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박보균 칼럼] 인도는 우리 대통령에게 무엇인가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간디는 인도다. 그의 삶은 경이롭다. 비폭력·무저항·평화·금욕의 드라마다. 그것은 인도의 우선적 이미지다. 수도 뉴델리에 간디 기념관과 추모공원 라즈가트(Raj Ghat)가 있다. 그곳은 지도력의 영감을 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9, 10일 두 곳을 찾았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안내했다.
 
한국 대통령의 첫 인도 방문은 1996년 2월이다. 그때 김영삼(YS) 대통령은 라즈가트에 갔다. 그곳에서 두루마리 글씨를 받았다. 거기에 간디가 말한 7대 사회악이 담겼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재산, 양심 없는 쾌락, 특성 없는 지식, 도덕 없는 상거래, 인간성 없는 학문, 희생 없는 신앙”이다. 그 어록은 YS에게 꽂혔다. 정상회담에서 경제협력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그 후 YS의 개혁은 ‘안정 속의 개혁’으로 표출됐다.
 
간디의 어록은 그의 기념관에 적혀 있다. 그중 하나가 문 대통령에게 다가갔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There is no path to peace. Peace is the path).” 문 대통령은 방명록에 “평화가 길입니다. 평화는 평화로만 이룰 수 있습니다”라고 썼다. 문 대통령은 모형 물레를 선물 받았다. ‘물레를 돌리는 간디’는 독특하다. 그것은 자활이다. 인간 소외의 생산에 대한 거부다. 하지만 그런 접근은 나라의 빈곤을 구제하지 못했다.
 
영국의 역사가 폴 존슨은 그것을 간디의 기행(奇行, eccentricities)적 모순으로 지적한다. “물레를 손으로 돌리는 것은 직물의 대량생산이 주요 산업인 나라(인도)에선 의미가 없다.”(『모던 타임스』)
 
인도는 복잡하다. 극과 극이 대립하며 분출한다. 문명과 원시, 가난과 사치, 소음과 정적, 느림과 민첩이 충돌하며 함께한다. 역설과 공존은 인도 여행의 오묘함이다. 인도는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다(인구 13억 명). 하지만 카스트 신분제의 차별은 집요하다. 인도는 핵무장 국가다. 하지만 5억 명이 화장실 없는 집에 산다. 인도는 우주산업 강국이다. 하지만 “국민 4분의 1이 전기 없이 산다. 내년 말까지 전기를 모두 공급하겠다.”(2017년 모디 총리)
 
박보균칼럼

박보균칼럼

모디의 인도는 역동적이다. 올해 경제성장률 예측치는 7.2%.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는 그의 상표다. 제조업·IT 강국으로 가는 리더십 열망이다. 그 속에 삼성전자가 존재한다. 그 열정이 문 대통령에 대한 환대로 옮겨진 듯하다. 모디의 지하철 안내는 파격이다. 청와대는 “인도 정부가 관여돼 있지 않은 공장(삼성전자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에 모디 총리가 참석하는 것은 최초”라고 했다. 문 대통령과 모디 총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행사에 함께한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 장면은 노무현 대통령의 인도 방문(2004년 10월)을 떠올린다. 그때 그의 말은 강렬했다.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이 저인 줄 알았는데,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을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우리 상품인 것 같다.” 그 말은 재벌에 대한 노 대통령의 우호적 인식 변화로 비쳤다.
 
인도는 한국을 ‘경제’로 따져 대접한다. 1950~60년대 중반에 인도는 한국을 깔보았다. 그 시절 인도 지도자는 자와할랄 네루 총리였다. 그는 제3세계 비동맹의 주역이었다. 네루에게 한국은 가난하고 허약한 나라였다. 그는 북한과 가까웠다. 네루는 간디의 평화를 진화시켰다. 그는 유화와 선의(善意)로 중국을 대했다. 하지만 그 외교정책은 망가졌다.
 
62년 인도와 중국의 국경 분쟁은 전쟁으로 확산됐다. 인도는 전선에서 밀렸다. 네루는 미국의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그 전까지 네루는 미국을 ‘분별 없는 제국주의’로 비난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은 없었다. 국제정치는 냉혹하다. 선의의 생명력은 짧다. 인도는 국방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리고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70년대 인도의 한국에 대한 시선은 달라졌다. 박정희 정권 시절 부국강병의 기반이 다져졌기 때문이다. 73년 12월 한국은 인도와 국교(대사급 외교)수립을 했다. 90년대 들어 한국 경제는 인도의 자극제였다. 모디는 취임(2014년 5월) 이래 “한국은 인도 경제에 영감을 줬다”고 했다. 인도는 네루를 기린다. 간디는 국가 브랜드로 관리한다. 하지만 인도는 이상과 현실을 분리한다. 안보와 경제는 실리적이고 치밀하다. 그것은 모디 정부가 다지는 인도식 역사의 균형감각이다.
 
문재인-모디 회담에서 아시아의 미래를 함께 만들자고 했다. 그 다짐의 추진력은 번영과 군사력이다. 어느 한쪽의 경제와 안보가 흔들리면 약속은 헝클어진다. 그것은 국제질서의 작동 원리다. 문 대통령은 정치인의 최고 덕목으로 “균형감각”을 꼽았다(『대한민국이 묻는다』). 균형은 미래를 보장한다. 균형 의식은 정부와 여당 전체로 퍼져야 한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