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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조감도의 조경, 건축후엔 슬쩍 사라지는 까닭

기자
손웅익 사진 손웅익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13) 
모 여자대학교 정문 근처 식당 '소나무집'에는 아주 잘생긴 소나무가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내용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사진) [사진 pxhere]

모 여자대학교 정문 근처 식당 '소나무집'에는 아주 잘생긴 소나무가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내용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사진) [사진 pxhere]

 
모 여자대학교 정문 근처에 식당이 하나 있는데, 아주 잘생긴 소나무가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식당 이름이 소나무집. 식당 건물은 그리 볼품이 없지만, 소나무의 휘어진 줄기는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멋진 형상이고 가지도 균형이 잘 잡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소나무집이라고 이름을 지은 식당 주인도 그 소나무의 멋진 형상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그 동네 소나무집이라고 하면 특별한 소나무가 있는 집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재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지만 졸업한 지 오래된 동문들의 모임 장소로도 인기가 높았다. 학창시절 추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소나무를 다시 보고 싶어 졸업생들이 자주 찾던 것 같다.
 
정원 넓히려는 건축주 욕심에 잘려나간 소나무
그 소나무집의 원소유자로부터 설계의뢰를 받게 됐다. 법적으로 허용하는 범위까지 근린시설을 올리고 맨 위층은 주택으로 설계해주기를 원했다. 건축주는 마당 가운데에 있는 소나무가 건축에 방해가 되니 없애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 그 소나무를 지켜보고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가지는 의미가 특별하다는 생각에 건축주를 설득해 소나무를 보존하고 그 의미를 살리는 디자인을 풀어내고 싶었다. 마당 한가운데를 소나무가 있는 중정(건물  안채와 바깥채 사이의 뜰)으로 만들고 그 소나무 주위엔 작은 연못과 화초를 배치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마당에 들어와 잠시 정원을 둘러볼 수 있도록 했고 건축형태는 ‘ㄷ’자로 디자인해 실내 어디에서나 소나무의 멋진 자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소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마당 한가운데를 소나무가 있는 중정으로 만들고, 실내 어디에서나 소나무의 멋진 자태를 볼 수 있도록 'ㄷ'자 형태로 설계했다.(내용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사진) [중앙포토]

소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마당 한가운데를 소나무가 있는 중정으로 만들고, 실내 어디에서나 소나무의 멋진 자태를 볼 수 있도록 'ㄷ'자 형태로 설계했다.(내용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사진) [중앙포토]

 
그러나 소나무를 없애고 법적으로 최대한의 면적을 확보하려는 건축주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소나무를 그 자리에 두면서 건축주가 의도하는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을 여러 차례 제시했지만, 건축주를 설득하지 못했고 결국 그 소나무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와 함께 소나무가 간직한, 그리고 앞으로 또 기대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도 사라져 버렸다.
 
전원주택단지 분양광고를 보면 대부분 천편 일률적이다. 도로와 필지는 바둑판처럼 분할돼 있다. 마당에는 잔디를 깔았고 축대 사이사이에는 하나같이 철쭉을 심었다. 화려한 그래픽과 자극적인 홍보문구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조감도를 분석해 보면 광고와 전혀 다른 환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분양광고 조감도 하단의 면피성 문구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분양업자들은 의례적으로 그 조감도 하단에 ‘본 조감도는 소비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한 이미지이므로 실제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집어넣는다.
 
돋보기로 봐야 할 정도로 작은 글씨라서 대부분 잘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간다. 이 문구는 나중에 조성된 실제 환경이 조감도보다도 안 좋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공지하는 것이며 법적인 문제까지 염두에 둔 면피성이라는 사실이다.
 
조감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이미지라서 실제 눈높이에서의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 바둑판처럼 분할된 필지에 집을 지으면 앞뒤 좌우가 다른 집으로 꽉 막혀버린다. 이런 상황은 결국 도심지 내 단독주택과 다를 바 없다. 프라이버시도 없고 전망도 확보 안 되는 답답한 환경이 되는 것이다.
 
특히 분양 필지 주변의 환경을 실제와 다르게 그려놓은 그림에 주의해야 한다. 그래픽은 대부분 과장된 이미지라고 해석하는 게 옳다. 조감도에 그려진 풍성한 조경은 대체로 입주 후 수십 년 지나서야 볼 수 있게 된다. 전원주택 단지를 조성하기 전에 현장에 가보면 멋진 나무가 있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형상의 바위도 있고 작은 시내도 있으며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단지 조성자들은 이러한 자연환경에 관심이 없다. 그냥 말끔하게 밀어버리고 바둑판처럼 필지를 분할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동안 이런 식으로 기존 수목을 다 없애고 경사지를 성절토하여 계단식으로 조성한 단지들이 난립하면서 자연환경이 많이 훼손되었다. 특히 분양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방치된 단지들은 경관도 망가뜨릴 뿐 아니라 산사태의 위험도 있다.
 
200㎡ 이상 대지의 건축물엔 조경 의무화
바둑판처럼 잘라서 필지 숫자를 하나 더 늘리는 것보다 그 필지가 가지고 있는 자연환경을 잘 활용한 디자인이 훨씬 가치가 있다. [사진 pixabay]

바둑판처럼 잘라서 필지 숫자를 하나 더 늘리는 것보다 그 필지가 가지고 있는 자연환경을 잘 활용한 디자인이 훨씬 가치가 있다. [사진 pixabay]

 
건축법에는 200㎡ 이상의 대지에 건축하는 경우 조경을 의무화하고 있다. 60평 정도의 규모이므로 대부분의 필지에 해당한다. 조경 의무조항은 최소한의 녹지확보를 법으로 강제한 것이다.
 
앞서 예로 들었던 소나무 집도 그렇게 멋진 소나무는 없애버리고 인허가를 받고 사용검사를 받기 위한 형식적인 조경을 했다. 소규모 필지의 건축설계를 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자리에 건축물과 법적 주차장을 배치하고 나서 남는 공간을 찾아 법정 조경면적을 확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런 조경조차 사라지는 것이 문제다. 조경을 없애고 야외매장을 확장하거나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소나무집처럼 도심지에서 건축하는 경우 기존 수목을 보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지만 전원주택단지는 다르다.
 
바둑판처럼 잘라서 필지 숫자를 하나 더 늘리는 것보다 그 필지가 가지고 있는 자연환경을 잘 활용한 디자인이 훨씬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미 수요자는 다 알고 있는데 분양업자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손웅익 건축가 badaspa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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