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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국민연금, 문제는 수익률이야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가 한국을 떠났다. 휴대폰은 해지했다. 아예 인연을 끊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해할 만하다. 배신의 칼을 맞은 ‘피해자’인데도 세상은 그를 손가락질했다. 서슬 퍼런 청와대의 인사 개입을 폭로한 ‘눈치 없음’과 확인되지 않은 2대째 병역 회피 의혹이 죄목이었다.
 
그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에 지원한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사명감”이라고 말했다. 돈은 벌 만큼 벌었다고 했다. 자산운용사를 창업해 잘나갈 때 팔았다. 외국계 자산운용사 대표도 했다. 외국계 CEO 평균 연봉은 5억원(보너스 포함)이 넘는다. 연봉 3억원에, 지방에서 일해야 하고, 퇴직 후 3년간 관련 업종 취업도 금지되는 본부장 자리에 큰 욕심이 있을 리 없다. 예전엔 명예라도 있었다. 하지만 전임 본부장들이 잇따라 낙마하거나 구속되면서 ‘자본시장 대통령’이라 불리던 위세도 과거 일이 됐다. 되레 기피 1순위 자리가 돼 1년째 비어 있었다. 그런 자리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권유하니 그는 고심 끝에 수락했을 것이다. 결과는 만신창이, 고국을 등지는 신세가 됐다. 사명감의 대가가 고작 이건가. 길을 떠나는 그의 마음은 참담했을 것이다. 그에겐 참으로 안 된 일이지만, 그의 ‘사명감’은 역설적으로 충분히 대가를 받았다. 그러니 더 상심 말기를 바란다. 우선 국민연금 CIO가 얼마나 무거운 자리인지 국민 모두가 알게 됐다. 나라를 위해서는 전화위복일 수 있다. 덮일 뻔했던 여러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났다. 그중 큰 것 세 가지만 바로 잡아도 대성공이다.
 
첫째, 청와대의 인사 개입이다. 그간 청와대는 공공기관 인사 개입설이 불거질 때마다 부인해왔다. 그런데도 이 정부 들어 임명된 기관장·감사 자리는 대부분 대선 캠프 출신이거나 친여권인사로 채워졌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금융 공기업 등 29곳에 입성한 35명이 ‘낙하산 논란’ 인사였다. ‘곽태선 사태’로 심증만 있던 청와대 인사 개입설이 물증까지 생긴 셈이다. 앞으로는 청와대가 부인해도 믿기 어렵게 됐다.
 
둘째,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곤두박질했다. 지난해 연 7.28%였던 국민연금의 올해 1~4월 수익률은 0.89%(연 환산 1.66%)에 그쳤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무역 전쟁 위기까지 불거진 5·6월은 상황이 더 안 좋았다”며 “올 상반기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 이사장은 “1%포인트만 수익률을 올려도 국민연금의 고갈 시기를 6~8년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역으로 수익률이 떨어지면 고갈 시기도 빨라진다. 2013년 보건복지부 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60년 고갈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다음 달 재정전망에서 고갈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수익을 못 내면 현 30~40대는 평생 윗세대를 부조만 하다가 막상 자신들이 수령할 시기엔 연금 고갈을 맞게 된다. 연금의 세대 간 부조 구조가 무너지는 것이다.
 
셋째, 국민연금은 정부의 쌈짓돈이 아니다. 세금은 국민이 정부에 쓰라고 준 돈이다. 국민연금은 다르다. 내 돈을 잠시 맡겨 놓은 것이다. 노후까지 잘 굴려줄 것으로 믿고 전문가에게 맡긴 것이다. 여당 주장대로 100조원을 빼내 공공주택을 지었다가 까먹고 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답은 누구나 안다. 기금운용 본부를 완전히 독립시키는 것이다. 당장은 역량 있는 CIO부터 서둘러 찾아야 한다. 나라 안팎의 경제 상황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CIO의 조건은 다른 게 필요 없다. 기금운용 원칙, ‘수익성과 안전성의 조화’만 잘 지킬 인물이면 된다. 어설픈 이념이나 코드 인사는 금물이다. 검찰·경찰·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도 모자라 국민연금까지 재벌 개혁의 지렛대로 쓰겠다는 생각도 접기 바란다. 기업도 망가지고 기금도 까먹기에 십상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다. 이제 국민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노후에 손대는 정부를 지켜볼 것이다. 곽태선의 공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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