당한 거래소라는 이미지 때문에 장사가 잘 안됐고, 간판까지 바꿨지만(유빗) 또다시 해킹을 당해 결국 문을 닫았다. 피해자들은 전혀 보상받지 못했다.
 
코인레일이 자체 암호화폐 발행을 해법으로 내놓은 배경에는 최근 거래소 코인의 약진에 있다. 16일 오전 3시 현재 24시간 기준 거래량 1위 거래소는 에프코인이다. 거래 규모가 52억 달러에 이른다. 2위 바이낸스(약 9억 달러)의 6배 가까이 된다(실제 거래량 2위 거래소는 비트맥스이지만, 이곳은 비트코인 선물거래소라 제외했다).
 
에프코인은 지난 5월 중국 거래소 후오비의 전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장지엔이 설립한 중국계 신생거래소다. 압도적 1위가 된 배경에는 이 거래소가 자체 발행한 암호화폐인 ‘에프코인토큰(FCoin Token, FT)이 있다.
 
대개 암호화폐 거래소는 이용자들에게 수수료를 깎아주거나 다른 암호화폐를 이벤트로 뿌려주기(에어드롭) 위한 용도로 자체 암호화폐를 만든다. 대형마트가 파격 할인이나 무료 경품 행사 등을 통해 고객을 묶어두는 것과 비슷하다. 홍콩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발행한 암호화폐(바이낸스코인, BNB)는 16일 오전 3시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상위 17위, 14억 달러에 이른다.
 
에프코인은 한발 더 나아갔다. 암호화폐를 매매하면 수수료의 전부나 절반을 FT로 돌려준다. 곧, 매매를 많이 하면 할수록 FT가 발행되는 구조다. 거래하면 채굴이 되는 셈이라 ’트레이딩 마이닝(Trading Mining)‘이라고도 부른다. 총 100억개가 발행되고 이 중 51%(약 51억개)가 매매 수수료 환급이라는 명목으로 거래소 이용자들에게 분배된다. 발행이 모두 끝나면 배당이 시작되는데, 에프코인이 벌어들인 수수료 수입의 80%를 FT 보유량에 따라 나눠준다. 이때 배분은 법정화폐(달러 등)나 FT가 아니라 해당 암호화폐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으로 매매했다면 비트코인으로 돌려준다. 거래할수록 FT를 더 많이 갖게 되고, FT를 많이 가지면 더 많은 배당 수익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폰지(다단계)‘ 사기라는 비난까지 받지만, 어쨌든 투자자들이 몰린다. FT는 지난달 13일 1.259달러까지 급등했다(그러나 최근엔 0.25달러 선에서 거래 중이다). 중국계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엑스는 지난달 20일 자체 암호화폐인 CET 가운데 아직 배분되지 않은 36억 개를 이달 1일부터 FT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열흘 새 800% 급등했다.
 
◇투자자 대상으로 ’깡‘하나
문제는 코인레일이 에프코인이나 바이낸스와 같은 거래소가 될 수 있냐는 부분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 이상, 두 가지 보상안 모두 허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먼저, 해킹당한 거래소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시 이용할지 의문이다. 코인레일이 향후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암호화폐를 되사 갚으려면 거래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거래 수수료를 0.1%라고 가정하면, 400억원을 갚기 위해선 거래 규모가 40조원은 돼야 한다. 1년간 갚는다고 가정하면, 하루 거래량이 1000억원을 웃돌아야 한다. 한때 10조원을 찍었던 업비트의 하루 거래 규모가 최근 1000억원 수준에 그친다. 
출처: 이더스캔

출처: 이더스캔

 
두 번째 방법은 더 문제다. 코인레일 측은 느닷없이 암호화폐를 발행해 792억원(1레일=0.72원, 1100억개)을 ’창조‘해냈다. 해킹 피해를 본 이들은 거래소가 문을 닫기 직전의 가격에 해당하는 레일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A가 100개의 트론을 해킹당했다고 해보자. A는 100개의 트론에 해당하는 레일로 교환을 신청한다. 레일 거래할 수 있는 암호화폐는 덴트ㆍ루키코인ㆍ위토큰ㆍ메디엑스ㆍ메디ㆍ할랄체인 등 뿐이다. 그래서 레일로 덴트를 산 뒤, 덴트를 팔아서 현금화할 수 있다.
 
문제는 덴트의 가격이 마켓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16일 오전 4시 현재, 덴트는 레일 12원에 거래된다. 원화 4.6원이다. 곧, A가 해킹당한 암호화폐를 빨리 현금화하고 싶다면 12원 가치가 있다고 받은 물건을 4.6원에 팔아야 한다는 의미다. 소위 ’깡‘과 닮았다. 10만 원짜리 구두 상품권을 현금 7만원을 받고 구둣방에 파는 식이다.  
 
깡에서 할인율은 물건(상품권)의 범용성에 있다. 백화점 상품권의 할인율이 구두 상품권보다 훨씬 적다. 백화점 상품권은 백화점에서 구두를 포함해 다양한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일은 쓰임새가 극히 제한적이다. 오직 코인레일에서만 쓸 수 있다. 현금으로 바꾸려면 반값도 못 받는 이유다.
 
코인레일 입장에선 그야말로 ’창조‘ 경제다. 투자자들이 레일로 보상을 받으면 지금 시세로만 따져도 보상액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 게다가 투자자들이 레일을 받아 다른 암호화폐와 교환을 시도하면 할수록 레일의 가치는 더 떨어진다. 코인레일의 피해 보상액은 점점 줄어드는 셈이다.
 
투기 세력의 유입을 기대할 수도 있다. 다른 거래소 코인의 사례에서처럼 초기 가격 펌핑을 기대하면서 투기가 몰리면, 거래량도 늘어 수수료 수익이 늘고 보유한 FT 가치도 올라 회사 자산이 불어난다. 실제로 어떤 가치도 없이 발행된 레일을 사겠다는 물량이 상당 수준에 이른다. 거래소가 해킹을 당했는데 덕분에 되레 돈을 벌게 되는 격이다.
 
블록체인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팀잇에 ’donekim‘이라는 아이디는 “코인레일의 역대급 폰지 사기가 시작됐다”며 “피땀 흘려서 번 돈을 다단계 사기꾼들의 주머니에 넣어 주지 않도록 주의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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