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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범죄의 탄생과 사법부 수사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범죄는 진화한다. 그 수법뿐 아니라 종류도 그러하다. 법률에 규정된 범죄가 있지만 어떤 행위가 새로 포함되면서 자기증식을 한다. 박근혜 정부 때 국정농단 사건은 새 범죄 탄생의 둥지였다. 지난주 이재만씨 등 청와대 3인방의 1심 선고가 내려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사건만 해도 그 이전에는 처벌하지 못했던(안 했던?) 행위다. 국정원 특활비가 전용된 것을 뇌물(방조)죄와 국고손실(방조)죄 등으로 의율한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관련자들은 범죄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이 “돈 한 푼 받은 게 없다”며 국정농단 수사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때 어느 유능한 평검사가 특활비의 범죄성에 착안, 신종 범죄를 발견해 낸 셈이다. 일단 1심 결론은 국고손실죄는 유죄지만 뇌물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국정농단 수사로 국정원 특활비·직권남용, 범죄로 부각
수사 만능주의, 과잉 수사로 피로감 팽배 … 절제된 수사 필요

‘직권 남용’이라는 범죄는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재탄생했다. 검사들도 인정하지만 형법 123조에 규정된 직권 남용은 법적 구성요건이 까다롭다. 공무원의 직무상 권한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고 권한 남용이 행위로 연결됐음을 입증해야 한다. 매년 기소율이 2%대에 그치고 실형 선고도 드물다. 그런데 직권남용이 정유라의 특혜 입학에 관여한 이화여대 교수들을 형사처벌할 때 결정적 역할을 했다. 최순실·정유라 모녀를 도운 행위에 실망한 국민 정서를 발판 삼아 구속·실형 선고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직권 남용의 칼날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주 번뜩인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은 문무일 검찰총장을 직권 남용 당사자로 지목하기까지 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 거래 의혹 수사의 대표 혐의 역시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직권 남용이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양승태 사법부가 청와대·국회·대한변협 등을 타깃으로 대응 전략을 만들었는데 그 내부 문건들이 무더기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 중엔 특정 대법원 선고를 매개로 청와대와 흥정을 시도한 것처럼 비치는 문서도 있다.
 
수사가 현재 진행형이라 결과를 속단하긴 이르다. 하지만 검찰이 나선 이상 누군가는 책임을 지게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자발적 의사 표현에 따른 것이라서 검찰을 탓할 명분이 없다.
 
삼권분립 원칙을 내세우며 머뭇거리던 검찰은 막상 물꼬가 터지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컴퓨터 제출과 최고 법관들의 공용 휴대전화, e메일, 업무추진비 및 관용차량 사용 내역 등 광범위한 자료를 요구했다. 이러다 보니 “알고 보면 검찰을 제일 모르는 게 판사들”이라는 말이 나왔다. 검찰은 의혹이 제기된 대법원 재판들의 최종 결론 도출 과정도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자 일부 대법관은 “법원행정처가 재판의 독립을 못 지키면 그게 바로 직권 남용인 만큼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질타했단다. 선진국에는 ‘사법 심사 특권’이라는 제도가 있어 재판의 합의 과정과 연구보고서 등은 수사기관에 내주지 않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어딘가에는 꽂혀야 하는 게 세상 이치다. 이번만큼 검찰의 절제된 수사가 필요한 사안도 드물다. 강제 수사는 최소화하고 약점 잡기도 안 된다. 검찰 수사는 재발 방지를 위한 진실 규명과 단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수사 과잉’‘수사 만능주의’에 시달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애초에 내건 검찰 개혁 정신대로라면 정치적 사건에 대한 특수수사 권한이 축소돼야 할 텐데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논란이 많은 군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해 대통령이 해외 출장 중에 직접 수사를 지시할 정도다. 대기업 갑질 오너들은 도덕적 지탄을 넘어 난무하는 수사의 칼날에 혼비백산하고 있다. 여기에다 언론의 호기심 충족용 보도도 갈 데까지 가는 분위기다. 조깅하는 전 법원행정처 간부가 취재진을 보고 놀라 질주하는 장면을 버젓이 내보내고선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고 둘러대는 게 과연 올바른 일인지 의문이다.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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