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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참 좋은 저녁이야

참 좋은 저녁이야
-김남호(1961~ ) 

 
시아침 7/9

시아침 7/9

유서를 쓰기 딱 좋은 저녁이야
밤새워 쓴 유서를 조잘조잘 읽다가
꼬깃꼬깃 구겨서
탱자나무 울타리에 픽 픽 던져버리고
또 하루를 그을리는 굴뚝새처럼
제가 쓴 유서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종일 들여다보고 있는 왜가리처럼
길고도 지루한 유서를
담장 위로 높이 걸어놓고 갸웃거리는 기린처럼
평생 유서만 쓰다 죽는 자벌레처럼
백일장에서 아이들이 쓴 유서를 심사하고
참 잘 썼어요, 당장 죽어도 좋겠어요
상을 주고 돌아오는 저녁이야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 중 하나이다. 탄생과 더불어 죽어간다. 새, 짐승, 벌레의 한 동작 한 동작은 그래서 다 유언을 적는 일이 된다. 아이들의 운문 산문도 그걸 심사하는 일도 한 걸음 한 걸음의 유서 쓰기이다. 이것은 비관이 아니다. 삶은 죽음으로 끌려가는 공포 여행이 아니라 죽음과 함께 가는 명랑한 여행이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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