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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대통령에게 부담 주는 청와대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한 청와대의 일 처리 방식은 엉망이다. 1년4개월 전에 작성된, 일어나지 않았던 일에 관한 보고서다. 뭐가 그리 ‘위중함’ ‘심각성’ ‘폭발력’이 크길래 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의 군 지휘권까지 박탈해 가며 특별 수사를 지시해야 했을까. 모르는 사람들이 봤다면 한국 대통령이 외유 중 국방부 세력이 쿠데타라도 일으키려다 발각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었겠다.
 
문재인 대통령으로 하여금 그런 판단을 내리도록 의견을 모은 건 청와대 비서진 회의였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매주 월요일 현안점검회의라는 모임이다. 김의겸 대변인의 10일 브리핑에 따르면 “이번 군의 독립수사단은 별도 법적 근거 없이 검찰총장의 지휘권으로 구성했던 민간 검찰의 독립수사단을 준용한 것”이다. 검찰의 독립수사단이 법적 근거 없이 설치됐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다. 진짜 그랬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계엄령 문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국군의 독립수사단이 청와대 발표대로 ‘법적 근거 없이’ 창설됐다면 활동을 당장 중지시켜야 한다. 헌법 74조 ②항은 “국군의 조직과 편성은 법률로 정한다”에 정면으로 위반되기 때문이다. 검찰 사례를 준용했다고 위법성이 면제되지 않는다.
 
헌법 74조 ①항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는 조문은 통수권적 차원의 대통령 특별 지시라 하더라도 법률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법률 바깥에 있는 군의 독립수사단은 헌법 74조에 위배되는 조직이다. 인도에 있던 문 대통령이 이런 점을 다 검토하고 수사단 설치를 지시하진 않았을 것이다. 현안점검회의가 내부 토론에서 걸렀어야 할 문제였다. 청와대 비서진의 초법적 발상이 빚은 참사다.
 
청와대 참모들은 “독립수사단은 국방부 장관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 (송영무 장관이 기무사 문건을 보고받은 뒤에도)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고 결정했다. 반면 국방부 장관은 “문건의 상황인식에 문제가 있지만 수사대상은 되지 않는다. 기무사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정책적으로 손을 보겠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가 국방부 장관의 수사 지휘권을 빼앗은 셈이다.
 
그러나 정부조직법에 “국방부 장관은 국방에 관련된 군정 및 군령과 그 밖에 군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33조 ①항)”고 적시돼 있다. 군정·군령권자의 ‘문건을 수사하지 않기로 한 판단’을 청와대 비서진이 뒤집었다고 밝혔으니 월권이란 얘기가 나온다. 군사법원법상 “국방장관은 일반적으로 검찰관을 지휘·감독한다(38조)” “부대의 장은 소속 검찰관을 지휘·감독한다(40조)”고 명시됐다. 대통령이 송 장관의 수사 지휘권을 배제한 것도 위법의 소지가 있다.
 
13쪽짜리 기무사 문건의 저변엔 “국민 대다수가 과거 계엄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어 계엄 시행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8-1쪽)”는 인식이 깔려 있다. 당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나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계엄령을 열망했고, 더 나아가 국권 찬탈을 목적으로 반란 혹은 내란을 일으키려 한 단서는 문서의 어느 문장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하물며 이 문서를 통진당 이석기에게조차 유죄 판결을 내리지 못했던 형법상 내란음모죄의 증거로 채택하는 게 가당키나 할까.
 
청와대 사람들의 투철하지 못한 법치 의식과 경솔한 의사결정의 후유증은 크다. 후속 스텝이 꼬이면서 청와대와 국방부 간 갈등설만 확산됐다. 군부의 정치 개입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의도보다 대통령의 통치에 부담만 주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으니 딱할 뿐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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