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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베트남처럼 고속 성장할 수 있다”

 지난 2000년 세계통화기금(IMF)의 두 이코노미스트가 펴낸 논문 한 편이 학계를 뒤흔들었다. 논문명은 ‘원조, 정책, 그리고 성장(Aid, policies, and growth)’. 이들은 연구를 통해 “좋은 경제 정책을 도입한 개발도상국에 많은 대외 원조가 배분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논문 저자는 현재 미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에 소속된 데이비드 달러 선임연구원과 크레이그 번사이드 듀크대 경제학과 교수다. 당시 연구에서 두 학자는 자본 흑자, 개방 무역, 인플레이션으로 구성된 ‘정책 지수(policy index)’를 통해 대외 원조가 수혜국의 경제 성장에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달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브루킹스연구소 제공]

데이비드 달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브루킹스연구소 제공]

 
 지난 6·12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이달 6~7일 평양 회담을 계기로 대북(對北) 제재 해제 가능성이 떠오르는 가운데, 본지는 두 학자로부터 북한 경제 개발에 대한 전망을 들었다. 두 사람은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와 별개로) 북한의 경제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이른 시일 안에 민간 부문을 활성화하고, 시장을 국외 자본에 개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크레이그 번사이드 듀크대 교수. [듀크대]

크레이그 번사이드 듀크대 교수. [듀크대]

 
다음은 두 학자와의 일문일답.

 
-북한에 필요한 경제 정책은.
“첫째, 민간 부문을 활성화해야 한다. 농부들은 농작물을 재배해 판매하고, 노동자들은 꾸준히 근로 소득을 벌어야 한다. 곳곳에선 중소기업이 성장해야 한다. 둘째, 개방 경제를 도입해 북한 기업이 자유로이 수·출입할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면 외국인 투자자들 역시 북한 내 생산 활동을 벌일 것이다. 경쟁 환율 제도 역시 자유 무역의 필수 요소다. 셋째, 재정·환율 정책을 신중히 마련해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 특히 공공재에 대한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한다. (달러)”
 
-당장 시급한 경제 개혁은 무엇인가.
“개인의 재산권이 인정돼야 한다. 이는 시장 원리의 기초다. 또 행정 조직의 개혁을 통해 공무원 조직을 성과 중심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베트남·중국 등) 경제 개혁을 벌인 공산주의 국가들의 공통점은 이러한 ‘경제 기초’를 초기에 바로잡은 덕분에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켰다는 점이다. (달러)”
 
베트남은 1986년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한 뒤 외국자본이 물밀듯이 들어오며 빠르게 성장했다. 호치민은 베트남의 경제 중심지답게 온 도시가 변화의 물결을 맞고 있다. 호치민시에서 가장 유명한 루프톱 바인 칠스카이 바에서 관광객과 일부 부유한 베트남 젊은이들이 야경을 즐기며 술을 마시고 있다. 거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생업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시민들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사회주의 베트남이 자본주의에 물들어가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하노이=김경빈 기자]

베트남은 1986년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한 뒤 외국자본이 물밀듯이 들어오며 빠르게 성장했다. 호치민은 베트남의 경제 중심지답게 온 도시가 변화의 물결을 맞고 있다. 호치민시에서 가장 유명한 루프톱 바인 칠스카이 바에서 관광객과 일부 부유한 베트남 젊은이들이 야경을 즐기며 술을 마시고 있다. 거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생업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시민들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사회주의 베트남이 자본주의에 물들어가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하노이=김경빈 기자]

 
-북한은 사실상 최빈국이다. 원조 지원이 필수 아닌가. 
“회원은 아니지만, 북한은 IMF와 세계은행으로부터 (경제 성장에 필요한) 기술적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이른 시일 안에 이들 기관을 초청해 (자국 경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필요한 기술 지원을 받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이들의 조언 없이 무턱대고 무역 시장을 개방하면 혼란이 생길 수 있다. (달러)”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보일 경우 (식료품을 비롯한) 원조를 더 많이 지원받아낼 수 있다. 그러나 경제 개혁과 비핵화 의지는 조금 결이 다르다. 북한이 ‘정상 국가(normalcy)로 바뀌려면 경제·정치 체계를 뒤엎어야 한다. (번사이드)”
 
-북한 경제 개혁에 투명성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의 제도·정책 개선은 (해외 원조보다) 경제 성장에 훨씬 효과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투명성은 재산권, 법의 원칙, 통화 정책, 재정 정책의 필수 요소다. 베트남·중국도 (경제 개혁) 초기에는 기초 데이터조차 ‘국가 기밀(state secret)’처럼 여겼다. 그러나 경제 데이터 은폐 행위는 시장 효율화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달러)”
 
'원조, 정책, 성장' 논문에서 데이비드 달러와 크레이그 번사이드가 설계한 다중회귀분석(계량경제학 분석 방식) 모형이다. 우측 둘째은 '정책 지수'를 뜻한다.

'원조, 정책, 성장' 논문에서 데이비드 달러와 크레이그 번사이드가 설계한 다중회귀분석(계량경제학 분석 방식) 모형이다. 우측 둘째은 '정책 지수'를 뜻한다.

 
-지난 2000년 논문에서 정책 지수(자본 흑자, 무역 개방, 인플레이션)란 개념을 소개했다. 정책 지수를 통해 오늘날의 북한 경제를 관찰할 수 있나.
“정책 지수는 대외 원조와 원조 수혜국의 성장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북한의 경우엔 법적·경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북한이 정책 지수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조속히 (경제 구조를) 바꿔야 할 것이다. (번사이드)”
 
“북한은 (기존 정책 지수뿐 아니라) 개인 재산권, 투자 정책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경제 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정직한 성적표(honest scorecard)’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달러)”
 
-미국의 제재 해제를 앞둔 북한에 도입 가능한 경제 개발 모델은.
“베트남 및 중국이다. 특히 (공산주의 국가였던) 베트남은 1994년까지 미국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 하지만 (제재 해제 6년 전인) 88년부터 경제 개혁을 단행했고, 결과적으로 6.6%(88~94년 평균치)의 성장을 이뤄냈다. 이는 정부의 자발적인 경제 개혁이 (원조 지원보다) 경제 성장에 더욱 효과적이란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달러)”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베트남은 자국이 주력하던 농업 부문 등에 해외 민간 자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또 해외 투자를 수용함과 동시에 (자본 유입에 따른) 초(超)인플레이션을 성공적으로 억제했다. 북한도 비슷한 경제 개혁이 가능하다. (달러)”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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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