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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응원 피켓부터 캐릭터 인형·영상까지…팬이 만들고 팬이 즐기는 ‘팬 문화’

"팬 문화에서 영원하거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팬덤은 특수한 역사적 조건에 대한 반응으로 생겨난다." 
 
팬 문화 연구로 잘 알려진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가 지난 1992년 내린 결론입니다. 26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팬 문화는 변화 중이죠. 이러한 현상은 미디어의 변화에 따른다는 게 팬 문화 연구자들의 주장이에요. '팬'이라는 용어는 17세기 후반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죠. '광신도(fanatic)'의 줄임말로 무언가를 열광적으로 믿는 사람들을 가리켰다고 합니다. 이후 점차 변화해 야구·소설·연예인 등을 선망하는 이들을 부르는 말로 쓰이게 됐고요. 팬들의 목소리는 실제 산업에도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여러분이 보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웹툰의 진행·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게시판에 글을 올려 항의하는 것도, 넓은 의미로 팬의 활동이죠. 팬 문화는 새로운 매개체가 생겨날 때마다 그 양상을 달리합니다.
 
최근엔 모바일 디바이스의 등장으로 기존 대중매체 밖에서 팬덤이 형성되고 있어요. 유튜브·인스타그램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들은 2010년대 초반부터 하나둘 등장하더니 이내 오프라인에서도 브랜드 가치를 확립하고 영역을 넓혀갔죠. 소중과 만난 김시연(서울 재현중 2)·정수빈·이정아(서울 상계제일중 2) 학생은 크리에이터 군단에 푹 빠져 있었는데요. 게임 크리에이터 도티와 코아, 유튜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본 가수 마후마후 등 이들이 선망하는 대상은 모두 모바일 디바이스를 중심으로 하죠.
 
"도티 얘기하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요. 저는 행사를 따라다녔거든요." 정아 학생이 직접 만든 피켓을 내보였어요. "시험기간에도 행사가 있으면 가요. 저를 돋보이게 할 피켓은 필수죠. 이걸 보고 기억해 주시더라고요." 형광 글씨를 붙인 검은 피켓을 든 정아 학생은 이 굿즈 덕분에 도티가 본인을 기억한다고 자랑했죠. 또, 문구점에서 파는 형광지와 반짝이 종이를 꺼내 피켓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줬답니다. "먼저 글씨를 컴퓨터로 써서 인쇄하세요. 좌우가 바뀌어야겠죠. 그런 다음 그걸 색지 뒤에 붙이는 거예요. 그대로 오린 후 검은색 단단한 판에 붙이면, 피켓 완성입니다."
 
정아는 스마트폰 채팅창 하나를 열어 보였어요. "제가 만든 고독한 도티방이에요. 박명수·유병재 등 유명 셀럽들의 사진을 '짤'처럼 모아 공유하는 이른바 '고독한 채팅방' 아시죠? 여기선 도티 사진만 공유하고, 때론 도티가 직접 들어와 본인의 미공개 사진을 올려 주기도 해요." 채팅창을 분주하게 내리는 정아에게선 자부심마저 느껴집니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사진으로 대화하고 있었거든요.
 
시연이는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냈어요. 원래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가 태블릿PC도 이용한대요. "바로 업로드 할 수 있고 색도 다양하게 쓸 수 있어 장점이 많다"며 펜을 든 시연이는 머리부터 쓱싹쓱싹 그리기 시작했어요. 삐죽삐죽 튀어나온 머리카락, 날 선 눈매, 어깨 위 미니어처까지. 완성된 그림은 시연이가 좋아하는 마후마후를 닮았죠. "유명하진 않지만 그래서 좋아요. 저만 볼 수 있잖아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로 근황을 꼭 챙겨보고, 매일 마후마후 그림을 그려 SNS에 올린답니다."
 
수빈이도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냈어요. "전 주로 도도한 친구들 멤버 코아를 그리는데, 신중하게 비율을 계산하며 시작합니다. 코아에게 그림을 선물하고 같이 사진을 찍은 적도 있죠." 수빈이는 코아를 꼼꼼하게 그려냈어요. "코아는 유튜브 방송 진행을 정말 재미있게 해요. 너무 귀엽고요. 반에서 유튜브 안 보는 친구들은 없거든요. 저도 자연스레 보다가 코아한테 꽂힌 거죠." 느릿한 말투로 설명하는 사이 지우개가 몇 번 오가고, 코아가 완성됐답니다.
 
"이런 물건은 왜 만들어요?" 묻자 정아가 먼저 번쩍 손을 들었죠. "삶의 활력소가 돼주는 데 고맙잖아요. 행사에 들고 가면 제 얼굴을 기억하고요." 수빈이도 질 수 없죠. "저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따로 운영하고 있어요. 팬 계정이라고 보시면 돼요. 제가 그린 그림이나 친구들이 그린 팬아트를 올리죠. 또, 크리에이터를 만날 수 있는 행사들을 모조리 찾아다니면서 함께 사진을 찍어요."
 
모바일·아이돌 문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팬덤


좋아하는 대상과 관련한 물건을 만들다가 장사로 이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덕업일체(덕질과 생업이 하나가 되었다는 뜻의 신조어)'가 현실이 된 사례죠. "시우민 인형 사실 분, 주문 받습니다." 한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글입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특징을 가져와 인형을 만들고, SNS나 포털 블로그 등을 통해 요청을 받아 판매하는 거죠. 이게 다가 아닙니다. 이 인형에 옷을 입히는 데도 어마어마한 노력이 드는데요. 토끼옷·마린옷·잠옷을 비롯해 실제 아이돌이 입었던 무대의상 등을 제작해 입히죠. 개인이 인형이나 옷을 주문받아 제작하다 오프라인 매장을 낸 사례도 있습니다.
 
소중이 찾아간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 아이돌룩 매장엔 자신의 인형 사진을 찍어와 어울릴 옷을 고르거나 직접 인형을 들고 와서 모자를 씌워보고 옷을 대보는 고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죠. 김벼리 점장은 "자체 제작한 방탄소년단 지민, 워너원 옹성우, 엑소 디오의 인형을 시범 판매 중인데요. 반응이 좋다면 자체 공장을 통해 추가 제작에 들어갈 생각입니다"라고 세 가지 예시 모델에 관해 설명했어요.
 
고객들을 위한 포토존도 있어요. 방탄소년단·워너원·엑소 등 인기 아이돌의 뮤직비디오 속 모습을 재연한 공간에 큰 인형을 만들어둔 거죠. 또, 인형을 더 예쁘게 만들기 위해 메이크업을 할 수 있도록 볼터치도 한 켠에 구비해 뒀어요. 김 점장은 "생기가 돌고 예쁘죠. 사진도 잘 나오고요"라며 워너원 윤지성 인형에 분홍색 볼터치를 해 보였죠.
 
최한결(서울 상암중 2) 학생기자도 이곳에서 옷을 구매했다고 얘기했습니다. "트위터에 인형을 파는 팬 계정이 있어요. 저는 '프로듀스101'에 출연했던 안형섭 팬입니다. 계정 주인이 정직하고 꾸준하게 팬 활동을 하는지 지켜봤죠. 그래야 신뢰가 가거든요." 최 학생기자는 온라인 주문 후 두 달 반을 기다려 인형을 받았대요. "오랜 제작과정을 기다려야 했고, 2만5000원이란 금액이 들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아요. 인형을 받은 후엔 안형섭이 평소 자주 착용하는 헤어밴드, 그를 닮은 토끼 의상 등을 아이돌룩 매장에서 입혀본 후 구매했죠."
 
스타를 좋아하는 데서 나아가 자기만의 독립적인 콘텐트를 만드는 이도 있습니다. 네이버 브이앱·소속사 공식 채널 등을 통해 제공된 영상을 재가공하는 것은 이미 많은 팬들이 하고 있는데요. 한 발 더 나아가 아이돌을 소스로 제3의 영상물을 만들어내는 이도 있어요. 지난 2016년 6월 유튜브에 개설된 '광대의 봄날' 채널은 영화 패러디, 데이트, 면접 보기 등 각종 상황극 95개 영상과 2만여 명의 구독자를 갖고 있죠. 
 
채널을 운영하는 이예현씨는 아이돌은 자신의 영상물에 출연하는 캐릭터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어요. "저는 방탄소년단의 팬이긴 하지만, 제 콘텐트에서 그들은 뚜렷한 개성을 가진 출연자일 뿐이죠. BTS 멤버들은 솔직해서 자기 성격을 쉽게 드러내요. 그게 매력이라 캐릭터 파악에도 용이했고요." 그는 직접 짠 시나리오와 상황에 맞는 영상·사진을 가지고 포토샵, 3D 프로그램,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베가스 등을 이용해 콘텐트를 만듭니다.
 
"제가 만든 콘텐트 중 하나를 1년 전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서 공유해 갔죠. 그들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그때 해봤습니다. 지금 BTS 팬으로서 자랑스럽게도, 그들이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잖아요. 음악성도 좋고 SNS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유튜브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에 셀카를 찍어 올리거나 사소할 수도 있는 부분까지도 자주 소식 등을 올리면서 아미들과 소통하려 노력했기 때문에 팬덤이 확장되는 부분이 컸던 거죠. 여기에 제 채널도 하나의 창구가 돼 해외 팬들이 국내로 유입될 수 있도록 했던 데 작은 뿌듯함도 가져 봅니다."
 
글=강민혜 기자 kang.minhye@joongang.co.kr
사진=강민혜 기자 kang.minhye@joongang.co.kr 
자료=『팬덤 이해하기』(한울아카데미), 『덕후감: 대중문화의 정치적 무의식 읽기』(북인더갭), 『키워드 오덕학』(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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