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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트럼프 포퓰리즘이 한국당에 보내는 경고

장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한반도 평화를 향해 미소 짓던 그의 표정은 돌연 사나워지고 있다. 중국에 큼지막한 관세 폭탄을 연일 날리는 중이고, 우방국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들에게는 얼굴을 붉히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변화무쌍한 얼굴들은 우리 삶이 처한 위태로운 아이러니를 보여 준다. 평화와 성냄, 협상과 무책임, 그리고 막말들의 뒤죽박죽.
 
조금 솔직하게 말하자면 평화의 실마리를 어떻게든 붙잡아야 하는 우리는 지난 봄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밝은 면만을 바라보았다. 트럼프-김정은 비핵화 밀당 게임에 의지한 채 어떻게든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의 돌파구를 열어 주길 기다려 왔다. 하지만 평화 교섭자 얼굴의 이면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위협은 먼 나라 미국만의 일이 아닐 수 있다.
 
삶의 막장으로 내몰리는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를 부채질한 것이 2016년 대선 트럼프 후보의 핵심 전략이었다. 집권 이후에는 소수인종·이민자에 대한 혐오, 대의제 민주정치에 대한 조롱, 국민들 편 가르기 등으로 일관해 온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오늘날 전 세계를 배회하는, 민주주의의 불안이 낳게 되는 괴물로서의 포퓰리즘, 바로 그 포퓰리즘의 승리였다.
 
이즈음에 필자는 국회 110여 석을 보유한 한국당의 지리멸렬을 지켜보면서 글로벌 포퓰리즘의 한국 상륙을 걱정한다. 포퓰리즘은 (1)시민들의 경제적 삶에 대한 분노와 (2)기성 정치의 무기력이라는 두 가지 자양분을 먹으며 자란다.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률이 40%를 넘어서고, 그리스가 국가 부도로 내몰리게 될 때 분노한 시민들은 기성정당들을 조롱하는 오성운동(이탈리아), 트럼프(미국)의 포퓰리즘으로 기울게 된다.
 
분노·조롱을 부채질하는 포퓰리즘이 우리로부터 아주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첫째, 우리 주변 곳곳에서 분노의 수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 없는 수많은 청년, 점점 팍팍해져 가는 수백만 자영업자들의 삶, 빈곤율 세계 1위를 다투는 노령층의 고단함.
 
장훈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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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흔들리는 시민들의 삶을 외면한 채 정당들은 여전히 표류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에 기댄 채 시간을 보내는 여당보다 더 큰 분노의 대상은 한국당이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한국당이 시도하는 변신 방안들은 지엽적이고도 씁쓸한 것들이다. 외부에서 비대위원장을 영입하고 하향식 공천권을 준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다.
 
한국당이 실질적인 혁신보다는 구태의연한 분장에 안주하려는 까닭은 역사로부터 배운 일정한 규칙 때문이다. 앞으로 5년 혹은 10년만 잘 버텨 낸다면 지금의 정부 여당은 결국 시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못한 채 언젠가 주저앉을 거라는 기대가 바로 안이한 태도의 배경이다.
 
포퓰리즘은 기성정당들의 안이함과 비겁함을 먹고 자란다. 제도권 밖의 TV 셀럽이나 기성정당 안의 풍운아가 기성정당들을 공중납치하고 포퓰리즘의 깃발을 올리는 날이 덜컥 다가올 수도 있다.
 
분열과 막말, 혼란이 휩쓰는 포퓰리즘의 전염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당이 먼저 기득권의 높은 성채로부터 내려와 시민들에게 성문을 열어야 한다. 필자는 한국당이 기득권의 문 하나를 먼저 활짝 열기를 제안한다.
 
2020년 총선 한국당의 비례대표 후보 명부를 여성과 청년들로 전부 채우되 복잡한 절차보다는 단순한 추첨제를 권고한다. 의원으로서의 정책능력·입법능력을 검증한다는 복잡한 절차는 결국은 중앙당 권력을 쥔 이들의 권력게임으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그보다는 개방적 보수의 가치에 대해 동의하기만 한다면 모든 여성, 모든 청년들이 비례대표 후보추첨에 응모하도록 문을 활짝 열기를 권고한다(역선택 지원이니 뭐니 하는 얘기로 추첨제의 본질을 흐리지 마시라). 기득권의 문이 열리고 평범한 시민들이 들어오면 당의 이념과 가치의 혁신은 자연스레 이뤄진다.
 
요즘 지구촌 뉴스를 검색하다 보면 역사의 반복이라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주요 2개국(G2) 무역 전쟁의 격화, 분노하는 시민들과 포퓰리즘의 발호. 제2차 세계대전 전의 혼란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먹구름에 비하면 비례대표 추첨제는 그저 작은 우산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완전공영제 선거, 의원 소환제, 완전 개방형 경선제의 우산들을 계속 펼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경직되고 닫힌 정치가 바로 포퓰리즘의 먹잇감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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