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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의사이자 모범적인 부모에게 내린 악마같은 저주

영화 '킬링 디어' 한 장면. 성공한 외과 의사(콜린 파렐 분) 가족에게 한 소년(배리 케오건 분)이 처절한 시련을 안긴다. [사진 오드]

영화 '킬링 디어' 한 장면. 성공한 외과 의사(콜린 파렐 분) 가족에게 한 소년(배리 케오건 분)이 처절한 시련을 안긴다. [사진 오드]

12일 개봉하는 '킬링 디어'는 지난해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서 야유와 환호가 엇갈린 문제작이다. ‘더 랍스터’(2015)를 연출한 그리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이 신작은 미국의 잘 나가는 외과 의사 가족의 건조한 드라마로 출발해, 초현실적인 결말로 사정없이 뒤통수를 친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신화적 상상력을 현실세계에 펼쳐내는 란티모스 감독의 절정”이라 했다. 칸영화제 심사위원들은 각본상을 안겼다.  

 
외과 의사 스티븐(콜린 파렐 분)은 죽은 옛 환자의 아들 마틴(배리 케오건 분)이 찾아오자 가식적인 친절로 그를 떼어내려 하지만 이내 끔찍한 저주에 시달린다. 스티븐의 부인 안나(니콜 키드먼 분)는 가족에게 닥친 정체불명의 고통이 남편이 저지른 교만한 실수의 대가임을 알게 된다.  
 
이야기의 토대가 된 건 그리스 이피게네이아 신화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자신의 잘못으로 아르테미스 신의 분노를 사서 그리스군이 출항하지 못하게 되자, 신탁대로 무고한 맏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의 제물로 바친다. 이를 가엾게 여긴 신은 최후의 순간 제물을 사슴으로 바꾼다. ‘성스러운 사슴 살해(The Killing of a Sacred Deer)’란 뜻의 영화 원제가 나온 배경이다.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의사 부부(니콜 키드먼, 콜린 파렐)가 보여주는 부모로서 엇갈린 태도도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사진 오드]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의사 부부(니콜 키드먼, 콜린 파렐)가 보여주는 부모로서 엇갈린 태도도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사진 오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만난 란티모스 감독은 “아버지가 자식의 희생을 강요당하는 건 답을 내리기 힘든 딜레마인데 그런 테마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탐구됐다는 게 흥미로웠다”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정의를 누가 판결할 수 있을까.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의 본능을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인 개연성을 중시하는 관객이라면 황당무계할 수도 있다. 마틴이 왜 그런 저주를 내릴 힘을 가졌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저주의 내용 역시 다소 거부감이 들 만큼 충격적이다.  
 
그러나 스티븐 가족이 겪는 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처절한 복수극은 거꾸로 그만큼 고통스러웠을 마틴의 과거 또한 짐작하게 한다. 처음엔 스티븐을 통해 죽은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우려던 마틴은 그럴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아버지의 부재를 더 처절하게 절감하고 복수에 나선다. 성공한 의사이자 모범적인 부모였던 스티븐 부부가 사회적 체면과 윤리를 벗어던지고 드러낸 민낯은 관객을 인간의 본성에 대한 또 다른 고민에 빠트린다. 
제70회 칸국제영화제 현지 인터뷰
 
예측불허의 독특한 스토리로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감독의 장기는 여전히 빛난다.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전작 ‘더 랍스터’에선 일정 기간 이상 연애를 하지 않고 솔로를 벗어나지 못한 성인은 동물로 변해 인간 세상에서 추방당한다는 괴이한 미래상을 그렸다. 감독은 할리우드 대자본과 손잡는 대신 독립 제작 체제를 유지하며 “터부에 맞서는” 작품관을 유지해왔다. 
조지 클루니 주연 SF 영화 '투모로우랜드'(2015)에서 로봇 아테나 역으로 주연했던 배우 래피 캐시디가 스티븐 부부의 딸 킴 역을 맡아 저주에 걸린 10대 소녀의 복잡한 감정을 예민하게 표현해냈다. [사진 오드]

조지 클루니 주연 SF 영화 '투모로우랜드'(2015)에서 로봇 아테나 역으로 주연했던 배우 래피 캐시디가 스티븐 부부의 딸 킴 역을 맡아 저주에 걸린 10대 소녀의 복잡한 감정을 예민하게 표현해냈다. [사진 오드]

 
배우들의 열연도 볼거리다. ‘더 랍스터’에 반해 출연을 자청한 니콜 키드먼, 전작에 이어 감독과 두 번째 함께한 콜린 파렐의 서늘한 신경전이 일품이다. 놀라운 건 영어권 국가를 다 뒤져 발굴했다는 아일랜드 출신 신예 배리 케오건이다. 성숙하고 악마 같으면서도 왜 그런지 이해되기에 연민이 가는 소년 마틴 역을 기민하게 소화해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쟁영화 ‘덩케르크’(2017)로 국내 관객에게도 눈도장을 찍었던 배우다. 영국군을 구조하려는 어선에 따라 탔다 목숨을 잃는 소년 역으로 짧고 굵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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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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