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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레슬러 코미어, 세계 최강 파이터 되다

8일 UFC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미오치치에 1회 KO승을 거두고 기뻐하는 코미어. [AP=연합뉴스]

8일 UFC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미오치치에 1회 KO승을 거두고 기뻐하는 코미어. [AP=연합뉴스]

20세기엔 복싱과 프로레슬링이 가장 인기있는 격투기 스포츠였다. 21세기는 종합격투기의 시대다. 두툼한 글러브도 없다. 사전에 짜놓은 각본도 없다. 몸과 몸, 주먹과 주먹이 허공에서 맞부딪힌다. 그러다보니 1,2라운드에 승부가 나는 게 보통이다. 21세기의 ‘진짜’ 격투기에 대중은 열광한다.
 
8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티모바일 아레나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대회 UFC 266 헤비급(120㎏) 타이틀전. 세계 최강의 파이터를 가리는 경기였다.
 
UFC 헤비급 역사상 처음으로 3차 방어에 성공한 스티페 미오치치(36·미국)는 주변에서 마땅한 상대를 찾지 못하자 체중이 훨씬 가벼운 라이트헤비급(90㎏) 챔피언 다니엘 코미어(39·미국)와 맞붙었다. 코미어는 계체량에서 미오치치보다 2㎏ 무거운 112㎏을 기록했지만, 그의 작은 키(1m80㎝)로는 미오치치(1m93㎝)의 원거리 공격을 당해내지 못할 것 같았다. 대부분의 전문가도 미오치치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러나 공이 울리자마자 경기는 의외로 전개됐다. 레슬링으로 압박할 것 같았던 코미어는 펀치를 앞세워 미오치치를 흔들었다. 레슬링 수비를 준비했던 미오치치가 방향을 잃었다. 코미어의 짧은 펀치가 하나둘 미오치치의 안면을 두들겼다.
 
그러자 미오치치가 레슬링 싸움을 걸었다. 코미어가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엉킨 자세에서 서로 떨어지는 순간, 코미어의 간결하고 묵직한 라이트훅이 터졌다. 강펀치를 허용한 미오치치는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결국 코미어는 1라운드 4분38초 만에 KO승을 거뒀다. 헤비급과 라이트헤비급 두 종목을 모두 석권한 건 코미어가 처음이다. 이날 승리로 코미어의 전적은 20승 1패 1무효가 됐다. 코미어는 이날 파이트머니로 50만 달러(약 5억5000만원), 미오치치는 75만달러(약 8억3000만원)를 받았다.
 
‘비운의 레슬러’가 ‘최강의 파이터’로 거듭난 장면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뛰어난 레슬러였던 그는 각종 세계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오클라호마 주립대 졸업 이후 그레코로만형에서 자유형으로 종목을 바꾼 코미어는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 96㎏급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올림픽에서는 유독 불운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아쉽게 패했다. 전성기였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감량에 실패해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다.
 
그래도 코미어는 불운과 맞서 싸웠다. 레슬링 실력을 기반으로 종합격투기에 도전했다. 명석하고 격투 감각이 뛰어난 덕분에 낯선 링 안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2012년 코미어는 종합격투기 8번째 경기 만에 스트라이크포스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대체선수로 참가한 대회에서 우승하는 행운이 따른 것이다. 최강의 격투단체인 UFC로 넘어와서도 코미어는 헤비급 챔피언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당시 챔피언이자) 친구인 케인 벨라스케즈와 싸울 수 없다”며 2014년 라이트 헤비급으로 내려갔다.
 
코미어는 2015년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존 존스(미국)와 치열하게 싸웠지만, 판정패했다. 격투기 16경기 만의 첫 패배였다. 존스가 사생활 문제로 타이틀을 빼앗기자 코미어는 앤서니 존슨(미국)과의 타이틀전에서 승리, 챔피언에 올랐다.
 
그동안 헤비급에선 미오치치가 절대 강자로 올라섰다. 미오치치는 상대의 약점을 잘 파고드는 파이터다. 레슬러는 타격으로, 복서는 레슬링으로 압박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파브리시오 베우둠(브라질), 알리스타 오브레임(영국), 주니어 도스 산토스(브라질), 프란시스 은가누(브라질) 등 쟁쟁한 파이터들을 모두 꺾었다. 더이상 적수를 찾기 힘들자 헤비급과 라이트헤비급 등 2개 체급 챔피언끼리 대결하는 ‘수퍼파이트’가 이날 마련됐다.
 
올해 초 코미어가 “만 40세가 되는 내년 3월 은퇴할 것”이라고 말하자 UFC는 서둘러 미오치치와의 대결을 추진했다. 그리고 코미어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보기 좋게 헤비급 챔피언을 꺾었다. 레슬러 시절과 달리 코미어의 ‘대진운’이 좋았다.
 
하위 체급 챔피언이 상위 체급 챔피언을 격파하면서 UFC 헤비급 구도는 복잡해졌다. 이제 코미어가 상대를 고를 수 있게 됐다. 상품성이 최고인 상황에서 은퇴 전 경기를 다양한 이벤트로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오치치를 꺾은 후 코미어는 “오늘 밤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며 “레스너를 꺾는 게 나의 목표”라고 외쳤다.
 
브록 레스너(41·미국)는 코미어와 같은 엘리트 레슬링 선수 출신이다.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레슬링 디비전1 헤비급 챔피언 출신인 레스너는 프로레슬링(WWE)의 최고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근력이 워낙 뛰어나 2009년 UFC 헤비급 챔피언까지 올랐다. 이듬해 벨라스케즈에 패해 WWE로 돌아갔지만 대중적 인기는 여전히 최고다. 관중석에 앉아있던 레스너는 벼락같이 뛰어나와 코미어를 밀치며 신경전을 벌였다. 팬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두 선수가 싸운다면 UFC 사상 최고의 머니게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라스베이거스=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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