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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편의점의 눈물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비닐봉지를 흔들며 귀가할 때 나는 궁핍한 자취생도, 적적한 독거녀도 무엇도 아닌 평범한 소비자이자 서울시민이 된다.”(김애란 단편 ‘나는 편의점에 간다’)
 
국내 최초 편의점은 1982년 서울 약수시장에서 문을 연 롯데세븐이었다. 하지만 1년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소득 수준상 시기상조였다. 88올림픽을 치른 이듬해, 드디어 편의점 시대가 본격 개막됐다. 미국계 세븐일레븐이 서울 송파구에서 문을 연 올림픽점이 신호탄이었다. 서클케이(한양유통), 훼미리마트(보광), 미니스톱(미원통상), 엘지25(엘지유통), 바이더웨이(동양마트) 등이 잇따라 1호점을 개설했다. 국내에선 낯설던 가맹점제(프랜차이즈)도 함께 도입됐다. “문 열고 나니 구경 온 사람들 줄만 20m였다.” 90년 문을 연 국내 첫 번째 가맹 편의점인 세븐일레븐 서울 쌍문동점 고근재(61) 사장의 회고다.  
 
92년 방영된 인기 드라마 ‘질투’에서 주인공(최수종·최진실)들이 데이트를 즐기는 장소가 편의점이었다. 당시만 해도 서울 번화가 몇 곳에만 있던 편의점은 소비 트렌드 변화의 중심이 됐다. 상품과 기호(嗜好)가 만나는 아이콘 공간으로 떠오르며 퇴직 샐러리맨의 창업 아이템 1순위가 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93년 1000개, 2007년 1만 개를 돌파한 편의점은 지금 5대 브랜드 가맹점만 해도 4만 개가 넘는다. 중소 브랜드나 개인 점포까지 합하면 7만 개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요즘 편의점은 어느새 ‘을(乙)’들의 공간이 됐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컵라면 뚜껑을 여는 노동자들, 비닐 봉투에 일상을 담아 가는 취업준비생들, 졸음과 진상 취객에 시달리는 심야 아르바이트생들. 이제 점주까지 이 대열에 합류했다.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면서 수입이 아르바이트생보다 적어질 것이란 걱정이 넋두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첫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문을 열었던 1990년 최저임금은 690원이었다. 내년이면 12.1배(8350원)가 된다. 장기 점주들의 말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출은 비슷하단다.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에 가맹점주들은 불복운동까지 나설 태세다. 자영업자와 노동계가 갈등하는 양상을 두고 혹자는 ‘을과 을의 싸움’으로 명명했다. 가맹 본사의 횡포, 높은 카드수수료,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임대료 같은 ‘갑질’부터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맞는 말일 수 있겠지만 사정 급한 점주들에게 얼마나 힘이 될지는 의문이다. 이들에게 가장 큰 부담은 역시 인건비이기 때문이다. 정책에 문제가 있으면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갑을 구도’로 논점을 흐릴 일은 아니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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