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마음읽기] 양심이라는 말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얼마 전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위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과 함께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말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병역 거부가 양심적이라면, 병역을 수행한 사람은 양심이 없단 말이냐”는 반발이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양심은 온전히 주관적인 주장일까
소신과는 다른 ‘내 안의 인류 공동체’

그런 비판은 일차원적인 트집 잡기이고 무시해도 좋을 구시렁거림일까? 나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환영한다. 흉악범이 아닌 병역 거부자들을 굳이 감옥에 보내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봉사할 수 있게 하는 편이 낫다는 공리주의적 판단이다. 개인적으로는 병역 거부자들이 기초군사훈련을 받지 않는 대신 의무경찰이나 의무소방대에서 반년가량 더 일하면 어떨까 싶다.
 
다만 ‘양심적’이라는 말의 쓰임에 대해서는 한번 따지고 싶다. 양심은 무엇인가? 나는 군대에서 사격과 총검술 등 살인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내가 현역 군인이고, 우리나라가 침략 전쟁을 저지르고, 상관이 내게 민간인 학살을 명령한다면 나는 항명하겠다. 군법회의에 회부돼도 좋고 처형당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내 양심의 목소리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양심을 지니고 복무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총을 집어 드는 동작이나 다른 행동을 살인의 예비행위로 간주하고 거부한다. 나는 그 기준들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편이다. 총을 집어 드는 것이 전쟁 혹은 살인의 일부라면, 호신용품 구입은 폭행의 준비단계인가? 내가 총을 집어 드는 것은 안 되고, 내가 낸 세금으로 군대가 총을 사는 것은 괜찮나? ‘신의 율법’이라고 간단히 설명하는 이도 있는데, 그 율법은 총이 발명되기 전에 나온 것 아닌가.
 
양심은 온전히 주관적인 주장일까? 사람마다 양심의 모양이 제각각이라면 그걸 모두 똑같이 존중하고 다 양심이라고 부르면 되는 걸까? 몇몇 사람들은 법률용어 양심과 일상 한국어 양심은 다른 뜻이라며 이 문제를 넘어가려 하는데, 내게는 그런 설명이 고의적인 논점 흐리기로 들린다. 어쨌거나 우리는 지금 법정 밖에서 그 얘기를 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껏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표현은 법정 밖에서 병역 거부자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법학자가 아닌 우리 대부분에게 양심은 개인의 신념이나 소신 이상의 무엇이다. 그것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와 인간성에 대한 보편적인 믿음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신념이나 소신은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지만, 남의 양심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주장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도 그래서다.
 
특정 종교인이 수술받는 자녀에 대한 수혈을 거부할 때 그걸 ‘양심적 수혈 거부’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게 개인의 신념일 수는 있되 사람의 보편적인 도리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 신념을 위해 개인이 얼마나 치열하게 애쓰느냐, 얼마나 고통을 감수하느냐와는 별개의 문제다. 죽어가는 자녀에 대한 수혈을 반대하는 부모야말로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일 게다.
 
정말 양심이 개인의 신념, 소신에 불과하고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표현을 ‘신념, 소신에 따른 병역거부’로 바꿔 부를 수 있다면, 다른 수식어 없이 그냥 병역 거부라고 부르면 된다. 어차피 거부라는 단어에 자기 신념에 따라 주체적으로 내린 결정이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동어 반복할 필요가 있나. 신념이나 소신 없이 병역을 피한 사람에게는 병역 기피자라는 용어가 따로 마련돼 있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와 같은 단순한 주장도 파고 들어가면 첨예한 쟁점들이 나온다. 낙태는 살인인가? 안락사와 조력자살은 어떻게 봐야 하나? 민간인 학살 작전을 실행하려는 상관을 막기 위해 총을 사용하는 것은? 히틀러를 암살할 기회가 있다면? 법이 정한 바는 명확하더라도 우리는 이 대립에서 어느 한쪽의 주장에 ‘양심적’이라는 수식어를 쉽사리 붙이지 않는다. 그 말을 사용할 때에는 그것이 곧 우리의 윤리 지향이며, 반대편은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는 평가가 담긴다.
 
나는 양심이라는 한국어를 무겁게 받아들인다. 양심을 지니고 산다는 말은 도덕적으로 소신 있게 산다는 말과는 조금 다른 뜻 같다. 내게 양심은 제 나름의 윤리적 신념체계보다는 오히려 그런 견해에 곧잘 이의를 제기하는 ‘내 안의 인류 공동체’ 쪽에 가깝다. 그런 존재가 당신 안에도 있다고 믿기 때문에 당신과 나 사이에 공통분모가 있다고, 우리가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표현에는 여전히 거부감이 있다. 그러나 어떤 소신을 지닌 사람들을 사회가 단지 그 소신을 이유로 어느 이상 괴롭히면 안 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내 안의 인류 공동체가 그렇게 말한다.
 
장강명 소설가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