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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 모으면 돈 된다···경제적 가치 1년에 6조7200억원

생태학(Eco-logy)과 경제학(Eco-nomics)이 같은 어원(Eco)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에코(Eco)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온 단어로 ‘집’을 뜻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집인 지구를 지키는 일이 인간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생존의 문제가 됐습니다. [에코노믹스]는 자연이 가진 경제적 가치를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장맛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맛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관악구의 서울대 39동(공과대학). 이 건물에는 비밀 공간이 숨어 있습니다. 
 
서울대 한무영 건설환경공학부 교수(식수와 위생 적정기술센터 소장)를 따라 건물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체력단련장 옆에 있는 쪽문을 열자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한 교수가 설계한 ‘빗물 탱크’입니다.

 
200t(톤) 용량의 탱크에는 며칠 전에 내린 비로 빗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 컵 떠보니 빗물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투명했습니다.
서울대 39동에 설치된 빗물 탱크. 천권필 기자.

서울대 39동에 설치된 빗물 탱크. 천권필 기자.

건물 지붕에서 바로 받기 때문에 흙이 묻지 않아 깨끗하죠. 간단한 정수 과정을 거쳐 건물 전체의 변기용 물로 사용하고 있어요. 보통 변기는 한 번에 10L(리터)가량의 물을 쓰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물을 아낄 수 있죠.(한무영 교수)
 
빗물 박사. 수십 년 동안 꾸준히 빗물을 연구해 온 한 교수에게 붙은 별명입니다. 실제로 서울대 곳곳에는 그가 만든 빗물 재활용 시설들이 설치돼 있습니다.  
 
빗물로 옥상 텃밭 꾸미고 건물 온도도 낮춰
한무영 교수가 서울대 35동 옥상에 있는 빗물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를 들고 있다.

한무영 교수가 서울대 35동 옥상에 있는 빗물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를 들고 있다.

35동 옥상에 있는 ‘빗물 텃밭’도 그중 하나입니다. 840㎡ 크기의 텃밭에는 수확을 앞둔 감자를 비롯한 각종 채소가 자라고 있습니다.
 
한 교수는 빗물을 효과적으로 모을 수 있도록 가장자리를 높인 오목형 구조로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오목형 텃밭이 건물에서 유출되는 빗물을 줄여 홍수를 예방할 뿐 아니라, 옥상 표면의 온도까지 낮추기 때문에 요즘 같은 여름 장마철에는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강수량 절반이 여름철에 집중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 지난달 26일 서울 남대문시장 인근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뉴스1]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 지난달 26일 서울 남대문시장 인근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뉴스1]

전국에는 한 해 평균 1307.7㎜의 비가 내립니다. 국토를 빗물로 채우면 성인의 가슴 높이까지 찰 정도로 결코 적은 양이 아닙니다. 
 
특히, 전체 강수량의 절반이 여름철에 집중되다 보니 장마철만 되면 홍수에 대비해야 합니다. 실제로 2006년에는 장맛비로 인해 2조 원이 넘는 재산 피해와 28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최근에도 장맛비에 이어 제7호 태풍 쁘라삐룬(PRAPIROON)까지 접근하면서 많은 인명ㆍ재산 피해를 남겼습니다.

 
반면, 올해 초에는 전국이 극심한 가뭄을 겪기도 했습니다. 강수의 계절별 양극화가 점차 심해지면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물 부족 국가로 꼽히는 한국이 처한 아이러니한 현실이기도 하죠. 이런 기후 특성 때문에 물관리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빗물의 가치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한 해 빗물, 6조 7200억 원
소양강댐에 물이 가득차 있다. [중앙포토]

소양강댐에 물이 가득차 있다. [중앙포토]

그렇다면, 빗물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물은 종류에 따라 가격이 매겨져 있습니다. 댐에 저장된 용수는 현재 ㎥당 52.7원입니다. 이를 적용하면 한 해 동안 내리는 빗물의 총량(1276억㎥)은 약 6조 7200억 원입니다. 총 강수량의 27%를 차지하는 장맛비만 따져도 1조 8000억 원이나 됩니다. 
 
물론, 모든 빗물이 댐에 모였을 때 가능한 얘깁니다. 실제로 빗물의 대부분은 대기로 증발하거나 바다로 흘러가고, 25%가량만이 댐이나 지하수를 통해 재활용됩니다.
 
기상청은 2009년에 수자원 확보 차원에서 빗물의 경제적 가치는 9097억 원에 달하고, 장맛비는 약 2470억 정도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을 통해 버려지는 빗물을 모은다면 그만큼 빗물의 값어치를 높일 수 있습니다.
 
한 교수는 “도시화로 인해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불투수면이 늘어나면서 버려지는 빗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와플처럼 서울 곳곳에 빗물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을 만든다면 빗물의 가치를 높이고 홍수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세먼지 없애고 열대야 늦추는 효과도
장맛비가 그친 지난 3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바라본 하늘이 맑다. [연합뉴스]

장맛비가 그친 지난 3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바라본 하늘이 맑다. [연합뉴스]

빗물의 가치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문제가 되는 미세먼지 해결에도 도움이 됩니다. 공기 중에 떠 있는 먼지와 분진, 중금속 등의 오염 물질을 제거해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기 때문이죠. 여름철에 내리는 비는 도시의 열섬 효과를 낮추는 데도 기여합니다. 장마가 길어질수록 장마가 끝난 뒤에 시작되는 열대야를 늦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기상청 국립기상연구소와 수자원공사 공동연구팀은 ‘오랜 가뭄 뒤에 내린 비에 대한 긍정적 측면의 경제적 가치 연구’ 보고서에서 2009년 4월 20일부터 21일까지 이틀 동안 내린 비의 경제적 가치를 산출했습니다. 첫날에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30㎜ 이상의 많은 비가, 둘째 날에는 강원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3㎜ 이상의 적은 비가 내렸습니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이틀 동안 내린 비는 총 2900억 5000만 원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대기질 개선이 1754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가뭄 해소 1086억 5000만 원, 수자원 확보 58억 5000만 원, 산불 감소 4억 8000만 원 등이었습니다.  
 
“호주 항공사 일등석에선 빗물 생수 마신다”  
호주 청정 지역에서 생산한 최고급 빗물 생수. 천권필 기자.

호주 청정 지역에서 생산한 최고급 빗물 생수. 천권필 기자.

해외에서는 식수로서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한 교수는 해외에서 가져온 고급 생수병을 꺼냈습니다.
 
호주의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에서 빗물을 받아 만든 생수인데요. 음료수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 교수는 “호주에서 생산하는 빗물 생수는 항공기 일등석이나 최고급 칵테일바에서 사용할 정도로 맛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교수가 베트남 학교에 설치한 빗물 식수 시설에서 물을 받고 있다. [사진 한무영 교수]

한 교수가 베트남 학교에 설치한 빗물 식수 시설에서 물을 받고 있다. [사진 한무영 교수]

수도 시설조차 마련되지 않은 낙후 지역에서는 빗물의 가치가 더 빛이 납니다. 빗물받이 시설만 잘 갖춘다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깨끗한 식수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한 교수는 몇 년 전부터 베트남에서 수도 시설이 없는 학교를 대상으로 빗물을 저장해 식수로 쓸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그는 “수돗물도 나오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학교에 생수 값을 냈던 학부모들이 제일 좋아하더라”며 “전 세계에 마실 물이 없는 사람이 15억 명이나 되는 만큼 식수로서 빗물의 가치를 계속 알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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