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북한 비핵화, 구조적 문제에 직면
군사적 옵션·경제제재 부상 입고
난관 돌파할 새 방안 보이지 않아
정부는 낙관적 해설가로 바뀐 듯
창의적 해법 없이는 한반도 미래
암울해질 것 같아 걱정이다
사실 난관은 예견된 것이었다. 비핵화 거래 대상과 조건을 둘러싸고 미·북의 입장 차가 워낙 큰 상태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기 때문이다. 북한이 정상회담에 나온 주된 이유는 경제제재였다. 지난해 3월부터 중국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제재는 올해 하반기께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었고, 그때 협상이 이뤄져야 비핵화 과정이 보다 순조로웠을 것이다(필자의 중앙일보 ‘퍼스펙티브’ 1월 22일자). 4월의 남북 정상회담이 전쟁에 대한 우려를 없앤 것은 사실이지만 비핵화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 시기가 너무 일렀다.
남북 정상회담 후 북·중 밀착 가능성을 우리 정부가 사전에 내다보고 대응하지 못한 점도 패착이었다. 들뜬 분위기에서 북한 친미화(親美化)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중국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북·중 정상회담으로 중국은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될 경우에 대비한 ‘보험’을 북한에 제공해 주고 제재 뒷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북한의 협상력은 자칭 거래의 달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해서도 버틸 수 있을 만큼 커졌다.

김병연칼럼
제재는 경상을 입었다. 중국이 드러내 놓고 유엔 제재를 위반하긴 어렵다. 그러나 감시하기 어려운 품목의 무역과 합작투자 및 밀수는 쉽게 눈감아 줄 수 있다. 북한 경제의 연명 공간이 넓어진 것이다. 물론 유엔 제재의 핵심인 광물 수입 금지는 중국이 계속 이행할 가능성이 높다. 부피가 커서 운반과 선·하적 때 감시망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광물 금수만 유지돼도 제재 이전 북한 수출과 외화 수입의 50% 이상이 막힌다. 그러나 미·중의 제재 공조가 유지되면 2년 내 끝낼 수 있는 비핵화 협상이 공조가 균열될 경우에는 훨씬 더 길어질 수 있다. 더욱이 미국의 대중 무역전쟁은 중국의 제재 동참 의지를 크게 약화시킬 것이다.
북한 비핵화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다. 이전에 북한을 움직였던 수단은 부상을 입었다. 트럼프의 신무기인 신뢰가 작동하면 좋으련만, 타국 정상의 선의에 의존해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사회과학 교과서를 고쳐 써야 할 판이다. 현재 미국의 비핵화 접근법에는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목표는 CVID(완전, 검증 가능, 불가역적 비핵화), 제재는 지속, 비핵화 후 북한의 미래는 밝을 것임’이라는 원론만 되풀이할 뿐 각론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 운전자를 자처했다. 북·미 정상회담 이전까지만 운전하겠다는 말은 아니었겠지만 요즘은 조용한 관찰자 내지 낙관적 해설가로 자리를 바꾼 듯하다. 좋은 운전자는 길이 막힐 경우를 대비해 다른 안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어떤 해법을 가지고 있나. 이대로 가면 C 이하로 낮아질 비핵화 최종 학점처럼 창의적 해법 없이는 한반도 미래가 암울해질 것 같아 걱정이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