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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대가가 건네는 ‘인생 나침반’ 나를 지키는 용기(6)] 애플이 비츠를 인수한 진짜 이유는?

더 나은 선(善)을 추구하는 지미 아이오빈…인생은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
애플의 음악 생태계 창조자로도 불리는 지미 아이오빈(왼쪽).

애플의 음악 생태계 창조자로도 불리는 지미 아이오빈(왼쪽).

창밖을 보니 비바람이 몰아친다. 나뭇가지가 세차게 흔들리고 회색 하늘에서 금방 비가 쏟아질 것 같다. 만약 강한 회오리바람 속에 혼자 던져졌을 때 누구나 무서움에 떨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삶을 살아가는 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언가가 두려워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무서울 때가 많다. 주저하다 폭풍우 속을 헤쳐 나가지 않아 기회를 잃는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스스로의 용기 부족 탓이 아닐까? 두려움 없는 용기를 삶의 지혜로 승화한 인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2015년 애플이 헤드폰 제조 업체인 비츠(Beats)를 인수했다. 누군가는 단지 한 사람 때문이라고 했다. 그 ‘한 사람’은 바로 지미 아이오빈(Jimmy lovine)이다. 애플은 비츠를 무려 30억 달러에 인수했다. 우리 돈으로 3조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아이오빈은 음악계에서 존 레논, 스티비 닉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U2 같은 유명 뮤지션과 함께 작업한 베테랑 레코드 프로듀서다. 그는 음악산업에 대해 놀라운 지식으로 가장 앞서나가는 사람이다. 아이오빈은 1989년에 인터스코프 레코드(Interscope records)를 설립했다. 랩뮤직의 빠른 성장을 감지하고 레이디 가가, 마돈나 외에 닥터 드레, 에미넴 같은 래퍼의 조력자가 됐다. 2008년 아이오빈은 힙합뮤지션 닥터 드레와 음악 하드웨어 업체인 비츠를 공동으로 창립한다. 애플은 왜 그 많은 돈을 들여 비츠를 인수했을까? 애플뮤직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유명 아티스트로부터의 지원이 필요하다. 아이오빈은 그들과 친분이 많아 애플이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도록 도울 수 있는 점이 큰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아이오빈은 어떻게 음악산업이 변하고 어디서 음악적 기호가 생기는지를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음악계의 가치 있는 사람이다. 다른 이유는 없을까? 2013년 삼성은 갤럭시 휴대폰 구매자들에게 제이지(Jay-Z)의 최신 앨범 100만장을 제공하기로 파트너십을 맺었다. 삼성이 음악을 통한 문화적인 명성을 사들인 것이다. 비츠 인수로 애플도 삼성과 유사한 행보를 하려 한 거다. 애플은 2011년 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로 문화계와의 끈을 잃었다. 아이오빈과 닥터 드레의 영입으로 다시금 끈을 잇게 된 것이다. 애플은 늘 1등과 함께 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지미와 드레가 음악 분야에서 영향력 1등인 아티스트들과 연결해 줄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라 신뢰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음악산업에서 막강한 영향력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교정에 들어선 아이오빈은 졸업생들에게 인사말을 한다.
 
“지난해 제가 제일 뒤쪽 줄에 앉아 있었어요. 제 딸 제시카가 이 학교를 졸업했거든요. 사실 지난해에 졸업 연설을 부탁한다고 요청받았더라면 졸업식에 더 집중했을 건데요. 나는 여러분처럼 이런 좋은 대학을 갈 기회도 없었어요. 열심히 공부하고 학교를 빛내줄 그런 인연도 없었는데 이 자리에 서서 영광입니다. 인생을 먼저 산 선배로서 여러분들이 삶을 헤쳐 나갈 때 약간이라도 도움이 될 말을 건네고 싶네요.”
 
그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졸업생들에게 당당히 설 수 있는 인물인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믿게 됐다. 인생을 돌아보며 오늘의 자신이 있게 한 변화의 원동력 두 가지가 떠올랐다. 돌이켜 보면 삶의 교훈을 준 순간순간은 때로는 그를 흔들리게도, 두려움에 떨게도 했고 겸손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를 볼 때 학벌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학벌보다도 풍부한 인생을 산 그의 경험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젊은이들에겐 더 소중한 자산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23살 된 무렵의 내 이야기는 부교재 정도로 생각하세요. 음악계에서 녹음하는 엔지니어로 일했는데 뭐 이름은 근사하지만 신나는 일은 아니었죠. 처음에는 전화 받고 마루 청소하고 차나 커피 타는 일을 했어요. 여러분에게 인상적으로 들리지 않겠지만 그런 게 사업의 기초를 이해하고, 직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취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런 태도가 도움이 됐나? 50번째 차를 존 레논에게 타서 갖다 바친 이후에 아이오빈은 존 레논과 같은 건물에 있게 된다. 레논을 보면서 그의 열정과 용기에 탄복하고 자신도 그를 닮아가고 있음을 스스로 알게 된다. 그런 열정이 효과를 보았는지 드디어 당대의 스타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일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브루스가 ‘Born To Run’이라는 앨범을 작업하는 것을 돕게 된 것이다. 마침내 그 앨범은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사람들은 그 앨범을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앨범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지미 아이오빈의 앨범으로 생각한다. 얼마 후 나온 것이 브루스의 ‘마을 귀퉁이의 어두움: Darkness on The Edge of Town’이란 앨범이었다.
 
“당시를 돌아보면 앨범을 만드는 데 제일 먼저 할 게 드럼 소리를 녹음하는 것이었어요. 그게 제 역할이죠. 우리는 브루스가 생각한 소리를 얻기 위해서 6주 간 24시간 내내 일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브루스가 원하는 그 소리가 안 나오는 거예요. 내가 뭘 했는지 여러분들은 상상도 못할 겁니다. 드럼을 복도에 놓기도 하고 엘리베이터에 놓기도 하고 목욕탕에 놓기도 했어요. 물속에 넣는 것은 빼고 할 것은 다 했어요. 그런데 브루스가 그랬어요. ‘지미, 내가 듣는 소리라고는 드럼을 치는 막대기 소리뿐이야’라고.”
 
존 레논의 열정과 용기에 탄복
울고 싶은 사람에게 뺨때리는 격이었나, 얼마나 화가 났을까? 그래서 아이오빈 역시 브루스에게 쏘아 된다. 너무 억울하고 분한 느낌에서였다.
 
“브루스, 드럼을 치는 건 막대기야. 막대기 말고 무엇으로 드럼을 쳐!”
 
브루스는 그의 보스였다. 보스가 만족하지 않는데 그런 말을 하다니 뒷감당이 되겠나. 여하튼 그들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아이오빈이 듣는 소리는 ‘둥둥둥’이었고 브루스가 원한 것은 ‘붐붐붐’이었다. 마침내 브루스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뉴저지 출신 전문가들을 데리고 온다.
 
“그때 나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상황인지를요,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마치 내가 2년 전의 내 실력에 비해 그 반도 미치지 않게 느껴지더라고요. 비유하자면 자신감이 없는 대중들이 투표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굴욕감도 들었죠. 회사에서 스무 살 된 젊은 친구가 하는 말이 딱 생각나더군요. 모멸감이란 단어요. 브루스가 확성기를 여기저기 놓을 때마다 나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어요.”
 
당시 그들은 호텔에 머물렀는데 아이오빈은 호텔로 돌아가서 친구에게 그만둘 거라고 말한다.
 
“나는 브루스를 도와주는 존재에 불과해. 이제 그가 나를 화나게 하고 있어. 제가 그렇게 말했어요. 당시를 돌아보면 나는 단지 녹음 과정에서 브룩클린 출신의 젊은이들의 오만함을 참아야 했고 그 가운데에서 무시당하는 초보자에 불과하다고 느꼈어요. 사실 나는 어딘가에 이미 도달한 사람처럼 느꼈는데,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느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세상에! 내가 틀렸던 거죠.”
 
누구나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번쯤 했을 것이다. 한 번의 성공으로 세상이 모두 자기 것인양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된다. 아이오빈 역시 그런 경험을 한 것뿐이다.
 
“브루스의 매니저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어요. 이봐 지미, 이런 상황에서 너의 본능이 원하는 방식과 반대되는 행동을 네가 할 것을 말해 주고 싶다. 이런 건 너답지 않은 거야. 나는 네가 우리가 생각하는 ‘큰 그림’ 속에서 무언가를 이해 해주기를 바래. 우리 어머니 집에서 나는 그 ‘큰 그림’이었어.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는 네가 느끼는 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야. 이것은 너를 위한 게 아니야. 이건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그의 앨범을 위한 거야. 그게 ‘큰 그림’이야. 이건 너의 감정을 위한 것도 아니고 어느 누구의 느낌을 위한 것도 아니야.”
 
‘이것은 너를 위한 게 아니야’
아이오빈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거부 반응이 올라옴을 느낀다. 내부에서 브루스의 매니저가 말한 것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고 대든다. 그래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따지고 싶었다.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후에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말한다.
 
“지금 같아서는 반대로 행동했을 거예요. 나는 당시 나의 에고(자아)를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멈추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나를 그냥 감정적으로 방어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브루스의 매니저에게 냉소적으로 말했죠. ‘아리스토텔레스가 내게 충고하는 소리처럼 들리는 걸 이해하겠어.’ 그렇게 말했죠. 그때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람의 이름이 그냥 듣기 좋아보였죠. 존은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네가 브루스에게 가서, 도와줄게.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지 할게. 그랬으면 좋겠어.’ 참 근사한 사람이죠.”
 
아이오빈은 그제서야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런데 뉴저지 출신들도 드럼 소리를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했다. 어쨌든 아이오빈과 그들 팀은 브루스가 원하는 소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그리고 나서 6주 후. 아이오빈은 브루스의 완전한 팀이 됐을 뿐만 아니라 브루스가 만든 가장 위대한 노래 중 하나인 ‘그 밤이라서: Because The Night’를 받게 됐고 그는 패티 스미스를 위해서 그 곡을 사용했다. 브루스가 준 곡은 아이오빈이 프로듀서로 만든 첫 번째 히트한 앨범이 됐고, 아이오빈의 삶을 안착시킨 계기가 됐다. 졸업식에선 그는 여전히 브루스의 매니저가 한 다섯 단어 ‘이것은 너를 위한 게 아니야(This Is Not About You)’를 기억하고 있다. 그 말이 그의 인생을 이끈 모든 선물의 전환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나는 개인적인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과 진짜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무엇이 절실히 필요한지를 알게 됐습니다. 그건 ‘더 나은 선(善)’을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내가 정신적으로 완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여전히 불안·에고·자존심과 싸우고 있습니다. 특히 매일 두려움과 전투를 하고 있죠.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이런 것은 종종 내가 ’큰 그림‘을 보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런데 생각의 각도를 좀 달리해 보세요. 내가 알게 된 것은 이런 강력한 불안이 때로는 삶의 위대한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거예요. 가장 강력한 5시간짜리 에너지 강장제 같은 것을 상상해 보세요. 나는 두려움에 대해서 제대로 느껴보았습니다. 처음 일할 때 90일 만에 두 번에 걸쳐서 해고됐어요. 보도블록이 내 뒤에서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불안이 결국 내가 앞으로 가게 하는 추동력이 됐습니다. 맞바람이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뒷바람이 나를 프로펠러처럼 전진하게 하더군요. 그렇게 불안한 심리가 동력으로 작용하게 하는 법을 익힌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는 오히려 화(火)가 화(華)가 되는 법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갈등의 소지이자 어려움의 원인이었는데 그것을 극복하면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 세상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지혜를 알게 되는 것은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가. 아이오빈의 경험은 어찌 보면 우리 모두가 인생이라는 항로에서 마주치는 탈무드 속의 교훈 같은 이야기다.
 
“나의 인생에서 두 번째 중요한 순간은 1999년입니다. 나는 그때 마치 세상의 왕이 된 기분이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레코드 회사인 인터스코프 레코드를 닥터 드레와 만들었거든요. 우리는 천하무적이 된 느낌이었어요. 냅스터를 제외하고는요.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잖아요. 나는 다시 위기의식을 느꼈고 더 큰 불안에 빠져 듭니다. 사람들이 가게에 가서 레코드를 사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무료로 노래를 듣는 것이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이건 도둑질이거든요. 그런데 이 도둑질이 인기가 있을 거라는 걸 직감했어요. 그래서 인텔의 창업자 중 한명인 레스를 만나러 갔어요. 내 사업이 거의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여러 측면에서 따져보게 됐습니다.”
 
때때로 두려움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역할을 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그런데 그건 옳지 않다.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아이오빈은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나아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야 누군가로부터 조언이라도 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레스는 20분 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말하더군요, ‘지미, 세상에 영원한 회사는 존재하지 않아.’ 그 말이 진짜 심오하고 진실 되게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마음이 황폐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요. 나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생각했어요. 그가 죽었다는 것이 상기되더군요. 그런 전설적인 영웅도 영원하지는 않잖아요.”
 
레스는 아이오빈에게 오늘날 급변하는 세상에서 사는 데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이렇게 요약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이미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아이오빈은 레스의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유니버설 뮤직의 회장이자 당시 보스였던 친구 덕 모리스에게 전화를 건다.
 
“덕, 우리 엿 됐어. 그래. 내가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런데 나 무척 상심했어. 우리 어쩌지.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단 말이야.”
 
스티브 잡스와 새로운 도전
지미 아이오빈은 비틀스의 리드 보컬이었던 존 레논의 열정과 용기에 탄복했다고 말했다.

지미 아이오빈은 비틀스의 리드 보컬이었던 존 레논의 열정과 용기에 탄복했다고 말했다.

아이오빈은 그 순간이 죽을 만큼 두려웠다고 한다. 그리고 약간의 농담을 사용하며 학생들에게 말한다. 화제가 잠시 바뀐다.
 
“사실 이 순간, 여러분 앞에 서서 이야기 하는 것도 겁에 질려 죽을 것 같은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두려움을 다루는 법을 익혔으면 해요. 사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죽을 만큼 두려운 사람입니다. 그런 나를 보고 여러분들이 두려움에 맞서 편안한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두려움을 여러분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삶의 축복입니다. 두려울 때 두려움을 이용하는 법을 익히면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곳으로 여러분은 가게 됩니다. 두려움은 그런 화력을 가진 대상입니다.”
 
아이오빈은 존 레논을 비롯해 그가 만난 모든 사람은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들이었다고 회고한다. 예술가들은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존 레논이 ‘노동자의 영웅: Working Class Hero’에서 노래하잖아요. 여러분들의 삶이 괴롭고 두렵더라도 멋진 생을 찾아가세요. 여러분들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서 역할을 못한다할 때 그 노래를 생각하세요. 존은 그 노래처럼 두려움을 제대로 표현하고 극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존 레논의 노래를 한번 들어보자. ‘밤이 내려 앉아 온 세상이 캄캄하고 달님만 밝게 빛나도 난 두렵지 않아요. 두려워하지 않을 거예요. 신만 곁에 있어 준다면. 곁에 있어 줘요. 내 곁에 있어주세요. 내 곁에 머물러 주세요. 우리가 바라보는 저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저 산이 바다로 무너지더라도. 난 울지 않아요. 눈물 흘리지 않겠어요. 당신만 곁에 있어준다면. 그대여 곁에 있어 줘요 내 곁에 있어 주세요. 내 곁에 머물러 주세요.’
 
“2003년 음악계에서 우리는 기로에 섰습니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과거를 옹호하고 같은 구멍을 계속 파는 행위를 하거나 새로운 미래로 눈을 돌려야 하거나 뭐 그런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었지요. 25살 된 젊은이와 55살 된 중년의 사람이 생을 대하는 건 다릅니다. 나이 들면 방향전환이 어려워요. 위험이 따르잖아요. 레스가 내게 영감을 주었고 나는 세상이 진화하는 방향으로 음악을 새로운 그릇에 담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무렵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만나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나는 아이튠과 관계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스티브와 애플의 팀과 몇 년을 일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새로운 것을 개척했습니다. 그들은 게임의 법칙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승자가 됐습니다. 스티브는 아이팟을 생각하고 있었죠. 아이팟의 이어폰을 제외하고는 다 좋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아이팟에 어울리는 이어폰을 닥터 드레와 함께 만든 것입니다. 그게 비츠의 시작이었습니다. 나이 50에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죠. 닥터 드레와 나는 우리가 하드웨어를 팔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거든요.”
 
환상의 콤비의 특별한 선물
알렉산더 왕이 비츠 바이 닥터 드레와 협업한 ‘비츠 스튜디오 와이어리스 헤드폰’. / 사진:비츠 바이 닥터 드레 제공

알렉산더 왕이 비츠 바이 닥터 드레와 협업한 ‘비츠 스튜디오 와이어리스 헤드폰’. / 사진:비츠 바이 닥터 드레 제공

그는 살면서 특권을 가지지 못했다. 그는 USC 졸업생들에게 졸업장이라는 특권의 의미를 배움의 끝으로 생각하지 말고 시작으로 생각으로 강조한다. 졸업생들이 손에 쥔 졸업장은 운전면허증과 같은 것이라며 겸손하게 듣고 배우는 자세를 견지할 것을 당부한다. 옆에 앉은 동료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더 열심히 살아가려는 의지가 중요함을 말한다. 그의 제언에 따라 무대에 닥터 드레가 올라오고 둘은 자신들의 이름을 딴 USC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멋진 선물로 제시한다.
 
“우리는 예술과 기술의 차이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닥터 드레와 나는 팀을 이루어 이 프로그램을 창조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 같은 우수한 학생들이 위대하고 상상할 수 없는 멋진 일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의 역할을 한 것뿐입니다. 우리는 꿈을 먹는 학교를 원합니다. 세상에 영감을 주고 도전하는 정신으로 마음속을 호기심으로 가득 채워 다음 세대의 게임 체인저가 되어 주세요. 그런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세요. 나는 오늘 윌리엄 셰익스피어나 로버트 프로스트를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내 마음속의 영원한 시인이자 시카고 출신의 가수인 알 켈리의 아름다운 언어로 여러분의 앞날에 은총과 평화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조원경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

 
※ 필자는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물가·복지·국제금융·통상 등의 분야에서 일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경제적 청춘]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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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